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오피스텔 720호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충길은, 어디선가 걸려 온 전화에 심각하게 통화했다. 그는 이동박이 들어오자 한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했을 뿐 통화는 계속되었다. 민소라가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메모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정문호 기자한테 연락이 왔었어요. 아마, 사장님이 가르쳐 줬나 봐요. 위치를 묻기에 대충 말했더니 건너편 민속 주점에 있대나 봐요.”

“무슨 일이래?”

“글쎄요. 사장님이 이곳 전화를 가르쳐 줄 정도면 간단한 일은 아닐 거구요. 급한 일 아니면 이 시간까지 기다리겠어요.”

“사장님께 전활 넣어 봐.”

“3시 이후부터 연락이 안돼요.”

“그 양반 어디서 쎄븐 오디 하는 거 아냐. 도박이라면 자다가도 뛰어나간다던데.”

마충길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동박이 책상 옆 간이 의자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그의 눈길은 왼손으로 아래턱을 감아쥔 마충길의 심각한 낯빛을 맴돌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별건 아니오. 마상섭 대령이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모양이오. 10.26을 일으킨 김부장 구명 운동을 한다는 소문이 돌아요. 그 친구 왜 그런지 모르겠어. 아참, 장민호 쪽은 어떻습디까?”

“자료 수집 중입니다.”

“장민호 회장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생각해 봤소?”

“죽은 정실장 아닙니까.”

“장회장 주변을 돌다 보니 그런 게 나옵디다. 한강변에 있는 별장에서 동반 자살한 정실장 기록을 읽다 보니 의심나는 부분이 한둘 아니에요. 그래서 그 사람의 출생에서부터 최근 10여년 간의 행적을 파고들었는데….”

특별한 게 걸려나왔다는 것이다. 언론계에 몸을 담았다는 풍문은, ｢사건과 추적｣이라는 주간지의 특집 부장으로 3년반 동안 근무한 경력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제야 이동박도 자신의 이력을 털어놓았다.

“마대령님, 저 역시 그 주간지에 근무 했었습니다. 아직 확실한 게 나오지 않아 말씀 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스캔들｣ 잡지로 옮기게 된 동기가 바로 정실장의 미스테리였어요. 이젠 저희 쪽에 중대한 이슈로 떠오른 사안이지만요.”

이동박이 ｢사건과 추적｣에 취재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하루 종일 묵은 기록을 뒤지는 게 일과였다. 물론 민소라가 그런 일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일이란 사건만을 찾아서는 소용이 없다. 이미 드러난 사건이라도, 그 사건을 밀착 취재했을 때 어느 정도의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이게 포인트였다. 경미한 사건이든 큰 사건이든 그것이 얼마짜리 기사인가를 저울질하는 게 그의 일과였다.

신문을 뒤적이다 이번에는 메모철을 넘겼다. 대충 대충 넘기다가 눈에 확 띄는 곳이 있었다. 그것은 예비 광고 형태인 ｢서삼릉(西三陵) 미스테리｣였다. 그 기사는 <누군가 보고 있었다>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다음 호에 실린다는 안내 기사엔 ‘상중하’로 나누어 분재한다는 것을 굵직한 고딕체로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비 기사가 나간 다음 호엔 ｢서삼릉 미스테리｣는 실리지 않았다. 어찌된 셈인지 사과 기사도 없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제가 ｢사건과 추적｣의 취재부장으로 있을 때 그 부분을 파고들었습니다. 기사가 나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사장님께 물었죠.”

“편집국장은 없었나요?”

“소규모 잡지사엔 있으나마나죠. 모든 기사를 사장이 주무르니 배알이 꼴려서라도 한두 달을 넘기지 못하거든요. 일단 예비 기사가 나갔으니 적어도 사장님은 아리라 생각한 거죠.”

“?….”

“그런데 그 양반 모르더라고요. 어떻게 된 양반이 자기 잡지에 그런 기사가 나갔는지를 몰라요. 여러 채널을 통해 수소문하다 보니 뜻밖의 소득이 있었어요.”

이동박은 당시를 회상하는 듯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띄었다.

“처음엔 별거 아닌 것으로 여기고 다른 사건을 조사하려 했는데, 특집부에 근무하는 직원이 ｢서삼릉 미스테리｣는 정공칠이가 근무할 당시 그림자처럼 따르던 우창석 차장이 만졌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공칠이는 자연스럽게 남차장이 취재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는 얘기죠.”

