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무엇하나 잘 처리하지 못합니다. 무능하기 때문에 이 모양으로 지내지만요.”

이동박이 받아넘겼다. 그는 이미 상대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3백이면 적지 않은 액숩니다만,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정기자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수입을 잡을 수 있어요. 3백은 푼돈에 불과하죠. 만약 말입니다. 정기자가 알고 있는 자료를 정부에서 입수하게 되면 그에 대한 보상도 일정 비율 따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합법적으로 일하는 것이지, 음지에서 사기나 치고 주먹을 휘두르는 양아치가 아니란 얘기죠. 자, 넣어 둬요. 사회 선배가 후배에게 이만큼도 못한다면 슬픈 일이죠.”

정문호는 일단 3백을 챙겼다. 그러고 보니 괜히 미안한 생각에 혀가 근질거렸다. 그는 슬그머니 뒷얘기를 덧붙였다.

“저기 말입니다. 사실 이 내용이 맞는지 어떤지 몰라 손을 못 대고 있었거든요.”

“?….”

정문호는 주머니에서 사각 봉투 하나를 꺼내 놓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내용물을 보는 순간 이동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정공칠 실장이 죽기 전에 남긴 ｢추사정(秋思亭)｣이라는 메모였다.

“이 메모지를 입수한 것은 차석만 씹니다.”

“뭐요?”

“사고가 난 다음날 아침 차석만 씨는 정실장을 만나러 갔었답니다. 몸이 불편한 중에도 상당히 기다렸던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만나자마자 그런 메모지를 주었겠죠. 정실장은 꺼져가는 목소리로, ‘생각을 그치지 말고 동서남북으로 걸어 보세요’ 했답니다. 뭔가, 상대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잖아요?”

“메시지라?”

“아무리 고상하게 죽는다고 임종 직전에 그런 말을 했겠어요. 경찰에 알린 건 그후였어요. 차석만이는 사무실로 돌아와 평소와 같은 방법으로 박부장에게 메시지를 전달했어요. 사실 그 당시 메모지며 귀엣말처럼 들었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까마득히 잊고 있을 겁니다.”

“메시지는 보관함 같은 곳을 이용합니까?”

“바로 맞추셨어요. 박부장은 지난 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의 개통과 함께 마련된 보관함을 이용하고 있었어요. 두 개의 복제된 열쇠를 사용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랐죠. 제 앞에 있는 이 자료는 박부장이 실종된 후 처음으로 햇빛을 본 거죠.  ｢서삼릉 미스터리｣는 역사적으로 파고들면 시비꺼리가 많아요. 정문은 일본 신사의 형태인데다 담과 묘역은 날일(日) 자 형태로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잔 수작으로 봐야겠죠.”

“내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박부장님의 보관함에서 자료를 얻은 후 몇 가지 의문점을 갖게 됐거든요. 그게 탤런트 윤모양의 목걸이에 새겨진 한시였죠.  한시는 어떤 시를 본 따 지은 것이라 추정되거든요. 그곳이 어디냐 하면, 바로 ｢추사정｣ 안에 걸린 편액의 시구예요.”

그곳에 걸린 편액에 씌어진 싯귀는 다음 같은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