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실장은 서른다섯에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아요, 서른다섯에 죽었죠.”

“그렇다면 그 영감님 점술은 끝내 주는데?”

“점법도 어찌 보면 지극히 질서 정연해요. 상대를 척 보고 운수를 뽑아내는 것은, 상학에 대한 선험적인 이해가 있기 때문이죠. 상법의 대가인 마의나 수경 선생의 법술은 확률로 설명할 수 있어요. 즉, 목이 구부러지고 두 눈이 작고 흐릿한 사람은 기 부족증에 걸려 대부분 스무 살 이전 세상을 떠나거든요. 그리고 머리가 큼직하고 이마는 뾰쪽한데 피부가 건성으로 말라 있으면 이 사람 역시 스물 대여섯을 넘기지 못하죠.”

“정실장은 어떤 경웁니까?”

“콧등이 얕고 피부가 건조한 편이죠. 상학적으론 이런 사람은 잘해야 스물 일고여덟이고, 그 고비를 넘겨도 서른다섯을 피할 수 없답니다. 두 눈썹이 맞닿으면 서른 이전에 죽는다거나 눈이 붕어처럼 튀어나오고 콧등이 없으면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는 게 대가들의 상학이죠. 그런 점으로 볼 때 정공칠 실장은 서른다섯을 넘기지 못한다는 거죠.”

다시 차석만의 얘기가 이어졌다. 사고가 나기 이틀 전 정공칠은 자신의 별장으로 차석만을 불렀다. 그는 한숨을 길게 뽑아내며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우리 집안은 복을 받으려야 받을 수 없을 겁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지리산 입구 어디에서 생사탕 집을 했었거든요. 세끼 밥 먹는 것보다 한 끼라도 뱀을 삶아 먹어야 오장육부에 응어리진 기운이 쫙쫙 풀린다고 합디다. 그래서 별명이 정구렁이에요. 내가 열두 살 때 아버진 죽었어요. 사주(蛇酒 ; 뱀술)를 다섯 사발이나 마시고 잠들었는데 고리짝에 넣어 둔 뱀들이 밖으로 나와 아버지를 친친 감아 버렸어요.”

“그럼, 뱀이 물어서….”

“뱀이 문 게 아니라 질식사예요. 수십 마리의 뱀이 아버지를 감았으니 어디 숨이나 제대로 쉬었겠어요. 평생을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간 거죠. 나는 어려서 집을 떠났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아버지를 만나러 가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어요.”

“….”

“간밤 꿈에 아버지의 임종 때가 보이더라구요. 술에 곯아떨어진 아버지의 몸을 친친 감아 버린 수십 마리의 뱀들. 그 뱀들을  보았습니다. 그것들이 끼륵끼륵 울어대더라구요. 어찌 소름이 끼치던지 비명을 지르고 깨어났는데 어둑새벽이지 뭡니까. 그래서 오늘 차선생을 뵙자 한 겁니다.”

“신경 쓰시는 일이 많아 그럴 겁니다. 몸이 피곤하면 그런 꿈을 꾸거든요.”

“하긴 그래요. 차암, 차선생께선 주식회사 미로(美露)라는 곳을 아세요? 문치수 사장이라고.”

한 번쯤 들은 것 같은데 당시로선 기억하지 못했다.

“그 사람 요즘 재미있는 사업을 합디다. 뭐 성행위를 하는 데 필요한 보조 기구를 판다나요. 저번 날 여기 오면서 이런 저런 물건을 가져왔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더라구요. 어떤 사람이 맨 정신으로 그런 물건을 사는지 모르겠어요. 후배 소개로 찾아와 사업이 너무 어렵다고 땅을 담보로 내놓았는데…. 한 1억 가져갔나?

근데 그 친구 재밌어요. 사업이 거의 망하게 됐을 때 엉뚱한 전화를 했어요. 만약 자기에게 사고가 생기면 어디 어디에 전화해서 땅값을 3백 배 정도 올려 팔라는 거죠. 1억을 빌려 갔으니 3백 배면 3백억이죠.”

“그 사람 재밌네요. 그 땅에 무슨 껀수가 있었나?”

“그런가 봐요. 문사장이 자살했다는 신문을 보고 그 말대로 했더니 전화를 받은 상대가 협상을 하자는 겁니다. 더구나 내일 ‘보너스’를 보낸다지 뭡니까.”

“보너스?”

“아주 예쁜 일본 아가씨예요. 자기네들이 영업적으로 숨겨 놓은 비장의 카드라나요. 그 사람들 얘기론 천하에 둘도 없는 명기(名器)라던데…. 이름이 유끼꼬(雪子)라던가…. 나도 그 처녀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늙은 너구리가 보물 다루듯 애지중지한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내일 하루는 쉬고 모레 아침 만납시다. 내 긴히 할 얘기도 있고.”

그것이 살아 있는 정공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가볍게 한숨을 몰아쉬며 차석만은 덧붙였다.

“내가 조금만 일찍 알아냈다면 그렇겐 안 당했을 겁니다.”

그것은 점사에 대한 풀이였다. 일본 대사관 앞 좌판에서 일러 받았다는 점사는 ‘일락유수하(日落流水下) 영별설강시(永別雪降時)’였다. 즉, ‘해가 흐르는 물아래 떨어지니 눈이 내릴 때 영원히 이별하도다’라는 내용이다.

이 글귀를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던 것은 ‘흐르는 물과 눈 내리는 날’ 때문이었다. 그 같은 문구로 인해 좋지 않은 일이 닥칠 시기를 동지섣달이라고 가볍게 풀어 버렸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 아니라 누군가가 유끼꼬(雪子)를 이용해 상대와 자폭시킨다는 의미였다.

정실장의 사고 직후 차석만은 일본 대사관 건너편으로 달려갔으나 좌판을 벌이는 노인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