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원으로 가는 버스는 배차 간격을 따지지 않더래도 좋을 만큼 30분 간격으로 있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사당동 포장마차 촌에는 외투 깃을 세운 교도(敎徒)들이 신년 맞이 부흥 성회에 참석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들은 낯익은 얼굴끼리 좌석을 같이하여 심상지 않은 세류를 걱정하고 있었다.

대화의 주요 내용은 신도교의 본당이 있는 선원을 정부에서 강제적으로 압수하려 든다는 울분 섞인 분노였다. 박일우 곁에 앉은 스물 대여섯으로 보이는 사내는 예의 날카로운 눈길로 상대의 의중을 떠보았다.

“이번 성회(聖會)가 마지막이라죠. 성회가 끝나면 정부에 헌납 형식으로 내놓는대나 봐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만 평의 땅을 날 계란 까먹듯 훌쩍 삼키다니 너무 한다 생각지 않습니까?”

박일우는 딴전을 피웠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하산한 지 며칠 안 되다 보니 금시 초문입니다.”

사내는 눈길을 휘돌리며 수긍하듯 끄덕였다. 박일우의 행색이 영락없이 그 짝이었다.

“산에 가면 무얼 비시오?”

“물론 복을 달라 빌지요. 이 세상의 모든 복을 다 받아도 넘칠 것 같은 생각은 안 듭니다. 그만큼 복에 허기진 거겠지요.”

사내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복은 많이 받으면 좋겠지요. 아니죠, 남들이 받는 그 많은 복 가운데 한 가지만 받아도 원이 없겠어요. 집안이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으니 나서긴 했습니다만….”

그저 모든 일이 도장 찍듯 확연히 드러난 게 하나도 없으니 허탄하다는 탄식이었다. 이름을 인명관(印命冠)이라 밝힌 사내는 자신의 고향을 구례군 토지면이라 했다. 사내의 말이 조만스러웠다.

“선생께선 풍수지리술에 대해 아는 바 없으니 다소 껄끄러운 얘기가 될 것이오만, 듣다 보면 홰가 동할 겁니다. 나 역시 풍수지리술은 문외한이었는데 우연히 산자락을 타고 돌다 보니 어느새 풍수학인(風水學人)이 됐지 뭡니까?”

그는 입심 좋게 뒷얘기를 붙여 나갔다.

“예전에 살았던 곳은 전주 만성동이었어요.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 어디다 물으니 그러더라구요. 그곳은 나와 맞지 않으니 이사를 가라지 뭡니까. 내가 을사년(乙巳年 ; 1965년) 생인데 만성동은 삽살개가 달을 보고 짓는 형이라나요.”

어느 얼풍수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박사주는 피식 코웃음이 새어나왔다. ‘개와 뱀’은 땅이 아니라 남녀의 궁합을 맞출 때 사용되는 용어였다. 이른바 사경견폐성(蛇驚犬吠星 ; 뱀은 개 짖는 소리에 놀란다)이다.

“어디로 옮겼습니까?”

“구례군 토지면이에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장수를 하더라구요. 이사를 가기 전 어느 스님에게 평생 운수를 일러 받았는데 ‘귀령학수(龜齡鶴壽)’였어요. 아니나 다를까 내가 이사간 곳이 그런 마을이지 뭡니까.”

거북이 마을. 흔히 말하는 금구몰이형(金龜沒泥形)이다. 금거북이는 하늘에 사는 신령스러운 영물이므로 천지의 기운을 흡수해 만물을 낳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북이가 진흙에 빠졌다는 곳에 집을 지으면 오행으로 토생금(土生金)이다. 땅 속의 기운을 빨아 들이므로 집안이 크게 일어난다.

인명관이라는 사내가 잘못 안 것이 있었다. 토지면에 있는 모든 곳이 ‘금구몰이형’이 아니고 오미리(五美里)에 있는 유씨(柳氏) 댁이 그랬다. 대체로 소문은 어느 한 집안이 일어나면 그 집을 축으로 돌기 마련이다. 남도를 여행했던 벽암이 이곳에 들른 적이 있었다. 지난 68년 중요 민속 문화 자료 제8호로 지정된 그 집은 대지 710평에 건평이 129평이나 되는 상류 가옥이다.

운조루(雲鳥樓)로 알려진 이 집은 경북 대구에서 살던 유이주(柳爾冑)라는 이가 지었다. 그가 땅을 사서 터를 고를 때 거북처럼 생긴 돌이 나와 금구몰이형으로 알려졌는데 유이주는 집터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씌어 있다.

“좋다는 곳으로 이사했는데도 우환이 그치질 않으니 알 수 없는 조화지요. 신도교 경전에는 사람의 운수를 돌릴 수 있다 했으니 이번 성회에 참석해 보면 뭐라도 결딴이 나겠지요.”

사내의 물음이 엉뚱했다.

“근데 선생은 얼굴이 팍 삭았소? 속병이라도 있는 것 아니오? 얼굴에 핏기가 없는 게 영 귀신에 홀린 몰골입니다.”

“그렇게라도 보이니 다행입니다.”

“예에?”

“죽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 다행이오.”

“원 사람도. 깜짝 놀랐잖아요. 하긴 잘 오셨소. 소문이야 어떻든 내 병만 나으면 될 일 아닙니까. 거 일본에서 왔다는 용한 점쟁이가 있다고 합디다. 이번 집회엔 그 사람을 불러 교도들에게 써비스 한답디다. 그 동안 갈퀴질하듯 돈들을 긁어 들였으니 그런 써비스 한 번 한다고 해서 손해날 일도 없을 것이구만요, 암먼.”

버스는 어느새 신도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가까이나 멀리나 손에 잡힐 듯한 산자락은 한결같이 백설에 싸인 절창(絶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