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송길주는 역한 구토 증세를 느꼈다. 순간적이었지만 코끝을 스치는 바람은 분명 피 냄새였다. 전류가 관통해 가듯 찌르르 몸이 울리며 식은땀이 돋았다.

“굳이 해몽하라면 이 얘기부터 하겠소이다.”

“말씀하십시오.”

“조선을 세우기 전 이성계가 꿈을 꿨답니다. 빈집에 들어가 서까래 셋을 지고 나왔는데 일천 집의 닭들이 ‘꼬끼오’ 울고, 돌아오는 길에 바라보니 붉게 핀 복사꽃이 지고 거울이 떨어져 박살나더랍니다.”

마상섭은 잠자코 들었다.

“깨어 보니 꿈이었어요. 도대체 그 꿈이 어떤 걸까. 길조인가, 흉몽인가? 며칠을 곰곰 생각하다 해몽 잘하는 사람을 수소문했어요. 길거리에 떠도는 이 소문 저런 풍문을 종합해 보니 설봉산 토굴에 칩거한 어떤 이승(異僧)이 도가 틔었다는 말을 듣게 된 거요. 그곳을 찾아가 다짜고짜 꿈 얘기부터 털어놨소이다.”

처음엔 능력 밖의 일이니 돌아가라 했지만 이성계는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졌다. 해몽은 한참 후 얻을 수 있었다.

“빈집에 들어가 서까래 셋을 지고 나온 것은 왕(王) 자를 뜻하며, 일천 집의 닭이 ‘꼬끼오’ 우는 것은 ‘고귀위(高貴位)’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높고 귀한 자리에 오른다는 뜻이지요. 복사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박살난 것은 ‘화락종유실(花落終有實) 경파기무성(鏡破豈無聲)’으로, 꽃이 떨어졌으니 마침내 열매를 맺고 거울이 깨어지매 어찌 큰소리가 없겠냐는 겁니다. 머지않아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다는 몽참(夢讖)이었소이다.”

태조 이성계에 대한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야사였지만 마상섭은 아무런 내색도 없었다.

“해몽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꽃이 떨어지는 것을 ‘낙(落)’으로 풀어냅니다. 그 때문에 해몽이 좋을 리 없지요. 꽃이 떨어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꽃은 떨어짐으로써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마상섭은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설봉산 토굴에 머물렀던 이승은 무학 스님이었어요. 그 분에 대해 마대령님도 아시지요?”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잖습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성계가 해몽을 부탁하러 왔을 때 무학 대사는 어떤 걸 느꼈을까요? 장래의 편안함이었을까요? 아닐 겁니다. 살기였겠지요. 어쩌면 자신의 목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을 겁니다. 해몽은 천기(天機)예요. 그걸 누설함으로써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걸 염두에 뒀을 겁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성계 역시 흔들렸겠지요. 해몽을 마친 무학 대사가 큰절을 올리며 ‘머잖아 장군께선 왕이 되실 것입니다’ 했을 때 얼마나 놀랐겠어요. 그렇지만 더없이 기뻤겠지요. 한편으론 목숨의 위협을 느꼈잖겠어요. ‘왕이 된다’는 하늘의 비밀을 알고 있는 무학을 살려 둘 것인가, 죽일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지 않았겠어요?”

비로소 마상섭이 말을 받았다.

“그 분을 살려줬습니다. 아니죠, 오히려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새 왕조의 출범에 잡음을 피할 수 있었어요. 그 꿈은 장차 보위에 오른다는 만금(萬金)의 값어치가 있는 내용이잖습니까.”

“꿈이란 나름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조금전 마대령이 들려준 꿈도 그만한 값어친 충분합니다.”

“예에?”

“그러나 천기를 누설한 후 일어날 일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나 역시 그 옛날 설봉산 토굴에 칩거했던 이승 같은 심정입니다.”

마상섭은 그제야 눈치 챘다. 단호한 그의 말이 송길주에게 믿음을 주었다.

“내 목을 바쳐서라도 송선생님을 보호하겠습니다.”

“진정이오?”

“그렇습니다.”

“그렇담 해몽하리다. 온갖 꽃이 만발해 있는 곳, 거긴 세상이오. 도덕의 향기를 풍기는 자도 있을 것이며 패륜의 악취를 풍기는 무리도 있을 겁니다. 살사리꽃처럼 연약한 향기를 풍기는가 하면 백합이나 장미처럼 마음을 흥건히 적시는 냄새도 있을 겁니다. 향기의 강함과 약함, 이것은 개개인의 성정이 다른 이치죠. 이러한 여러 종류의 꽃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선별하는 것이 꽃꽂이죠.”

“….”

“지난 12. 12사태 이후 세상은 어수선해졌소이다. 육군참모총장이 체포되면서 주요 지휘관들이 거사 주역들로 바뀐 것은 눈 있고 귀 있는 사람이면 다 알아요. 거친 바람에 물결이 가라앉지 않았으니 지금으로선 민심이 어딨는지도 가늠하기가 쉽지 않죠. 어떤 사람은 군부가 나서서 강력한 정부의 탄생을 바란다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오랜 군정에 넌덜머리가 났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해요. 군부가 나서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단 거죠. 이런 까닭에 마대령이 모시는 분께선 어느 정도 마음고생이 있을 겁니다. 차제에 그런 꿈까지 꾸었으니….”

“송선생님, 군부가 나서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 점 안심하셔도 됩니다.”

송길주는 당찮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세상일은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

“많은 꽃이 피어 있는 세상으로 들어갔으니 이것은 본인의 의지완 상관없습니다. 어쨌건, 꽃꽂이를 하려면 가위를 써야겠지요. 가위는 쇠붙이니 오행으로 금(金)이에요. 또한 금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넷째에 해당됩니다.”

“….”

“[격암유록]을 보았더니 몇 군데 호기심 있는 부분들이 눈에 띄더군요. 그 하나는 ‘신증이씨십이년(新增李氏十二年)에 유수성중인하생(流水聲中人何生)’이라 씌어 있습디다. 이승만 정권이 12년 동안 정치하는 중에 너무 백성들을 억압해 정권이 바뀐다는 거죠. 이때가 제1공화국이겠지요?”

“그렇습니다.”

“거기 어디쯤인가를 보았더니 당시의 정세(政勢)에 대해 이런 기록도 있습디다. 천지의 운수는 일정한 이치와 법칙에서 나온다구요. 즉 순환한다는 거죠.”

“순환입니까?”

“흔히들 분열 삼방이라잖아요. 나라는 남북으로 갈리고 내부적으로 독재와 싸우니 민심이 세 방향으로 나뉘었다는 거죠. 아침에 얻었다가 저녁에 잃을 정도로 사회가 불안정하다는 겁니다. 사실 요즘 그런 징조를 느끼잖아요.”

늙은 쥐가 3월의 다툼에서 물러나고 은연중 장씨(張氏)가 이긴 듯했으나 곧 5. 16 혁명으로 이어져 군정이 시작된다는 내용은 반 페이지쯤의 뒤쪽에 있었다.

“어찌되었건, 10. 26까지 제4공화국이 지탱해 왔어요. 이젠 그게 무너질 상황이 생긴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