그때 전화벨이 울리고 통화가 시작되었다. 몇 마디 대화를 흘려듣던 마충길은 뜻밖의 내용에 귀를 세웠다. 주식회사 무극의 자금 담당 상무 김시우였다. 그는 마충길의 처사를 몹시 원망했다.

“난 마대령님 일에 여러 모로 협조해왔습니다. 그 동안 여러 경로로 지불한 공작금도 그렇고, 또 반대급부였지만 개인적으로 공들인 부분도 적지 않아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한다는 건 정말 너무 한 처삽니다. 이 문제를 놓고 미우라 사장님은 상당히 화가 나셨어요.”

이동박은 의례적인 인사치레를 풀어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면 접어 두십시오. 똑같은 것을 자꾸 들쑤셔 좋은 일 없습니다. 얼마 전 듣기로는 정상필 기자에게 좋은 기사를 한 꼭지 건졌다던데 어떻습디까?”

김시우 역시 상대를 속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내용은 별거 없지만 거래는 확실합디다. 당신이 모시고 있는 마충길 대령에 비하면 어느 쪽으로든 깨끗한 사람이구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저쪽 신도원 일은 어떻습디까? 아직 정리가 안됐지요?”

“정식으로 요청은 안했습니다만, 한두 달은 이용했으면 싶습니다. 모처럼 한국에 오신 구로다 회장님께서 병이 도진 바람에 정신이 없었어요.”

김시우는 생각났다는 듯 은밀히 물었다.

“저기 말입니다. 저번에 이천 도요지에 갔을 때 철제 상자에 도자기가 들어 있었다고 했죠.”

“그런데요?”

“그 도자기 어떻게 생겼습디까?”

“글쎄요.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그저 그런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혹시 마호(魔壺)라 하지 않던가요?”

“그런 것도 있습니까.”

“거 뭐다, 알라딘의 마술램프 같은 것을 보면 그런 게 있잖습니까. 뚜껑을 열면 램프의 하인이 나타나 온갖 일을 해주잖아요.”

“마호도 그런 겁니까?”

“그런 용도는 아니죠. 무당이라든가 억울하게 죽은 혼령을 잡아 가둔 항아리라고나 할까요. 본래는 도를 익힌 법사가 혼령을 항아리에 가두고 부적을 붙이는데 세월이 흐르면 여러 가지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부적이 떨어지거나 없어져 버리기도 하겠죠. 이를테면 귀신 들린 항아리라고나 할까요. 그런 항아리가 무덤 안에 있으면 괴이한 일이 생기거든요.”

“어떻게요?”

“무덤이 열리면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으킨답니다. 무덤에 침입한 자에게 헛것이 보이게 한다나요. 간단하게는 곤충이나 뱀, 지네, 개구리 등이 튀어나오거나 나무뿌리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 등이죠. 이런 현상이 모두 마호의 신통력이랍니다. 만약 이부장께서 그런 마호를 구하신다면 신도원을 사들일 열 배의 값을 지불하겠습니다.

언젠가 모 신문사 기자를 사칭하던 친구가 마호를 가져오겠다고 미우라 사장님에게 호언장담한 일이 있었답니다. 물론 그 친군 지금까지 소식이 없지만요. 그걸 찾지 못하자 연락을 끊은 거죠. 얘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마대령님이 돌아오시면 연락 한 번 주시라 하십시오. 그리고 일간 한 번 만납시다.”

“그러죠.”

전화가 끊겼다. 박일도 중위가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마대령님, 두 사람의 대화엔 묘한 뉘앙스가 있는데요. 그 마호라는 것 말입니다. 그런 게 정말 있습니까? 고향에 가면 귀신 단지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마호는 금시 초문인데요.”

“모르지, 그런 게 있는지. 마호라, 정말 듣기에도 왠지 으스스 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