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한 항아리

구로다는 태극 모양으로 동목인(桐木人)을 깔아 두고 주문을 외워 댔다. 두 걸음 앞쪽에 놓인 향로엔 동목인 숫자에 맞추어 일정한 길이의 향이 타올랐다. 수효는 어림잡아 1백여 개는 넘어 보였다. 가로 5센티 세로 10센티에다 두께가 5미리 남짓인 향나무 조각엔 각기 이름과 출생 연월일이 씌어 있었다.

동목인(桐木人), 이것은 상대를 저주할 때 쓰는 고방(古方)의 비술이었다. 조선에서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제웅을 만들어 저주의 도구로 사용해 왔으나 구로다는 그 사람의 사주를 기록해 넣은 동목인을 이용했다.

누구를 저주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그는 명도(明圖)의 신통력을 높이기 위해 동목인을 만들어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의 넋을 흔들었다. 휘장 뒤쪽에 무릎을 꿇고 있는 미우라에게 말했다.

“이제까지 모든 일이 순조로웠던 것은 자네 공으로 돌려도 하자가 없을 게야.”

감격에 겨운 미우라의 목소리가 휘장 뒤에서 날아들었다.

“감사합니다.”

“본국에서 보고를 받을 때마다 동목인을 하나씩 만들었네.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 자의 원혼이 나무 조각에 스며들 리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답답한 응어리가 풀릴 것 같거든. 내가 전래의 신복(神服 ; 巫服)을 입고 영혼을 부르는 것은 오늘밤 예식을 좀 더 빛내기 위함이야.”

“여부 있겠습니까.”

“삼합회가 한국에 들어온 건 반세기 전이네. 그 동안 음으로 양으로 헌신해 온 동도들의 수고를 생각해서라도 오늘밤 행사엔 차질이 없어야겠어.”

휠체어를 탄 방한 때의 병약한 모습이 아니었다. 신복을 걸친 그의 눈에선 귀기가 너울거렸다. 옻칠한 두 개의 신목(神木)을 부딪치며 잠든 영혼을 깨우는 동작을 되풀이 할 때마다 혈기 넘친 젊은이의 움직임과 큰 차이가 없었다.

향을 지피고 동목인을 펼친 이곳은 선량한 백성들이 집단으로 살해당한 동굴이었다. 굳이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제시대엔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던 애국지사들이 곤욕을 치렀고, 6. 25때엔 선량한 시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죽임을 당했다. 총칼에 육신이 찢기고 수십 명이 생매장 당한 장소이고 보니 이 동굴은 일기가 고르지 않을 땐 도깨비불이 너울거리고 귀신 울음이 공동(空洞)되어 멀리까지 들린다 했다.

구로다는 이곳을 이용했다. 동굴의 길이는 대충 3십여 미터 남짓이었다. 몇 십 명이 숨어 지낸 장소니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음습한 기운이 돌았다. 구로다가 동목인을 펼친 건 입구에서 대략 2십여 미터 지하로 내려간 곳이었다. 어디서 바람이 들어오는지 수십 개의 촛불은 꺼질듯 가물거렸다. 한쪽에 놓인 그릇을 구로다는 집어 들었다. 그릇 안에는 붉은 색 물감을 풀어놓은 액체가 있었다. 그것을 사방에 뿌리고 좌정하더니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오, 산왕대신이여! 당신의 아들 구로다가 찾아왔습니다. 영검한 능력을 내려 주십시오.”

알 수 없는 기운이 동목인 주위에 어리기 시작했다. 마치 연기가 바람에 밀리는 것 같았지만 살갗에 닿는 느낌은 습습했다.  경기를 일으킨 것처럼 구로다는 몸을 떨더니 넙죽 엎드렸다. 그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구렁이 한 마리가 그의 발치에 똬리를 풀더니 어깨를 타고 목덜미로 올라왔다. 동굴 안을 울리는 환청이 구로다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구로다, 어찌 이제 왔느냐.”

구렁이는 몹시 정겨운 듯 구로다의 몸을 휘감고 나서 스르르 옷 속으로 숨어 버렸다. 커다란 구렁이가 숨기에는 너무나 단출한 차림새였으므로 뒤쪽에 있던 미우라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우라 거기 있는가.”

“예에, 회장님.”

“지금 선학원은 어떤가?”

“행사 준비에 여념 없습니다.”

“팔도의 총령 가운데 얼굴이 알려진 자가 몇이나 되는가?”

“넷입니다.”

“한국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준비는 돼 있는가?”

“눈썹 만큼의 차질도 없습니다.”

“난 이곳에서 동목인의 원혼과 술래잡기를 하며 잠시 지낼 것이네.”

미우라는 짧게 대답하며 물러났다. 그는 서둘러 선학원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홍수였다. 각계각층에서 몰려온 인파는 심령 대부흥회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선학원 곳곳에 모여 석간신문에 실린 [격암유록]에 관한 기사에 관심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