“그래요?”

“저는 그때 이런 가정을 해봤습니다. 우창석 차장이 가져온 기사가 ｢한국 부동산 컨설팅｣ 장민호 회장의 약점을 잡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구요. 사실 그러잖습니까. 정공칠이가 장회장의 약점을 쥐고 있지 않은 이상 생면부지의 인물을 갑자기 비서실장으로 특채할 이유가 없거든요.”

마상섭 역시 수긍했다.

“충분히 일리 있는 가정이오.”

“장민호와 정공칠, 그리고 우창석을 점으로 찍고 그것을 선으로 잇대었을 때 하나의 수식(數式)이 성립된 겁니다. 즉, ｢서삼릉 미스테리｣는 우창석이 취재했고, 그 기사를 근거로 정공칠이 장민호를 협박 내지는 회유했을 가능성이 커요. ‘서삼릉과 장민호.’ 분명 무언가가 있다는 냄새가 짙거든요.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차장을 만나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했죠.”

“만나 보니 어땠어요?”

곽성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사람, 실종됐어요.”

“실종?”

“지난 4월 우 차장은 일간지 선후배 기자들과 함께 이완용의 폐묘를 취재하러 전북 익산으로 내려갔어요. 당시 동행했던 기자들은 일곱인가였답니다.”

신선이 내려와 춤추는 형국으로 알려진 명당 중의 명당. 그곳은 풍수사들의 입살이 떠들썩하던 자리였다. 봉분을 헐자 아카시아 나무뿌리가 관을 친친 감아 버린 모습이 드러나자 악담이 풍성해졌다. 땅도 거부한 묏자리라느니,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의 자리니 당대는 물론 그 뒷자손까지 좋은 일이 있겠느냐는 둥 소문이 한동안 떠돌았었다. 아마 마충길도 그런 저런 소문을 스쳐 들었던 모양이었다.

“관은 멀쩡한데 주검이 엉망이란 기사를 본 것 같소.”

“그렇습니다. 봉분을 파헤쳐 폐묘시키고 이완용의 주검도 화장해 인근 장암천에 띄워 보냈답니다. 우 차장은 이곳에서 선후배 기자들과 민박하며 밤늦도록 술 마시고 다음날 정오에야 일어났답니다. 그 동안 네 사람은 이미 서울로 출발했고 셋만 남았죠.”

우차장은 그들과 동행하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무언가를 메모하고 깊은 생각에 빠져들더니 어디론가 황급히 떠났다는 게 동행인들의 목격담이었다.

“어디로 떠났다면, 취재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루 늦게 도착한 일간지 후배 기자와 약속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추적 기사를 잘 쓰는 노인욱(盧仁旭) 기잔데 둘은 대학 동기였어요. 그러다 보니 한사람이 취재하고 기사는 둘로 나눈 거죠. 매국노 이완용의 폐묘에 대한 기사는 특종이 될 수 없었죠. 적당한 시기에 한 귀퉁이 다뤄 주는 것으로 그만이거든요.”

그러나 기사화 시키지 않았다. 아무리 매국노라지만 죽은 자의 무덤을 깨뜨려 안에 든 내용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논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노인욱은 이 기사를 ｢스캔들｣ 잡지의 박일우 선배에게 송고해 버렸었다.

“사실 기사라는 게 그렇거든요. 어떤 건 냄새만으로 특종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되는 개미구멍을 파고 들어가 뜻밖의 수확물을 얻는 것도 같은 이치죠. 노인욱이가 대충 메모된 것을 주었기 때문에 박일우가 움직일 동기를 준거죠.”

“무슨 말이오?”

“우차장의 집을 찾아가게 한 동기를 부여한 거죠. 제 생각입니다만, 박일우는 그 집에서 뭔가를 얻었을 겁니다. 우차장의 여동생이 그 점을 증명했으니까요.”

“그게 서삼릉 미스테린가?”

“확실한 건 모릅니다. 박일우도 실종 됐거든요. 이유야 어떻든 이상하잖습니까?”

전화가 걸려왔다. 민소라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수화기를 막고 이동박을 향해 싸인을 보냈다.

“부장님, 정기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