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영암댁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천선생님, 오늘은 뭘 자실라요? 점심으로는 시레기 백반이 맛있을 것인디요. 그것으로 할라요?”

“시레기 백반?”

“아님, 떡국으로 하던지.”

김종호가 퉁명스럽게 받았다.

“뭐, 맨날 먹는 것 오늘 하루쯤 뺍시다. 거 제육볶음 한 사라에 오뎅 백반으로 통일합시다.”

천달수가 당찮다는 듯 퉁을 줬다.

“이 사람아 제육볶음이 얼만디 그래. 그거 한 번 먹고 사흘 점심을 굶자는 건가. 아주머니 그러지 말고, 어디 보자….”

다시 한번 벽에 붙은 메뉴판을 노려보았지만 만만한 가격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군침 도는 안주는 여럿인데 주머니 사정이 허락치를 않는 모양이다. 김순원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는 온기가 달아난 엽차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천달수를 향해 양해를 구했다.

“천선생님, 오늘은 제가 입사한 날이니 점심을 샀으면 싶습니다만.”

“에이, 안 돼지 안 돼. 축하는 못해 줄망정 새 식구 주머니를 털어야 쓰겄는가. 그치만 마음이 꼭 그렇다면 정성을 안 받아 줄수는 없지. 그래, 한 끼 떼울 거니까 김선생이 적당히 시키쇼.”

“아, 예에.”

김순원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키며 메뉴판을 향해 돌아앉았다. 위아래로 주욱 훑고 나서 일단 돼지 갈비 4인분을 시켰다. 반주로 곁들인 소주 한 병이 두 병으로 늘어나는 동안 갈비 4인분에 꼼장어 · 꽁치 · 똥집이 추가되었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다섯 시가 가까워졌다. 천달수는 몹시 미안한 표정으로 회사 사정이라는 걸 들려주었다.

“초면에 김선생에게 김빠진 소릴 해서 미안하오만 세상살이는 다 그렇고 그런 내막이 있는 것 아니겄소. 내가 사는 왕십리에 가면 왕십리 사정이 있고 창신동 꼭데기에 사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구구절절 사연이 있을 게 아니오. 여그도 마찬가지요.”

본론보다는 너무 사설이 늘어진 것을 김종호가 짤랐다.

“회사 사정은 내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조금 전에 보셨다시피 무협소설을 쓰는 인원은 대략 50명 정돕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 정도는 돼 보입디다.”

“모두들 나름대로 원고를 쓰죠. 차암, 김선생님 무협소설의 3대원칙을 아십니까?”

“섹스, 폭력, 과장 아닙니까.”

“맞습니다, 기본은 돼 있네요 뭐.”

“퇴짜 안 맞으려고 누구한테 교육 받았죠.”

“여기는 봉급이 따로 없어요.”

“예에? 그럼 뭐 먹고살죠.”

“박상무 말대로 능력급이죠. 뭐 빠지게 원고 써서 채택이 돼야 고료가 나오거든요. 편당 5,6십 만원 줘요. 채택되면은요.”

“그렇다면 괜찮네요. 무협소설은 여섯 권에서 열 권은 되잖아요. 거 재밌게 한 건만 올리면 몇 년은 먹고 놀겠는데요.”

“그게 아니라요. 원고지 한 장에 백원에서 2백원 사이에요. 이렇게 말해야 계산하기 편하죠. 한 권 만드는 데 2백자 원고지가 3백50 매에서 4백 매니까, 아니 평균적으로 4백 매 잡구요. 2백원이면 8만원 아닙니까 거기에 여섯 권으로 했을 때 6을 곱하면 계산이 딱 나오죠 육 팔은 사십팔. 끽 해야 오십 만원이죠.”

“채택이 안 되면은요?”

“말짱 개털이죠.”

“이 출판사에서 무협 소설 몇 질이나 발간했어요?”

“내가 알기로는 없어요. 길 건너 창신동에 있는 오룡출판사가 무협소설을 찍어 재미가 짭짤하다니까 박상무인지 박가가 뛰어든 거죠. 문 열어 놓은 지 6개월 됐는데 책은 못나왔거든요.”

“출혈이 심하겠네요.”

“대신 만화가 있어요. 용산 어디에서 작업한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작가를 고용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 것 가져와 쓱싹 복사하는 해적판 있잖아요. 고게 많이 남나 봐요.”

“원래 이 계통에 있었나 보죠? 사업적인 수완이 좋은 걸 보면.”

“자세힌 몰라요. 소문에는 쪽발이 밑닦게 노릇을 한다는 말도 있고, 돈 많은 과부 하나 물어 팔자가 폈다는 소문도 있거든요. 근데 어디서 배워 왔는지 가끔 일본말로 씨부렁대거든요. 저번에는 ‘불루나이트 요코하마’를 흥얼거리더라구요. 어쩔 땐 요정 성냥을 가져와 쓰지도 않고 몇 날 며칠 가지고 다니며 자랑도 하구요. 개 뜯어먹을 짓만 골라 해요.”

“요정에도 다녀요?”

“장충동에 육원각이란 고급 요정이 있거든요. 그런 곳도 다니는 모양입디다. 미운 짓도 하지만 어쩔 때 그 친구 얘기 듣고 있으면 일할 의욕도 생겨요. 시중에 흘러다니는 무협소설은 중질에 금박을 입히거든요. 그런데 박상무는 고급 모조지에 반양장으로 책을 찍어야 한다고 큰소립니다. 누구 소개로 육원각에 갔다가 원고 하나 건졌나 봐요. 제작에 들어갔다는 말 들었거든요. 다음 주에 교정지 나온다던데 제목이 뭐라드라….”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천선생님 조를 ‘춘향이 조’라 합니까?”

답변은 역시 김종호가 했다.

“편의상 붙인 명칭이죠. 한 조는 네 명씩인데 각조마다 이름이 있어요. 김선달이니, 박서방이니, 삼학도니, 또 우리처럼 춘향이니…, 잘은 모르지만 사고가 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방편이래죠, 아마.”

김종호는 그제야 빈 의자에 놓은 대학노트를 발견했다. 그는 노트를 집어 몇 장을 넘겼다.

“어, 이건 무협소설이잖아요? 가만… 내용을 보니 [살검, 활검] 2부 같은데요? 오라 박상무 그 친구 또 뻥쳤어. 김선생님, 박상무 그 친구 무협소설 썼다고 했죠? [살검, 활검]을 3천 군데 대본소에 넣었다구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곳에 있던 일행들은 대답 대신 모두 웃고 말았다. 가득 들어찬 풍선에서 바람이 새는 듯한 공소한 웃음이었다. 그 역시 작가로서 대접 받고 싶은 생각에서였는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