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운수

경신년 원단(庚申年 元旦). 정오를 넘기면서 회빛으로 그을린 하늘은 점점이 눈발을 떨구었다. 모든 것이 변해도 일본대사관 건너편 좌판만은 한결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년 첫날에도 어김없이 좌판은 벌여 있었다. 한복 두루마기를 걸친 직장인 타입의 젊은 남녀가 건너려던 길을 되돌아와 좌판 앞에 무릎을 세워 앉았다. 굵직한 뿔테 안경을 쓴 사내의 눈이 열심히 꿈틀거렸다.

“영감님, 올핸 장가가겠는지 봐주세요.”

좌판 위에 놓인 빈 노트에 김순원(金淳元)이란 이름을 쓰고, 그 아래 생년월일을 덧붙였다. 만 원권 한 장을 올리자 메마른 노인의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떨어졌다.

“어허, 산풍고(山風蠱)로세.”

“예에?”

“직업이 뭔가?”

대답은 곁에 앉은 처녀에게서 떨어졌다.

“일간지 기자예요.”

“사회부신가?”

그렇다는 말을 이번에는 본인이 떨구었다.

“산풍이란 저녁 바람일세. 깊은 밤 아무도 모르게 산기슭을 타고 내려오는 도둑 같은 바람이지. 예로부터 이 괘를 뽑으면 나라에 큰 변란이 있었어. 지난 68년에도 같은 괘상이었지.”

김순원은 68년의 사건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다 손바닥을 탁 쳤다.

“맞아, 김신조 일당이 북한산을 타고 내려와 청와대를 기습하려했지! 그럼 올해도 무장 공비 사건이 터진단 말입니까?”

“앞서 말했듯 산풍은 도둑 바람이니 해롭소. 특히 당신 같은 기자 양반에게는.”

“장가는 가겠습니까?”

노인의 대답이 엉뚱했다.

“직업이 기자시니 점괘는 본인이 해석해 보시오.”

동풍해빙(東風解氷)
고목봉춘(枯木逢春)
호화춘모(好花春暮)
모각남천(暮覺南天)

동풍이면 봄바람이다. 봄바람이 불어 얼어붙은 얼음이 풀리면, 마른나무가 봄을 만난다는 뜻이다. 이것만을 놓고 본다면 점사가 그런 대로 괜찮다. 뒷부분이 문제였다. ‘좋은 꽃 봄이 저물고, 저문 하늘이 남쪽인 알겠구나’다. 왠지 앞뒤 문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몇 번 뇌까려 보았지만 이음새 부분이 자연스럽지 못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전에 말했다시피 산풍은 도둑 바람이니 결코 좋다 볼 수 없소이다. 기자 분의 운세 속에 그런 괘상이 있으니, 내 생각엔 1년 정도 휴직하고 외국 여행이나 다녀오는 게 좋을 듯싶소. 아니지, 결혼식을 올리고 1년 동안 세계 일주를 다녀오는 것도 괜찮겠어. 견문을 넓힐 수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차암, 영감님두. 그런 시간과 돈이 어딨어요? 꿈같은 말씀하시네.”

“새해엔 기자 분의 운수가 안 좋아요.”

“예에.”

“점사에 나타난 대로 얼음이 풀리니 경사스러운 일이오만, 좋은 꽃 봄이 저물고 저문 하늘이 남쪽인 줄 알겠다는 것은, 머잖아 남쪽 지방에서 상서롭지 못한 일이 터진다는 괘사요. 그렇기에 서둘러 여행을 떠나라는 게요.”

“가지 않으면요?”

“시달림 받을 거요. 고(蠱)는 그릇(皿) 안에 세 마리의 벌레가 꿈틀대는 상형 문자요. 다시 말해 도둑 바람이 불어 닥치면 세 마리 벌레가 득세해 당신의 몸과 마음을 갉을 테니 곤욕을 치를 것이오. 어쩌면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지도 모르겠소이다.”

김순원의 낯빛이 굳어 버렸다. 직장이 이곳에서 멀지 않으니 일본 대사관 건너에서 좌판을 벌이는 노인에 대해 이런 저런 소문을 많이 들었었다. 운수점이라도 쳐봐야지 하는 평소의 생각이 신년 첫날 이곳으로 가게 한 것인데 점괘가 좋지 않았다.

“피할 방법은 없겠습니까?”

“이미 일러주었소이다.”

“군대 갔다 와 어렵게 들어간 곳이 신문삽니다. 물 좋은 사회부라지만 아직은 초뺑이니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도 없어요. 어렵사리 들어온 직장 내던지고 서둘러 결혼해 세계 여행을 떠난다면 집안사람 들은 물론이고 내가 아는 선후배는 정신 나간 놈이라고 하겠지요.”

“….”

“영감님 다른 방도가 없겠습니까?”

“그럼, 다시 해봅시다.”

노인은 낡은 가방에서 거북 모양의 귀점구(龜占具)를 꺼냈다. 그것을 두 손으로 잡고 좌판 위의 공책에 끄적인 김순원의 사주를 웅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