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서 내제자 한 명을 구했으나 하늘의 시샘인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네. 그래서 방법을 바꾸었네. 바둑의 문제도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힘들어 유머와 위트가 있는 함정수나 속임수 같은 걸 사용해 보기로 했네.

우선 떠오르는 게 쿠보마쓰 마카키요 8단이 [기산야화(機山野話)]에 등장시킨 함정수네. 물론 이 수는 바둑 잡지나 내기 바둑꾼들이 막걸리 값을 빼앗으려 덤빌 때 자주 쓰던 것이지만, 나는 이 문제를 푸는 이들이 흑백 상호간의 얘기를 꾸미게 해 제자를 골랐네. 기산(機山)은, 기회를 주는 산이란 뜻도 있으니까.”

송학수는 티브이 채널을 4로 바꾸고 외부 입력 버튼을 눌렀다. 흑백 티브이 화면에 물결치는 파장이 나타났다 사라지더니 단발머리 처녀가 등장했다. 그녀의 가슴에 김순옥이란 명찰이 달랑거렸다. 소녀가 얘기를 엮어나갔다.

“다음 얘긴 [기산야화]에 있는 것을 나름대로 각색했습니다. [위기(僞碁)]라는 것이 있습니다. 뜻풀이를 하자면 사기바둑이나 일종의 함정수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데 [몽담기(夢譚記)]에 전하는 싸바르기의 명인 쾌선(少林快禪)의 바둑 수도 이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소녀의 얘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까마귀와 백로는 어느날 전쟁놀이를 창안했습니다. 종횡19로(路) 361국(國)을 쟁탈하는 바둑이란 전쟁놀이였습니다. 처음엔 서로 간의 구획을 정해 내기바둑을 두다보니 까마귀의 영지는 점차 백로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까마귀에게 아내뿐이었습니다. 까마귀는 어디론가 떠났다가 이듬해 나타나 백로에게 말했습니다.

“자, 여길 보게. 이 기본도를 보면 무슨 수가 있겠나?”

“글쎄···.”

백로는 항상 까마귀의 기력을 능가한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기본도를 보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