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암 남사고가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은 처음부터 누군가에 의해 위찬(僞撰)된 가짜 예언서라고 꼬집은 기사였다. 여러 종교 단체가 나름대로 [격암유록]의 함정에 빠졌지만, 내용으로 볼 때 [격암유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종단은 신도교라고 직격탄을 쏘았다. 글을 쓴 이는 종교문제연구소 문태일 소장이었다. 그는 신도교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를 꼽았다.

첫째, 신도교는 역대 정권에 빌붙어 정경 유착의 표본이 되었다. 그것이 집권자에겐 상당한 이득을 주었을지 모르나 선량한 시민을 괴롭힌 징후는 여러 곳에 나타난다.

둘째, 신도교의 교리는 [격암유록]의 주용 내용을 교묘하게 변조시켰다. 특히 한국에 들어온 신도교 무리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셋째, 신도교의 교리를 적은 [신도경]은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을 혼란으로 이끌어가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몇 가지 지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도교는 친일(親日)이라기보다 이방 종교라는 냄새가 강하다 했다. 미우라의 기색이 심각했다.

“모두 바지 저고리인 줄 알았더니 눈이 제대로 박힌 자가 있었구만. 잘못하다간 이 자 때문에 일을 그르치겠어.”

그는 김시우를 불러 지시했다.

“자네가 나서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이 자를 처리하게. 살려뒀다간 후환을 남길 위인이야. 팔도의 총령 가운데 선별된 네 사람에겐 별도의 격려금을 지불하게.”

미우라는 그 말을 남기고 횅하니 나가 버렸다. 김시우는 기분이 언짢았다. 마충길의 압력 때문에 신도원을 고스란히 빼앗길 위기에 처한 상태여서 김순원 기자를 이용해 안가로 정한 ‘오명계 터’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으나 큰 효과를 보긴 어려웠다. 이런 때 무협소설을 대량으로 제작해 살포하는 것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었다.

무심코 신문을 집어든 김시우의 눈에 걸린 것은 역시 [격암유록]에 관한 기사였다. 민족 종교로 불리는 여러 종단에서 문태일을 얼치기 학자로 몰아세운 이유는 [격암유록]을 만들 때 미우라가 부린 재간 때문이었다.
예를 들자면 [격암유록] <새사일(賽四一)>에 ‘인생추수조미단풍구비(人生秋收糟米端風驅飛) 조표풍지인(糟飄風之人)’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인생을 추수하러 오실 분은 찌꺼기와 쌀을 구분하는 바람으로 쭉정이를 날리듯 심판하는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이라 하였다. 물론 궁을십승(弓乙十勝)의 하느님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신흥 종교인 어느 종파의 교주를 내세워 ‘인생을 추수하러 오신 분은 쌀 찌꺼기를 바람에 날리신 분’이니 말세의 구원자가 자기 종단의 교주 조모 씨라고 우겨댔다.

어디 그뿐인가. 성인 박씨(朴氏)라든가 조씨(趙氏)와 문씨(文氏)도 등장했다. 물론 민족 종교와 선도에 관한 것도 나온다.

그러나 가장 해괴한 부분은 생초지락(生初之樂)이었다.

‘지해차서유복가(知解此書有福家) 미해차서무복가(未解此書無福家)’라는 대목이다. 즉, ‘이 책을 해석하면 복 있는 집이고 해석하지 못하면 복없는 집’이라 했다. 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격암유록]을 해석하고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자기네 종단이 말세의 구원 종파라고 떠들어댔으니 가만있는 건 구색이 맞을 리 없다. 그들은 직위도 거창한 호법이니 총령이니 회주니 하는 여타의 명칭으로 문태일의 이론을 칼질했다. 선학원이 소란스러운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한국의 민족 종교 지도자들이 들고 일어났으니 두고 보면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게야. 그들은 한결같이 문태일이 운영하는 종교문제연구소를 마뜩치않게 생각하고 있으니 파장이 커질 게야.”

