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史學)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 그러는 게야. 신도교라는 종파는 천지인(天地人)의 삼재를 공(工)으로 보고, 사람 사이를 파고들어 어리석은 자들을 제도한다는 의미로 무(巫)라는 명칭을 속뜻으로 썼다네. 연혁으로 보면 아주 오래 됐지. 물론 당시엔 다른 명칭을 사용했을 터이나, 지금은 엄청난 교세 확장을 이뤘네. 신도교, 신도교라…. 하늘과 땅 사이에서 만나 서로 화통하게 춤을 추는 ‘열린 종교’라고나 할까.”

얘기는 다시 이어졌다.

“한데, 교리를 보면 참으로 가관이네. 경전에 나오는 계룡론(鷄龍論) · 말운론(末運論) · 궁을론(弓乙論) · 출장론(出將論) · 십승론(十勝論) · 양백론(兩白論) · 삼풍론(三豊論) · 승운론(勝運論) · 성운론(聖運論) · 말중운(末中運) · 갑을가(甲乙歌) 등이 모두 [격암유록]과 연계되어 있다는 거야.

유불선(儒佛仙)을 믹서해 이렇게 저렇게 짠 것은 그렇다 치고, 교단을 상징하는 ‘전(田)’ 자는 의미가 참으로 심상해. 이를테면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에 날개를 달면 만(卍)이 되고, 그것을 다시 하나로 규합하면 밭전(田)이 되네. 유불선을 삼법회통 했다고 큰소리 칠만큼 그럴 듯하다 그 말이야.”

탁원제는 일언반구의 대꾸 없이 귀암을 바라보았다. 얘기는 다시 이어졌다.

“문제는 교리 사이에 알 듯 모를 듯 숨어있는 일종의 비표 같은 문구들이야. [성경]엔 그것을 역대 선지자들의 예언이라 하지. 신도교 경전에도 그런 부분이 아주 많아. 그러한 부분들은 한결같이 [격암유록]에 연계되어 있거든. 그러다보니 교리를 확대 해석할 때엔 신도교만이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해줄 메시아가 된다는 이론이 성립되네.”

“그런 일을 어르신께서 하셨습니까?”

“부정은 않겠네. 허나, 이 일은 한두 사람의 힘으로 된 게 아니야. 그걸 말하자면 날밤을 며칠 새도 끝이 안 나. 이제와 이러쿵저러쿵 입방아 찧는 것도 우습구….

[남사고비결]은 몇 페이지 분량이 아니었지. 그것들은 은어(隱語)들이니 쉬 알 수 있는 게 아니었어. 한데, 이씨 성을 쓰는 어느 위인이 멋대로 조립해 놓을 걸 필사해 국립도서관에까지 가져다 놓았으니 기가 찰 노릇 아닌가. 보다 큰 문제는 게나 고동이나 [격암유록]에 나온 말세의 구원자가 자기네라고 종교 단체들이 주장하는 점이야. 이 또한 기절초풍할 노릇 아닌가.”

“그런 점을 아시고 계시면서 어르신께선 이제껏 보고만 계셨습니까?”

“그것을 자네에게 말해줄 순 없지만, 내가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네. 지금 신도교는 각계각층에 파고들어 교세를 확장하고 있을 것이야.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전반에 물이 스미듯 배어들었을 것은 자명해.

머잖아 큰 소란이 일어날 게야. 긴 세월 동안 꾸며 온 [격암유록]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거기 씌어있는 내용을 예언이니 참언으로 알고 섣부르게 파자와 측자에 손댄 위인들이 날뛸 것이고 사교(邪敎) 집단이 일어날 건 불을 보듯 뻔해…. 장차 점쟁이들의 예언은 득세하고 세상은 소용돌이에 휩쓸릴 터인데…, 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 준동하기 시작했네.”

“일이라니오?”

“이곳에 여성의 몸으로 풍수에 일가견이 있는 강유선(姜琉瑄)이란 분이 있네. 장차 이 나라의 안위를 밤잠 설치며 걱정하신 분이지. 그분 얘기론 커다란 일이 준동했다는 거네. 무슨 일이냐 했더니 그러더구만. 북악이 한양에 있으니 남도 지방엔 남악이 있을 터인데…, 그것을 왜인들이 찾아낸다면 소용돌이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더라 그 말이네.”

탁원제의 말이 조심스러웠다.

“지난 8월 15일은 제29회 광복절 날입니다. 이날 문세광으로부터 저격당한 육영수 여사께서 누워계신 묏자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모양입니다.”

“비슷한 얘긴 들었네. 어찌 되었다 했지?”

탁원제는 논쟁을 벌인 부분에 대해서만 간단히 압축했다. 우연히 다방에서 풍수사 두 사람이 만났는데, 육여사의 묘에 물이 찼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작동은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명당이네. 그러나 육여사가 묻힌 곳은 공작이 화살 맞은 자리라 그 말이야. 알을 품고 있는 곳이 아닌데 어찌 물이 안 차겠는가.”

“어허, 이런 변이 있나. 어찌 그곳이 물이 찼다는 게야. 예로부터 국모가 누워 계시는 곳은 함부로 팔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억지를 쓰는구먼.”

논쟁은 한동안 흥미롭게 이어졌으나 오래 끌진 못했다. 전국에서 일어난 데모 행렬이 유신철폐를 주장하며 강행됐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귀암이 넌지시 말문을 열었다.

“정치라는 게 그래. 그것은 우리의 몸과 같아. 여당이나 야당이나 주류와 비주류가 있게 마련이니 결국은 네 조각으로 이어붙인 꼴이야. 이를테면 배꼽을 경계로 좌우상하의 네 조각이지. 늙으면 허리가 시리다고들 해. 정치도 마찬가지야. 정권을 오래 잡으면 이음새 부분이 두꺼워져 하나 둘 병이 생겨.”

탁원제는 귀암의 얘기에서 이상한 징후를 느꼈다. 그것은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아주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예감이었다.

“허리가 두꺼워지면 부조리가 득세하고 악한 자가 일어서니 사회 기강이 흐려져. [명당경]의 지적처럼 화극금(火剋金)의 상황이 오는 거지. 서로 친화해야할 관계가 원수처럼 돌변해 버리니 하극상의 문제가 생기는 거고. 우리 몸이 ‘충양돌기염’이나 ‘급성맹장염’으로 고생하는 것처럼 정치라는 것도 예기치 않은 반발에 속수무책인 게야. 그게 금쥐와 고양이야.”

금쥐와 고양이! 해묵은 금쥐가 겁 없이 고양이에게 달려드는 형상이 화극금인 하극상이다. 바로 그런 사건이 준비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