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이동박은 정읍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기사의 주인공은 두 달 전 상갓집에서 먹은 음식에 급체 하여 세상을 뜬 뒤였다. 그나마 그 집 큰아들 상균이라는 면직원에게 옛 얘기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저야, 모르죠. 얼추 들은 바론 부동산인가 뭔가 하는 장씨 성 쓰는 회장이 선친의 신세를 졌다고 들었거든요. 무슨 신세를 졌는진 모르죠. 그치만 신세를 졌으니께 졌다는 것이겠죠.”

분위기가 매끄럽지 못하자 이동박은 가져온 양주 두병과 담배 세 보루를 내밀었다. 금세 분위기가 달라졌다. 두부 몇 모와 막걸리를 사 오게 하더니 시시콜콜 지난 얘기를 털어냈다.

“우리 아부지가 병신이에요. 함께 일을 했으면 함께 나눠 먹어야 될 것 아닙니까. 우리 아부진 춤추는 곰이고 장씨는 돈을 받은 왕서방 아닙니까.”

도대체 어떤 일을 도와주었다는 건가. 이동박은 상대가 그 부분에 대해 말을 않자 속이 탔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비로소 면직원 입에서 내밀한 말이 쏟아졌다.

“우리 아부지가 면서길 했으니께 지적도(地籍圖)를 봤을 거 아닙니까. 근방에 있는 산이야 척 보면 3천리고, 어느 산에 누구 묘가 있다는 건 제 손바닥 손금 들여다보는 이치였죠.”

“그러면 장씨인가 하는 분은 풍수였나 보죠.”

“풍수는 무슨 놈의 풍수. 아따 이 사람 더럽게 감을 못 잡네. 장씬가 장회장인가 하는 그치 도굴범이었지라우.”

“예에?”

“우리 아부지가 오래된 무덤을 찍어 주면 장씨는 여시 마냥 좌우로 파들어가 쓸만한 물건을 빼왔지라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잖소. 내가 가만 생각해보니 그 말이 그럽디다. 세 살 때부터 기술을 익히면 여든될 때는 도사가 됐을 거 아닙니까. 그러다보니 부자가 된 것이구요.”

그는 막걸리 잔을 단숨에 비우고나서 이동박에게 따뤄 주었다.

“우리 아부지와 잘 지내왔었지라우. 그라다가 창하산(蒼霞山)에 있는 어느 대감의 묘를 도굴하고부터 물방게 마냥 머리가 홱 틀어져 버렸다네요. 몇 번 물어 봤더니 커다란 뱀이 나와 모두 도망 쳤답디다. 그란디 그 말을 으떻게 믿겠어요. 도굴한 물건을 혼자 처묵었는지, 어쩐지! 그러고나서 장씨는 이 바닥에서 떴다고 그러대요.”

“묘는 어디 있습니까?”

“창하산으로 올라가면 양지바른 중턱에 있지라우. 쌍분처럼 무지하게 컸는데 아새끼들이 을메나 그곳에 올라가 놀았는지 묏자리가 운동장처럼 반들반들 해요. 인제는 평지가 다름없으니 그곳을 묏자리라 보긴 어렵겠지라우.”

“그렇겠군요.”

“한번 가볼라면 가 봅시다. 하는 일 없으니 바람 쐴겸 슬슬 오르면 마음도 터질 것이오.”

다음날은 다행히 눈이 내리지 않은 탓에 산행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산이 그리 높지 않은 탓에 아침 식사를 하고 올랐어도 정오가 되려면 이른 시각이었다. 김대감 터라는 그곳은 상균 씨 말처럼 봉분이 서 있는 자리가 상당히 넓었다. 언뜻 보아 삼사십 평은 실해 보였는데 좌우에서 중앙으로 향한 높이가 12도 남짓의 각도를 유지했다.

주위를 서성거리던 곽성필의 눈이 번쩍 뜨인건 쓰러지기 직전인 오석으로 만든 비석을 발견하면서였다.

이 비석이 묘가 들어설 때부터 세워진 것이라면 모양이 많이 풍화되었을 것이지만, 세워진 오석(烏石)은 음각으로 글자가 패어 있었다. 비석을 세운 이는 뜻밖에 장민호 회장이었다. 놀라운 일은 비석 뒷면에 쓰인 시구가 ｢추사정｣에 걸린 편액의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비석과 정공칠과의 연결 고리는 찾아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