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차선생님이시죠. 전, 정희주(鄭喜珠)인데요”

“누구시라구요?”

“저번 토요일에 시아버님 이장 문제로 들렀었죠.”

“아, 예에.”

차석만은 반색했다.

“급히 상의할 일이 있거든요.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어요? 어디냐 하면요, 충무로에 있는 파라다이스란 모텔이에요. 305요.”

차석만은 부리나케 달려갔다. 금방 목욕을 끝냈는지 그녀는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채 젖은 머리를 타월로 감고 있었다.

“오시라 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오늘 업무는 끝났어요.”

“그렇담 다행이고요.”

그녀는 냉장고에서 반쯤 담긴 양주를 가져왔다. 테이블에 놓인 빈 잔에 5분의 1쯤 따라 차석만에게 권했다.

“저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전 너무 외롭거든요. 남편 쪽엔 사촌들이 있지만 저의 외로움을 상대해 줄 입장은 못돼요. 마음이 너무 심란해 사주나 한 번 보려고요. 복챈 많이 드릴께요.”

“별말씀 다 하십니다. 그냥 봐 드려야죠.”

“어머, 그건 싫어요. 복채 안 드리면 효험이 없다는데.”

“그렇진 않습니다.”

그녀는 준비된 봉투 하나를 핸드백에서 꺼내 놓았다.

“생년월일을 말해 보시죠.”

“음, 저는 1955년 3월 18일생이거든요. 저의 어머님이 그러시는데 인시(寅時)에 태어났대나 봐요.”

“어디 봅시다. 1955년이면 을미년(乙未年)이고, 3월이면 경진(庚辰)이죠. 그리고 18일이면….”

차석만은 손가락으로 꼽아 보고 나서 일진을 뽑아 냈다. 신축(辛丑)이다. 그리고 인시생이다.

“저는 당사주법(唐四柱法)으로 보거든요. 정여사님의 연운이 천역성(天驛星)이니, 월운은 천수성(天壽星)이 됩니다. 또한 일운은 천귀성(天貴星)으로 떨어지고, 시운은 천권성(天權星)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르죠. 풀어주셔야죠.”

“당사주법은 점치는 사람의 생년월일과 타고난 시를 따져 숙명성(宿命星)이 어떤 건지 알아내는 점법입니다. 다시 말해 일년의 운수를 헤아리는 연성(年星), 그 달의 운수가 어떤지를 살피는 월성, 하루 운세를 알아내는 일성, 그리고 태어난 시로 알아내는 시성을 종합해 숙명성을 뽑아냅니다. 정여사님의 경우는….”

“어머, 싫어요. 자꾸 정여사, 정여사하니까 나이가 무척 많은 것 같잖아요. 그냥 희주라 하세요. 그게 편해요.”

“그렇지만….”

“희주라고 부르지 않음 듣지 않겠어요.”

“알겠습니다. 희주 씨라 부르죠.”

“좋아요. 말해 보세요.”

“음, 그러니까 정여사님은.”

“에이, 또 그러신다.”

“아참, 희주 씨는요. 일년 운수가 천역성이니 별로 좋지가 않네요. 공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특별한 이상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집을 떠나 유랑 신세를 면치 못해요. 여러 가지 액난을 당한 후에 비로소 평안을 얻거든요. 그리고 월운을 보면 희주 씨의 명성이 나이에 비해 일찍 알려진다는 뜻이죠. 또한 일운은 기지와 권세가 차고 넘쳐요. 하는 일에 권위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시운을 보면 말솜씨가 좋고 재치가 뛰어납니다. 무난한 사주예요.”

“젊어서 죽진 않겠죠?”

“죽는 것은 문제가 안 되는데 조심해야 될 게 있네요. 집을 나서면 관재수가 있습니다.”

“관재수요?”

“누구에게나 있죠. 다만, 희주 씨의 경운 다른 사람에 비해 기운이 좀 센 편이죠.”

그녀는 훌쩍 잔을 비우고 그곳에 5분의 1쯤 술을 채워 차만오에게 건네주었다.

“자요, 차선생님. 따불로 드세요. 괜찮죠? 전 술이 좋아요. 시름을 잊게 해주잖아요. 어느 책에 그런 말이 있드라고요. 술을 마시는 건 일시적인 자살이래요. 그래서 술을 마심으로써 얻어지는 행복은 아주 짧대나요. 일테면 불행이란 걸 일시적으로 중절(中絶)시켜 그런대요. 그치만 상관없어요. 술을 마시는 게 자살이든, 중절이든, 술이 없는 곳엔 사랑이 없잖아요. 그쵸?”

아직도 긴장에서 헤어나지 않은 차석만과는 달리 그녀는 갈수록 대담해졌다.

“차선생님, 우리 가끔 만나요.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서로 위로두 하구요. 증말, 위로 받구 싶어요.”

맥주 석 잔이 한계 주량인 차석만은 양주 두 잔을 따불로 마시자 얼굴이 홍시처럼 익어 버렸다. 그것을 기다린 것처럼 정희주는  벗다시피 한 상체를 밀착해 왔다.

“왜 이렇게 더운 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걸치고 있던 가운을 벗어버렸다. 알몸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다가왔다. 종류를 알 수 없는 향기가 코끝에 어른거리자 후끈 달아오른 열기는 기어코 그녀의 몸을 탐색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이래야 겨우 스물 넷이라는데 그녀는 많은 경험이 있어 보였다. 필요 이상의 오버 액션이 그걸 말해 주었다.

차석만이 이층을 쌓자 그녀는 두 손을 내저으며 비명을 질러 댔다. 금방 침대에서 떨어질 듯 위태로운 상황을 연출하며 ‘살려 주세요!’를 연발했다. 차석만은 뒷머리를 둔기로 강타 당한 듯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문이 열리며 두 사내가 밀고 들어왔다. 한 사내가 익숙하게 비디오 테이프를 되감더니 플레이 스위치를 눌렀다. 칙칙 거리는 물결파가 지나가자 조금 전에 있었던 달갑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녹화 테이프를 보며 살집이 좋은 사내가 으름장을 놓았다.

“아따, 이 자식 포르노 찍고 있구만잉. 싫다는 가시나를 놓고 무슨 지랄이냐. 살려 달라는데도 들은 척도 않구만잉. 아야, 이눔의 시끼 점쟁이라고 안 그랬냐?”

깡마른 사내의 대꾸에 비늘이 붙어 있었다.

“니기미, 점쟁이 제 죽을 날 모른다드니만 꼭 그짝이네. 남의 기집 몸에 바람 넣으면 뭔 일을 당하는지 맛을 봐야 쓰겄구만잉.”

깡마른 사내는 냅다 한 주먹을 날렸다. 저만큼 나동그라진 차석만은 완전히 죽을상이다.

“원하는 게 뭡니까?”

살집 좋은 사내가 정희주를 향해 턱짓했다.

“당신은 나가 있어.”

그녀가 나가는 것을 보며 살집 좋은 사내는 양주 병을 통째로 들어 몇 모금을 벌컥대다 내려놓았다.

“예에, 2천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