미우라가 노린 것은 [격암유록]의 위찬(僞撰)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계책이었다. 이날 밤 자시를 기해 벌어진 레이저 쇼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어둠이 내린 산자락에 커다랗게 떠오른 한 마리의 봉황이 먼 곳으로부터 돌아오고 있었다. 이제 번거로운 세상일에 날개를 접고 편히 쉬겠다는 의도였다. 군중들은 비탄스러운 울음을 토해 냈다. 비봉루에 설치된 증폭 스피커에서는 구슬픈 멘트가 흘러나왔다.

“일찍이 신도교 교도들에게 믿음의 텃밭이 된 선원이 마지막 집회를 끝으로 이곳을 떠나게 됐습니다. 그 동안 교도들의 정성스런 헌금은 각계각층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내놓게 됐음을 알려 드립니다. 또한 이곳 선원은 나라에 헌납되었음도 알려 드립니다.”

사흘간의 심령 대부흥회를 거친 후 문을 닫기로 했으나 미우라는 레이저 쇼를 끝으로 이곳 집회를 끝내야 한다는 서글픈 멘트를 흘려보냈다. 그렇다면 신도교는 끝났는가? 그건 아니다. 신도교는 전국에 48개 지부를 가지고 있고 한시적이지만 동대문에 본당을 임시로 운영하는 처지였다.

“어차피 내어줄 바에는 아낌없이 던지는 게 바른 수순이야. 그렇게 함으로써 마충길의 의도를 확실하게 구분짓는 게 좋아.  나라와 민족을 위해 통성 기도를 올리고 그 틈새를 노려 우리 계획을 실천하는 게 정법이야.”

짜여진 각본에 따라 집회에 참석한 교도들의 통성 기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내 그곳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신도교의 4대 총령이 스스로 배를 가르고 할복하는 끔찍한 유혈 사태를 벌인 것이다.

대한오피스텔에서 보고를 받은 마충길은 소스라치게 놀라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근자에 하는 일엔 어찌 사사건건 트집이 일어나는가. 이천의 도요지 사건으로 먹칠하더니 이번엔 생각지도 않은 할복이야? 도대체 무엇 하나 이부장 말대로 되는 게 없잖은가.”

이천의 도요지 사건은 얼굴이 화끈거린 실수였지만, 대신 문일봉이라는 여배우의 진면목을 가려낸 공(?)이 있기 때문에 여론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도원을 강압적으로 빼앗는 것은 군부를 곱지 않게 보는 비등한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마충길은 안절부절못했다. 그 동안 대내외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신도교는 민족 종교라기보다 반은 이방 종교가 스며든 상태다. 일찍이 종교문제연구소 문태일 소장은 신도교를 ｢사단의 앞잡이｣라 했다. 한국에 들어온 이방 종교 가운데 가장 타락한 영혼을 소유한 이단이라 혹평했다.

“지금 마순호 대령은 다른 쪽에서 은밀히 일을 추진하고 있네. 마상섭이가 속을 썩히고 있지만 그 역시 어르신을 배신할 정도는 아니야. 모두들 그런 대로 제몫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어. 한데, 우리쪽만 삐꺽거린단 말이야. 무엇 하나 제대로 풀어 나가질 못해 어르신으로부터 질책이 따를 밖에. 그런데 또다시 신도교 본당에서 할복 사태가 일어났으니 여론이 가만 있겠는가.”

“그렇게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무슨 소린가?”

“마대령님, 석간신문에 실린 [격암유록]의 허와 실이라는 기사는, 신도교만을 염두에 둔 것이라곤 보기 힘듭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생각해 보십시오. 종교문제연구소 문태일 소장이 몇 가지 문제점을 제시한 것은, 민족 종교 지도자들을 우롱하거나 책망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속고 있는 [격암유록]의 위찬을 알리려는 의도거든요. 문소장은 신도교에서 [격암유록]을 만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위대한 가짜 예언서를 띄우기 위해설까요? 그건 아닙니다. 문소장의 지적대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비밀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풀숲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해야 뱀굴을 알아낼 게 아닙니까. 그 일을 파헤치려면 문소장을 우리 쪽에 불러들이는 게 좋을 듯도 싶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