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물에 씌어있는 어느 것 하나 본 적도 들은 바가 없었다. 대충 몇 장을 넘기는 걸 보며 김시우가 덧붙였다.

“이 물건들은 주식회사 미로(美露)의 전임 사장이 사운을 걸었던 기획 상품입니다. 부도 직전이었으므로 회사를 회생시키는 묘수는 되지 못했지요. 회사를 설립할 당시 구미 각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성기구(性器具)’ 판매를 전담했었습니다만 한국 정서엔 맞지 않아 영업을 중단한 상탭니다.”

“그럼, 성기구를 팔겠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판매할 것은 팜플렛에 인쇄된 강정주와 강정식품입니다. 식품쪽으론 ｢천궁란(川芎卵)｣ 같을 것을 들 수 있죠.”

“천궁란?”

“이것은 머리가 무거울 때 복용하면 효과가 있습니다. 아마 마대령님도 그런 추억이 있을 겁니다. 공포나 서스펜스 영화를 숨죽이고 봤을 때, 대부분 머리가 아프고 눈이 침침해지죠. 또 사람이 많은 곳에서 담배 연기를 맡으면 머리가 몽롱한 상태가 됩니다. 이런 때 천궁란을 복용하면 효험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약재를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 하죠.”

마충길은 안내 책자를 주르르 넘기다 물었다.

“신경통 쪽은 어떻습니까? 그쪽도 만들었습니까?”

“대다수 술꾼들은 신경통으로 고생합니다. 술 취했을 땐 잘 모르지만 깰 때쯤이면 편두통이 일어나는 등 고통이 심하거든요. 날이 흐리고 비 올 때면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송지(松脂)를 준비했습니다.”

“송지?”

“민간약은 아닙니다. 물엿처럼 찐득찐득한 것으로 송진이라 부르죠. 이것을 잘 말려 가루로 낸 다음 하루에 세 번 복용하는데 1회에 4그램 정도가 적당합니다.”

“음, 의약품으로 보긴 뭣하군요.”

“그렇습니다. 종류가 여럿이니 편의상 나눈 데 불과하죠.”

“의약품인지, 강정 식품인지는 구분이 안갑니다만 식품으로 취급해도 무난할 것 같네요.”

마충길이 인쇄물을 다시 훑어보자 김시우는 하나하나에 부연 설명을 붙였다. 이를테면 감기 초기에는 약을 먹는 것보다 따끈한 술 한 잔과 경혈 마찰을 하는 게 좋다는 것이나, 설사로 고생할 때엔 금은화(金銀花)를 벌꿀과 마시면 특효이며, 가벼운 설사는 무즙 한 홉을 마시면 직방이라는 것 등이다. 그런 경우 마실 수 있는 드링크 제품이 주식회사 무극의 대표식품이라고 못을 쳤다.

강정식품에는 ‘하오유’라는 게 있었다. 이것은 굴(석화)을 큰 냄비에 물에 잠길 정도로 넣어 끓이는데, 넘칠 듯하면 불기를 줄이고 십 분쯤 더 끓인다. 볕에 말려 병에 보관시킨 다음 입맛이 없을 때 마시면 식욕이 돌아온다. 하오유는 굴을 끓일 때 생기는 끈적끈적한 육수다. 밥 위에 뿌려 먹어도 충분히 식욕을 돋우는 소스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미꾸라지 소스와 메추리를 이용하여 만든 무후별주(武后別酒)라는 것도 있다. 하룻밤에 일곱 사내를 잠자리로 불러들였다는 당나라 때 호색한 여제(女帝)가 하루도 빼놓지 않은 게 무후주라면, 무후별주는 특별식이다.

김시우가 곁에 있는 아가씨에게 귀엣말로 속삭이자 잠시 후 스무 살 미만의 아가씨가 가져온 것은 팸플릿에 선전용으로 그려진 무후별주였다.

“마대령님, 이 술은 시중 판매는 않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무후주 판매에 타격을 주지 않으려는 점도 있습니다만, 한편으론 신상품이 개발 중이라는 것으로 광고 효과를 높일 수 있으니까요.”

“상품으로선 완전한 겁니까?”

“그렇지요. 이 술을 마시고 10분 정도 지나면 몸에 신호가 옵니다. 물론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남자라면요.”

“약재는 어떻습니까?”

“만드는 덴 큰 손이 안 듭니다만 비방 자체가 노하우다보니 공개할 수는 없죠.”

“나한테두요?”

“아, 아닙니다. 마대령님한테야 비밀로 하겠습니까. 비방이 흘러나가 사업 못하는 한이 있더래도 말해 드려야지요.”

김시우는 넉넉한 미소를 입가로 흘리며 특유의 제스처로 상대를 압도해 나갔다.

“이 강정주를 만들 때 사용되는 술은 도수가 약간 센 편이 좋습니다. 먼저 재료를 준비해야죠. 메추리 한 마리에 소주 한 병, 그리고 새박뿌리라는 하수조(何首鳥) 50그램에 녹용 10그램, 여기에 인삼 100그램을 준비합니다. 이 중 하수조는 하(何)라는 임금의 머리가 까맣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회춘 효과가 빠른 정력에 긴요한 약초죠. 약재는 이 정돕니다.

이번엔 메추리를 손봐야죠. 우모(羽毛)를 비롯해 목과 장을 떼어내 준비된 재료와 함께 큰 사발에 넣어 술이 잠길 정도를 따라 중간불로 50여 분간 찝니다. 찐 다음에는 잘 식히고 그 다음엔 약 30분간 햇볕에 쬐어, 다시 소주를 더 많이 붓고 30분간 찝니다. 다시 식힌 후 30분간 햇볕을 쬔 후 소주를 더 많이 붓고 벌꿀을 적당히 섞습니다. 이것을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밀봉해 3개월 간 어두운 곳에 두었다가 꺼내 마십시다. 이른바 무후별주지요.”

그러한 술이 눈앞에 있었다. 마충길은 한 잔을 들이키고서야 희미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술의 효능이 그러하다면 모시는 어른께 가져가면 좋아하실 겁니다.”

“준비시키겠습니다.”

“이번 일은 내 개인적인 판단 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나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주변 여건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배려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다른 사항은 없습니까?”

“한 가지 더 있습니다만….”

“말해 보시오.”

“얼마 전 신도교라는 종교단체에서 레이져 쑈를 했던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지역은 계란을 묻으면 스무하루 만에 부화된다는 명당으로 알려진 장솝니다. 신도교에선 명당의 기운이 비봉루로 옮겨졌다고 오래전부터 소문을 퍼뜨리고 누군가 등장하기를 기다려 왔답니다.”

“누군가를 기다려요?”

“새로운 인물이죠. 낡은 구세대의 관습을 헐어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려는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혁명가를 기다려 왔답니다. 아마 비봉루에선 그런 의미로 10월 26일 영시를 기해 레이져 쑈를 했을 겁니다.”

그렇게 듣고 보니 심상치 않은 기미가 감지되었다. 마충길은 곱씹어보았다. 신도교라는 종교 단체에서 하필이면 10월 26일 영시를 기해 그런 행사를 벌였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 행사가 우연한 게 아니고, 미리 일어날 사고에 대한 어떤 장치였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김시우라는 자금담당 상무의 심상치 않은 말장난도 가볍게 볼 것은 아니었다. 술이 확 깨는 것을 느끼며 마충길은 반어적인 질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