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윤 잠시후 말해 주리다. 가만, 마대령께선 ｢팔택가상법(八宅家相法)｣이란 걸 들어보셨소?”

송길주는 상대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았다.

“집의 구조상 삼대 요소는 대문과 큰방 · 부엌이오. 이것들이 어느 방향에 어떻게 위치했는가로 길흉을 따지는 게 ｢양택삼요｣예요.

여기엔 두 가지 방법이 있소이다. 하나는 동사택(東四宅), 다른 하나가 서사택(西四宅)이오! 이 둘을 합해 집자릴 보는 게 ｢팔택가상법｣이오.

이 집을 동사택 가상법으로 보면 북문(北門 ; 문은 대문)에 북주(北主 ; 주는 안방)니 풍수사들은 ｢복위주순양지택(伏位主純陽之宅)｣이라 불러요.”

“좋은 집터란 뜻이죠?”

“집터에 대한 설명이 ‘수약중봉 처자난(水若重逢妻子難)’이라 했으니 아주 나빠요.”

“예에?”

“초년 운이 강해요. 허나 그 운은 오래 가질 못합니다. 아내와 상극이며 아이들은 상하고 집주인은 겉돌아요.”

마상섭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가상법상 그렇게 흉측한 곳인데 어찌 안가로 정하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손질하기에 따라 길흉이 바뀌는 게 가상법의 묘미요. 쓸모없는 쇠붙이라도 대장장이의 손끝에 놓이면 여러 용도로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요. 이런 집은 부엌의 방위에 따라 길흉이 바뀌죠. 이 집 부엌은 북동쪽이니 가운데 아들에게 크게 불리하고 젊어서 요절합니다.”

사전에 복덕방에서 귀동냥한 정보에 의하면 아들 셋인 이 집안은 거의 멸문지화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 것을 알면서 따라나선 것은 큰 풍수로 알려진 송길주라는 이름 석 자 때문이었다. 마상섭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헐고 새로 짓는 게 이롭겠지요?”

“그건 아니오.”

“?….”

“이 집은 개축이나 증축으로 소란 떨 필요가 없어요. 고쳐야 될 곳은 부엌 한군데요. 부엌을 남동으로 내면 가상법상 완벽하게 복 · 록 · 수를 갖춥니다. 이것저것 생각해 볼 필요 없이 계약하세요. 이 집은 닭이 하늘을 향해 울음을 터뜨리는 계명형(鷄鳴形)입니다.”

얘기는 이것으로 일단락 됐다. 계명형의 터가 서울에 그 집만은 아닐 터인데, 송길주는 무슨 이유로 의기소침한지 알 수 없었다. 안가를 정해 준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었다면 십수 년 만에 나들이를 나선 송길주의 목소리가 메마르진 않았을 것이다.

“장안에 계명형의 터가 한둘이겠소만, 그 집만큼은 특별하네. 3십여 년 전 돌림병이 서울 장안을 휩쓸었을 때 유독 그곳만 피해 간 건 집터 때문이었네. 그곳은, 60년 만에 나타난다는 ‘오명계(五鳴鷄) 터’였으니까.”

풍수적으로 물고기는 집안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사대부 집안의 처마 밑 네 귀퉁이에 정겹게 흔들리는 풍경은 물고기 장식으로 반닫이나 옷장 · 돈궤 등등의 자물통에도 예외 없이 물고기 장식이다. 물고기는 눈을 뜨고 자므로 도둑을 지킨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렇다면 닭은 어떤가? 울음으로 새벽을 여는 태양의 사자다. 제사 시간을 알려주는 축시(丑時 ; 01-03시) 닭과 새벽을 알리는 인시(寅時 ; 03-05시) 닭의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첫닭이 우는 계명 축시(鷄鳴丑時), 후자는 산짐승들이 야간 활동을 멈추고 잠자리로 들어가는 호명 인시(虎鳴寅時)다. 그러나 오명계는 초경에서 오경까지 한 번도 시각을 어기지 않고 다섯 번 운다. 그래서 오명계다. 특이하게도 이 닭은 영웅 · 호걸의 출현에 맞춰 6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정꼽추 터’를 안가로 정해 준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고 송길주는 탄식했다. 어쩌면 자신의 실수로 군부가 전면에 나설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어 벽암이 분위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허, 그런 걱정 아니해도 되네. 그렇다고 군정(軍政)이 이어지겠는가. 쓸데없이 상심하는 건 마음이 황폐해진다니까. 얼마전 유암(幽岩 ; 손창하의 호)이 불편하다 하여 만나러 가던 중, 우연히 내산동(전라북도 익산군 낭산면)에 들르게 되었네.”

송학수가 추임새를 넣었다.

“그곳 어디에 이완용의 묏자리가 있었지?”

“내장 부락이라 그러더구만. 그 마을 가겟방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는데 한 아가씨가 평상 귀퉁이에 앉아 낡은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더라니까.”

벽암의 얘기는 5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단발머리 처녀는 도무지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는 듯 지도를 펼친 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벽암의 부드러운 눈빛을 의식해서인지 단발머리 처녀는 해묵은 지도의 중심점을 물어 왔다. 한동안 들여다본 후에야 벽암은 감을 잡았다.

“동그라미 세 개가 그려진 곳을 구심점으로 삼아 왼쪽엔 금산사가 분명한 듯싶고, 오른쪽으로 그어진 삼각표시가 아무래도 제비산(帝妃山)으로 보이오.”

단발머리 처녀의 낯빛이 밝아졌다.

“제비? 날아다니는 제비?”

“제왕의 부인을 나타내는 제비(帝妃)요. 금산사에서 2킬로 남짓 떨어진 청도리 동곡 마을에 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벽암은 단발머리 처녀가 일본인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만큼 한국어에 능란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전 일본에서 왔거든요. 조부님 심부름으로요.”

벽암이 어리둥절해 하자 그녀가 다시 말했다.

“전 게이꼬(京子)구요, 조부님 함자는 나가시마 고오따로(中島河太郞)구요.”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지도의 중심점을 검지 끝으로 짚었다. 그곳은 제비산에 위치한 정여립(鄭汝立)의 생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