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속의 그림

“하필이면 오명계(五鳴鷄) 터를 다뤘소?”

박일우의 물음에 김순원의 답변이 선선했다.

“제보가 있었습니다.”

송학수는 뜻밖이라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내심 긴장한 낯으로 귀를 세웠다.

“장충동 안가는 풍수법상 오명계 터랍니다. 하루 저녁 다섯 번 울기 때문에 도둑이 일절 근접 못하죠. 괴이하게 그 닭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시기에 맞춰 나타난다는 전설이 있다는데요, 왕조가 바뀔 때 나타나는 봉황처럼 희망을 주는 서조(瑞鳥)라는 거죠.”

송학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채근했다.

“그래서요?”

“자료를 부탁했더니 진즉 보냈다는 거예요. 이곳저곳 헤집어 봤더니 아닌 게 아니라 이틀 전 도착했더라구요. 연말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보낸 초대장과 행사 안내장이 쌓여 있는 곳에 묻혀 있는 걸 몰랐어요. 그런데 서류 봉투에 들어 있던 내용이 아주 흥미로웠어요.”

물론 당시의 내용을 전부 기억할 수 없지만 김순원은 자신이 쓴 원고의 요점만 뽑아냈다.

“기사는 특별한 게 없어요. 오명계라는 닭이 60년 만에 나타난다는 것과, 그 닭이 나타나는 것은 영웅이 출현하는 시기와 맞아떨어진다는 점이죠. 그 닭이 60년맞이로 나타나는 시기가 바로 경신년입니다. 그래서 흥미 삼아 칼럼을 쓴 것뿐이에요. 과연 경신년에 영웅이 나타날 것인가? 나타난다면 어떤 모습인가? 등등 그런 내용이죠. 문제는 장충동 안가였어요.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마씨 삼인방이 하필이면 오명계 터를 안가로 정한 이유가 뭐였는가죠.”

김순원은 지체 없이 덧붙였다.

“칼럼이라는 건 반드시 소설처럼 기승전결의 원리에 따라 답변을 제시해야지만 모범 답안을 확실하게 그려 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물론 제 칼럼에서는요.”

송학수의 물음이 불안스럽게 흔들렸다.

“누가 제보했소, 노인이오?”

“아닙니다, 아주 젊은 여자였어요. 통화 중 잠시 혼선이 생겼는데 무슨 정력에 좋은 술을 주문하는 독촉 전화 같았거든요. 그거야 외부 전화니까 특별히 신경 써야할 건 아니었지만요.”

“젊은 여자가 그런 전화를 했다? 오명계 터에 대해 제보 하려면 가상법(家相法)에 일가견이 있어야 하잖은가. 그리고…, 장충동에 안가를 만든 것은 몇 사람밖에 모르는 일인데….”

송학수는 이내 덧붙였다.

“그것참 희한한 일이오. 어지간한 풍수사들도 모르는 오명계 터를 그만큼 알고 전화했다는 것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아요. 더구나 젊은 여자가 그런 내용을 신문사에 제보해 얻어질 이득이 뭐겠소, 어허?”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한 모양이었다. 김순원은 당시를 떠올리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외출했을 때 탁상일지의 메모철엔 ‘오명계에 대한 자료를 받았느냐?’는 내용이었다. 사회부에 근무하는 동료가 친절하게 메모해 두었겠지만 그런 내용이 서너 번은 된 것 같았다.

자신이 전화를 받은 날도 한두 시간 간격으로 세 번이나 걸려 온 것을 감안한다면 제보자의 의도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송학수는 찬물을 뒤집어 쓴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잖아도 그 터에 대해 찜찜한 구석이 많았네. 오즉 했으면 십수년 만에 나들이한 입암(笠岩 ; 송길주)이 나를 찾아와 불안해했겠는가. 그가 해몽 하고 터를 잡아 주고 얼마나 후회하는지 민망스러워 못 보겠다니까. 자신으로 인해 안가에 있는 무리들이 엉뚱한 생각을 갖게 될는지 모른다는 게지.”

김순원이 물음표를 던졌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리 생각하니 불안스럽다는 거요. 입암이 어디 얼풍수인가, 가상법은 장안 제일 아닌가.”

송학수는 가물거리는 생각 속에서 이름 하나를 찾아냈다.

“그래, 마상섭 대령이랬소. 그 사람이 찾아와 부탁하는 바람에 장충동으로 가게 됐다는데.”

김순원이 뜻밖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상섭 대령입니까?”

“잘 아시오?”

“정치부 기자들이 그분에 대해 하는 말을 들었어요. 정보부 김부장 구명 운동에 앞장섰답니다. 마씨 삼인방 중에서 가장 인간적이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정치부 기자들이 그 분을 좋아하는 건 휴머니스트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마상섭은 아니다. 그가 장충동 안가에 대해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킬 소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하는 눈빛으로 송학수는 눈길을 돌렸다.

“박사주 보기엔 어떻습니까?”

“그곳에 안가를 정한 건 마상섭이지만, 결국 마씨 삼인방이 알게 될 일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마충길이나 마순호도 이미 알았겠지요. 세 사람 중 누군가가,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일본 기업인과 잦은 접촉을 가졌다고 보면 오명계 터에 대한 소문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갔겠지요. 장충동 안가를 구입한 것은 그쪽에서 흘러나온 자금일 겁니다.”

반색하며 김순원이 쐐기를 쳤다.

“맞습니다. 2주일 전인가였어요. 정치부와 사회부 공동으로 중복된 기사가 있었어요. 마씨 삼인방의 행적에 관한 거였죠. 그 전날 저녁 6시 이후 육원각이라는 요정으로 들어간 마충길이 다음날 새벽에 나왔거든요. 일본 쪽 자금이 빨려 들어갔다면 아마 그날이었을 겁니다. 이후 마충길 쪽 인물들의 은행 출입이 잦았으니까요.”

그러나 박일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더라도 일본 쪽 자금을 덥석 물 바보는 없다. 먹잇감이 향기로워도 뒤탈이 날 수 있는 건 후각으로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그들이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 기업의 자금이거나 한국계 일본 기업의 자금일 공산이 컸다. 김순원의 다음 말이 일우의 머릿속을 휘저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