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우는 급히 진역관(眞易館)으로 돌아왔다. 들었던 대로 낯익은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녀 보살 신도희와 벽암, 그리고 일본 대사관 건너편에서 좌판을 벌였던 노인이었다. 벽암의 소개가 떨어졌다.

“인사드리게 오죽 선생님일세.”

“삼가 문안드립니다, 박을깁니다.”

“허허허, 제 길로 들어왔구만. 그러고 보면 인연이란 부질없는 것만은 아닌 게야. 그래 관문을 다 뚫었는가?”

“마지막 관문은….”

“못 뚫었단 말이지.”

“죄송합니다.”

“그리 말할 것 없네. 그 관문을 뚫고자 억지를 부렸다면 호리녀(狐狸女)에게 목숨을 빼앗겼을 것이야.”

“?….”

“복술(卜術 ; 점법)이라는 건 과거를 점 쳐 알고 미래를 헤아리는 법술이나 그 오묘함을 설명하기엔 수식어가 부족하다고 봐야겠지. 역서(易書 ; 주역과 같은 책)나 관상전(觀相專 ; 상리학과 같은 책)을 근거로 점을 치지만, 점괘의 내용이 한결 같지 않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 아닌가.”

윤사달의 얼굴에 곤혹스런 빛살이 빠르게 스쳐갔다. 벽암은  그쪽으로 시선을 뿌리다 오히려 불안스러워졌다.

“선생님, 좀 쉬시지요.”

“아닐세, 내 이 사람하고 할 얘기가 있네. 어찌 작호(作號) 했는가. 와룡이라 했는가?”

“아닙니다. 박사주라 했습니다.”

“박사주? 것두 괜찮구만. 아다시피 이곳 오죽헌은 온갖 정성을 기울여 만든 곳이니 어느 곳보다 애착이 커.”

“….”

“바둑이란 걸 생각해 보게. 거기엔 온갖 지략이 널뛰잖은가. 기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두어도 대마가 몰살당하고 단 두 집만 내고 쫓겨 다니는 형국을 자주 구경하지. 왜 그럴까? 그건 시시때때로 수읽기를 잘못해 그런 일이 벌어진 게지. 눈에 보이는 형상만을 놓고 본다면 일종의 천기점(天氣占)이라고나 할까.
이를테면 이런 정도네. 정월 초하루부터 초닷새까지 흐린 날이 많으면 그 해엔 병이 많이 나돌고, 설날 하늘이 흐린 건 풍년의 징조네. 정월 초이렛날은 인일(人日)이니 일기가 좋으면 전염병이나 유행병이 없고, 반대로 날씨가 흐리면 온갖 질병이 나돈다.”

어디 그뿐인가. 정월 초여드렛날은 곡식의 날이니 일기가 흐리면 풍년이고 날씨가 맑으면 흉년이다. 하늘이 맑으면 곡물이 여물지 않기 때문이다. 정월 초하루는 닭날이고 2일은 개날, 3일은 돼지날, 4일은 염소날, 5일은 소날이며 6일은 말날이다. 7일은 사람날이고 8일이 곡식날이다. 이렇듯 정한 날의 기준에 맞춰 길흉을 헤아리는 게 천기점이다.

“그런가 하면 천기점이라도 음양법(陰陽法)에 준해 길흉을 헤아리는 방법이 있네. 복술가의 수준으로 보면 촉한의 재상 제갈량 정도라고나 할까. 일기를 잘 헤아리는 전가점후(田家占候)의 법술에 뛰어났음을 진수는 [삼국지]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했네. 그러나 이 역시 복술의 높은 경지는 아니야.”

그렇다면 어느 경지가 최고인가? 윤사달은 그 같은 경지를 소강절 수준이라 했다. 즉, 앉아서 백리 밖의 일을 알고 오늘에 살면서 천년 뒤의 일을 헤아리는 관매점이야말로 복술의 최고 술법이라 단언했다.

“그 외의 법술은 덧물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워. 산통점의 명인 홍계관이 제 꾀에 제가 죽은 건 자신의 점법을 잡술로 만들었기 때문이야. 혹자는 그리도 말할 게야. 하늘의 비밀을 너무 까발렸으니 천신의 시새움을 받아 목숨을 잃은 거라고. 허어, 그건 아니야. 제 스스로 잡술에 취해 넘어졌으니까.”

이러한 잡술에 대한 예화를 ‘딱딱선생’의 점법으로 설명해 냈다. 

딱딱선생에겐 며느리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며느리와 점법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 급기야 말다툼으로 발전했다. 화가 난 며느리가 집을 나가자 딱딱선생은 며느리의 행동을 괘씸하게 여겨 혼내려고 뒤쫓아갔다. 손안에 쥔 구슬처럼 금방 잡을 것 같은 며느리 행적은 어느 산기슭을 돌 때 놓치고 말았다.

“도망가던 며느리는 아주 급했지. 허지만 그 역시 점법의 대가였어. 그녀는 산기슭에서 밭을 가는 농부를 만나 도움을 청했네. ‘내가 보습(犂) 위에 누울 테니 그 위에 아저씨의 도롱이(蘆)를 덮은 후 물 한 그릇을 놓아주십시오’ 하고 부탁했다네.

얼마후 딱딱선생이 오더니 점을 친 후 농부에게 물었지. ‘이보시오, 이곳에 이산(犂山)이라는 산이 있소? 그리고 노전(蘆田)이라는 숲과 연못이 있소?’ 농부는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지. 그러자 딱딱선생은 탄식했네. ‘어허 이거 일났구만. 며느리가 이산의 노전 숲에 있는 연못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으니!’ 딱딱선생은 힘없이 돌아갔다네. 그러고 보면 그 며느리도 딱딱선생 못지 않은 점술의 대가였지 뭔가.”

박일우는 이 얘기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가 오죽헌 밀실에 들어갔을 때 어느 책에선가 그와 비슷한 기록을 읽은 적이 있었다. 즉, ‘장수는 [주역]을 꿰뚫지만 그것에 의지해 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대전에서 왜병이 쏜 유탄을 맞고 전사할 때 부하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으면 나의 양쪽 발바닥에 흙을 붙이고 입에다 떡을 놓아 두거라. 그리고 절대 발상(發喪)해선 안 된다’라고 당부했다.

부하들은 장군의 명을 그대로 따랐다. 이때 가또 마사오(加藤淸正)는 득의점(得意占)으로 이순신 장군이 어찌 됐는가를 알아보았다. 틀림없이 죽었다고 생각한 왜장은 점괘를 보고 질겁했다. 아직도 이순신 장군은 두 발로 땅을 밟고 서 있으며 입엔 음식물이 가득했으니 살았다고 본 것이다. 당연히 혼비백산하여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 점법이라 하여도 점력(占力)이 높아질수록 그것을 응용해 내는 법술이 더욱 오묘하고 깊어진다는 것이다. 진역관의 원래 주인이던 홍계관은 산통점의 명인이었지만 부질없이 목숨을 잃은 것은 점법을 잡술로 여긴 때문으로 오죽은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