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것 같애요. 일본의 지명도가 있는 지리학자가 그런 말을 했다는군요. 일본은 머지않아 화산 폭발과 지진이 일어나 물속으로 잠길 거라고요. 지구상에서 나라 전체가 사라진다! 그거야말로 끔찍한 일이죠.”

“그래서 일본은 항상 불편한 이웃이지. 일본 열도가 물밑으로 사라진다 가정하면 그 사람들 어떻게 나올 것 같애? 자기네들이 살아남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쓰겠지. 안 그래? 그 수단 중의 하나가 한반도 침략이겠고. 무력과 지략으로 말이야.”

“무력은 알겠는데 지략은 뭡니까?”

“종교와 풍수 전쟁이지.”

“?….”

“전쟁은 오래 전에 시작되었어. 표면화된 것은 임진년 왜란으로 봐야할 거야. 자넨 사학과 출신이니 잘 알겠구만. 우리나라의 역대 기록을 보면 고구려 땐 오두미교(五斗米敎)의 난이 있었지. 쌀 다섯 말만 내면 신선이 된다는 종교 말이야.

오두미교 교인들은 종사(宗師 ; 종교단체의 우두머리)의 가르침에 따라 단체 행동했어. 오늘은 일진이 좋지 않으니 일절 문 밖 출입을 해선 안 된다 하면 어느 누구도 밖에 나가질 못했지. 이러니 무혈점령이 쉬울밖에. 앞으로 이방 종교가 이 땅에서 교세를 확장한다고 볼 때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바로 그 점이야. 종사나 교주의 말 한마디에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 예로부터 전쟁을 일으키기 전엔 상대국 풍속(風俗)을 깨뜨리는 작업이 순서야.”

“그렇다면 쇠말뚝(鐵柱)을 박는 것도 풍속을 깨뜨리려는 전초 작업입니까?”

“내 생각엔 그래. 한반도는 산세가 맑고 그윽해 영웅호걸이 탄생할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임진년 왜란 때엔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혈자리에 쇠못을 박은 거구.
그런데 이런 일들이 당연하다는 듯 와전되는 경우가 바로 ‘아기장수’ 설화야. 아기장수가 태어나 성장하면 반역을 하게 되므로 일찌감치 혈을 잘라야 한다느니 또는 쇠말뚝을 박아 싹을 없애버리는 일은 누군가 고의로 만든 냄새가 나거든.

혹자는 그러더라구, 일본에는 풍수(風水)를 공부하는 사람이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구. 시도 때도 없이 지진이 일어나는데 풍수란 게 필요 하겠느냐구. 쇠말뚝을 박은 것은 일종의 구획정리 같은 이정표(里程標)라는 거야.”

“말 되네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 캄캄한 밤에 장님이 등불 가지고 다니는 것은 자신이 불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부딪칠지 모르기 때문에 장님에게 등불이 필요한 거라 했지. 그들이 풍수를 모른다 해도 풍수로 이루어진 이웃나라 한국을 삼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걸 알아야 했거든.”

그들은 한국을 침략하기 훨씬 전부터 풍수에 대한 연구를 그치지 않았다고 일우는 주장했다.

“무라야마 역사문제연구소라는 곳도 한반도를 겨냥해 실과 허를 추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을 거야. 음료수와 노래방 기계 · 관광 사업을 펼치는 미우라(三浦) 클럽도 노리는 곳은 한반도야. 성기구 판매에 열을 올리는 구로다 그룹도 마찬가진데, 우리 국민만 그걸 모르고 있는 거지.”

“너무 비약한 게 아닐까요.”

“안중근에게 피살된 이등박문은 풍수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로 조선에 오기 전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에 대해 치밀한 연구 검토를 마쳤어. 어느 날 무라야마를 불러 ‘자신이 듣기로 한양의 풍수는 허점이 하나도 없다는데 조선을 영구적으로 지배하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되느냐?’ 물었지.”

“그게 쇠말뚝입니까?”

“그래. 처음엔 영웅호걸이 탄생하는 걸 막기 위해 혈자리에 쇠말뚝을 박았지. 그러나 이등박문이 한양의 풍수를 본 다음 방법을 달리했어.
1909년 통감직을 사임하고 일제추밀원 원장으로 만주시찰과 러시아 협상을 겸해 중국의 하얼빈으로 갔다가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됐어. 왜 그는 통감직을 사임했는가? 조선의 통치가 어려워? 아니면 누구나 다스릴 수 있어서?”

“조선 통치를 쉽게 생각한 건 아닐까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이또오가 첫발을 디딘 건 인천이야. 그는 무라야마와 동행한 풍수사 10인을 데리고 경인 가도를 거쳐 한양으로 들어왔어. 지형을 살피니 형세가 너무 완벽해 탄식을 쏟아냈지. 뚫고 들어갈 허점을 못 찾은 거야. 시무룩한 표정으로 남대문을 지나고, 다시 경복궁을 향해 광화문 네거리까지 왔을 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는 거야.”

규봉(窺峯)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규봉이란 엿보는 산이다. 호시탐탐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기회를 엿보는 도둑 같은 산이다.

한양의 지세는 주산인 북악을 중심으로 서쪽인 인왕산이 백호(白虎)로 감싸고, 청룡에 해당하는 동쪽은 낙산이 뻗어내려 동대문에서 끝난다. 남산은 한양의 기를 안으로 담아 사대문에 골고루 뿌리내리는 안산이니 천하제일의 명당이다.

그런데 이등박문이 무슨 이유로 광화문 네거리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까? 그것은 북악의 오른쪽, 세검정 쪽으로 멀리 보이는 보현산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옥룡자(玉龍子 ; 도선)가 비기를 쓸 때 개성은 능히 천년의 영화를 누릴 수 있는 도읍지라고 말했네만, 어느 때인가 한양으로 돌아와 삼각산에 올랐을 때 탄식하고 말았지. 아무리 송악이 천년의 영화를 누릴 도읍지라도 삼각산이 도둑처럼 도성을 노리고 있으니 규봉의 기운이 어리지 못하도록 방비했네. 도성 안에 좌견교(坐犬橋) 같은 다리를 만들어 도둑 같은 나쁜 기운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은 거야.
이또오는 이 점에 착안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