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쵸이스’가 왜 인기 있는지 그곳을 들어가 보지 않는 사람은 전연 알 수가 없다. 외곽에서 빙빙 돌던 ‘미우라(三浦) 클럽’이 방배동 카페 골목에 마련한 이 모텔은 복도를 제외한 내부를 거의 유리로 치장한 구조가 특별했다. 남녀가 은밀한 행위를 할 때 높낮이를 조정할 수 있는가 하면, 남자가 눕고 여성이 상위로 관계할 때 자동적으로 흔들어 주는 장치가 있다는 소문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것만이라면 ‘쵸이스’라는 모텔이 그렇게 큰 인기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특이한 점 한 가지 소개하면 어느 누구라도 이 모텔에 들어와 신변보호 요청을 하면, 그것이 불륜이든 뭐든 일절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그렇다 보니 바람피우는 뒤통수 가려운 남녀들에겐 더없이 황홀하고 미더운 파라다이스가 아닐 수 없다.

어제 오후, 한때 방송가에 이름을 날린 서미애는 ‘쵸이스’에 들어서면서 기분이 언짢았다. 우연히 이상철 회장의 권유로 사업에 뛰어들어 도움받고 있는 처지라지만 자금담당 상무에 불과한 김시우가 사장을 오라가라 하는 것은 아무리 접고 생각해도 곱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불안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예전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지?”

김시우에게 특별한 일이 생긴 것인가? 서미애는 혼자 떨고 셈하며 복도로 올라섰다. 평상시 고약한 바이어를 만날 때 상담용으로 준비해 둔 만년필형의 녹음기를 상의 주머니에 꽂아 두었다. 테이프가 필요 없는 아이시 회로 형으로 3시간 반을 녹음할 수 있었다.

“서미애 사장님이시죠? 김상무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3층 엘리베이터 옆에 서 있던 여직원이 315호로 안내했다. 서미애는 만원권 석 장을 쥐어 주며 속삭였다.

“고마워요. 나중에라도 부탁할 일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름이 뭐죠?”

그렇게 묻다가 가슴에 꽂은 이름표를 발견했다.

“아, 민경아(閔瓊雅) 씨군요.”

갑작스러운 환대에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것을 보며, 정겹게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통로를 얼마쯤 걸어가 민경아가 315호를 노크했다. 문이 열리고 서미애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녀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방안에 들어선 서미애는 문득 구조가 낯이 익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유리로 된 방. 그곳은 ｢스캔들｣ 잡지의 취재부장 박일우와 어쭙잖은 인연을 만든 파라다이스란 모텔의 풍경이었다. 소파 한쪽에 핸드백을 내려놓으며 그녀는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더불 침대가 놓인 안쪽 방에서 나오던 김시우가 반갑게 맞이했다. 그의 손에 든 두 개의 양주병엔 3분의 2쯤 불그스름한 액체가 채워져 있었다.

“그거 술이에요?”

“글쎄요, 술이라기에도 그렇고 음료수라기에도 그렇습니다.”

“무슨 대답이 미적지근해요.”

“본 대로 느낀 대롭니다.”

“급한 일이시라더니, 이것 때문이었어요?”

김시우는 탁자 아래에 놓인 봉투에서 인쇄물을 꺼내 들었다.

“어젯저녁 마충길 대령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국회 차원에서는 주식회사 무극이 생산 · 판매하는 강정제나 강정주에 대해 특별한 제재 조치가 없을 거랍니다.”

“그렇담 다행이네요.”

“우리 쪽에서 처음 시도했던 것은 무후주(武后酒)였잖아요. 판매는 어느 정도 신장됐습니다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거든요.”

“무슨 말이죠?”

“미우라 클럽에서 중국산 소흥주(紹興酒)를 들여올 계획이랍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려나 봐요.”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한 이유가 어딨답니까?”

“갑자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력주를 양산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수입 신청을 한 겁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술에 대한 판매가 허락됐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김시우는 술에 관한 한 자신이 넘쳤다.

“전 그런 생각을 해 왔습니다. 우리가 양산 체재로 들어간 ｢무후별주｣는 중국에서 만든다 해도 한 번 겨뤄 보고 싶거든요. 어느 것이 진짠지 보여주고 싶어요. 요즘 민속주점에 가면 그런저런 이름이 붙은 술이 많잖아요. 정력에 좋다는 한약주도 있지만 한 번 마셔 보면 막걸리에 감초를 담근 냄새만 나더라니까요.”

“설마 그렇기야….”

“아니에요, 정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했어요. 요즘 허위 광고하며 술 팔았다간 금방 문 닫아요. 그런데 오늘 김상무님 차암 이상하시다. 평소와 달리 말이 참 많으시네요.”

“그럴 수밖에요.”

“왜요?”

“오늘 두 종류의 술이 시음용(試飮用)으로 나왔거든요. 하나는 ｢무후별주｣구요, 다른 하나는 밤잠 못 주무시고 부인 눈치만 살피는 남편들을 위한 ｢옥방회춘주(玉房回春酒)｣예요. 가격 면에서도 ｢소흥주｣와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럼, 신년엔 두 종류의 술을 선보일 작정이세요?”

“아니지요. 일단은 ｢무후별주｣를 내보내 ｢무후주｣의 판매 신장에 도움닫기로 쓸 계획입니다. 상황을 보아 ｢옥방회춘주｣는 비장의 카드로 활용할 거구요.”

“당장 출시를 않겠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상반기는 지나야 할 것으로 보이거든요. 우선은 약효가 너무 뛰어나다는 것에 문제가 있구요. 일단 사장님께서 시음을 해보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