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다니오?”

“잠시 전에 말했던 것처럼 가위는 오행의 네 번째인 금입니다. 그것으로 꽃꽂이를 한다는 건 역대 정권의 가지를 자른다는 의미를 포함해요. 다시 말해 제4공화국까지 오는 동안 흐드러지게 피었던 모든 향기는 가위(剪)에 의해 훼손되며, 제5공화국은 전씨(剪氏 ; 가위)와 관계 있는 인물이 장악합니다. 한데, 얼핏 손가락을 꼽으면, 3김씨를 포함해 유명 정치인들을 뒤져봐도 가위 같은 성품의 인물은 드러나질 않습니다.”

마상섭이 더듬거렸다.

“가위질을 하면 부작용이…, 날 게 아닙니까?”

“그게 두려웠다면 하극상이라는 말(馬)을 탔겠어요. 낙마(落馬)가 두려웠다면 어찌 말 등에 올라 질타했겠소!”

“승산은요?”

“반반이오.”

마상섭은 침묵했다. 잠시 전만 해도 군부가 나선 것은 사회 혼란을 막는 것이라 했다. 어느 정도 안정세로 들어가면 군부는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해몽이 혼란을 가져온 것이다.

‘박대통령이 시해되면서 군정이 끝난 것으로 믿었는데, 또다시 군부가 정권을 잡는다?’

그건 안 될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 마상섭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송길주는 심상치 않다는 듯 갸우뚱거렸다. 십이궁 관상법(十二宮觀相法)으로 볼 때 노복궁(奴僕宮 ; 두 눈 아래)이 한쪽으로 치우쳐, 꺼진 듯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상학으론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그쪽 생년월일이 어찌 되오? 내친걸음이니 자기운(自己運)이나 한 번 봅시다.”

마상섭은 잠시 멈칫거리다 입을 열었다.

“1944년 8월 10일생입니다.”

“음력이겠지요?”

“그렇습니다.”

“1944년 8월 10일생이라, 간합(干合 ; 십간으로 보는 점괘의 내용)에는 호색(好色)을 경고했어요. 그쪽 길에 빠지면 평생을 망칠 소용돌이에 휩쓸립니다. 그것만 조심하면 뒤 세월은 무난합니다. 다만, 중간 중간에 깊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어요. 토끼가 제 목숨 구하려고 굴을 셋 팠는데, 함정은 그보다 하나가 많습니다. 함부로 사람을 믿지 마시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마상섭은 30분을 더 있다 돌아갔으나 다음날 정오가 이른 시각 다시 나타났다.

“송선생님께서 가상법(家相法)에 조예가 깊으신 것을 어젠 깜빡했습니다. 부디 좋은 자릴 골라 주십시오.”

이른바 안가(安家)를 구해 달라는 말이었다.

“좋은 집터를 구하려는 게 나쁘다 하겠소만, 가상의 원 줄기를 따진다면 관상이나 수상처럼 타고난 생김새로 운수를 알아내는 게 상학(相學)이오. 선한 인연은 선하게, 악한 행위는 악하게 보응을 받아요. 자자손손 선한 일을 해 왔거나, 선한 인연을 받아야 복록을 누린다는 이치가 하늘의 뜻이오. 인위적으로 좋은 터를 고르는 건 그곳에서 선한 일을 했을 때에만 운수가 맞아떨어집니다.”

“그래서 찾아뵈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을 꾸미는 게 안가라 들었소만?”

“그렇진 않습니다. 제가 군인이 된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지 사욕을 채우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이번 일에 뛰어든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고 믿어도 되겠소?”

“그렇습니다.”

“좋아요, 좋아. 그런 뜻이라면 한자릴 골라 주리다.”

송길주는 곧 장충동으로 향했다. 그곳엔 왜정시대부터 눈여겨 봐 둔 집이 있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가 허리 부러진 주정꾼처럼 엉거주춤 서 있는 ‘정꼽추 터’였다.

정꼽추는 1910년대 서울 종로 거리의 거상(巨商)으로 군림했던 정태환(鄭台煥)의 별명이다. 그는 장안 제1의 전당포 왕이었다. 강원도와 경기도 일원에 수만 평의 야산을 사들여 뽕나무밭으로 가꾼 식림왕(植林王)이었던 그가 국풍(國風 ; 나라에서 제일 가는 풍수)으로부터 거금을 주고 구했다는 곳이 ‘정꼽추 터’였다. 불일 듯 일어난 그의 재운(財運)은 집터에 있었다는 소문이 오랫동안 떠돌았었다. 송길주는 오랜만에 집안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다.

“요즘은 집을 고를 때 건축학적 입장을 고려한다 들었소. 예전에야 건축 기술이며 자재도 턱없이 부족했으니 집을 꾸미려면 선험적인 지혜를 필요로 했겠지만서두.”

뒤따르던 마상섭을 의식해서인지 이따금 이곳저곳을 손가락질해 보았다. 몸채는 경사지지 않으면서 막다르지 않고, 집 뒤로는 나무숲의 경관이 빼어나 소설가나 시인이 살기에 적당한 장소로 보였다.

“어느 집이나 가상법상 관련된 터부는 있기 마련이오. 그것을 미신이라 여길지 모르나 오행설로 보면 과학적인 게 한둘이 아니요. 가상법으로 볼 때 흥미로운 건,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경우가 많아요. 울안에 나무를 심으면 곤할 곤(困) 자니 꺼린다던가, 디귿자 형의 집에 장독대를 왼편이나 오른편에 놓으면 망할 망(亡) 자가 되어 동티가 난다든지, 또는 부엌에서 밥을 풀 때 대문 밖으로 지나가는 복을 문안으로 끌어들이는 시늉이 되어야 좋다는 등의 속신(俗信) 같은 게 그래요. 그런 점으로 봐도 이 집은 흠잡을 곳이 없어요.”

마상섭은 의아롭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어찌 집값은 시세의 절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