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묘한 것은 선생이 앉아 있는 왼쪽 무릎 아래 일본에서 간행된 월간지 무(毋)에서 발행한 [기담 · 괴담]이란 책이 있었는데 어느 한 부분에 근등좌사마(近藤左司馬)란 젊은이 얘기가 실렸어.”

“?···.”

“우선 이 사람에 대한 얘기부터 해야겠지.

···그가 살았던 세상은 무사정치(武士政治)의 중흥기였어. 이 당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증상사(增上寺)란 절에서 불도를 닦던 쾌선(少林快禪)이란 중이 있었는데, 어찌나 재질이 있었던지 바둑을 배운 지 오래되지 않아 일본 기계의 4대 명문인 이노우에가(井上家)의 6세 춘석인석(春碩因碩), 7세 춘달인석(春達因碩) 등에 석 점을 놓고 당당히 승리했어.

그 후 본인방(本因坊) 찰원(察元)과 10번기를 두어 5승 5패를 한 기재야. 그러다보니 바둑을 배운 지 두 해가 지났을 때엔 쾌선의 명성이 천하에 자자했지.”

근등 또한 대단한 기재였던지 내로라하는 기사들을 고양이 쥐 어르듯 가지고 노는가 하면 때론 져주기도 하면서 이길 수 있는 여지를 언제나 남기는 생고무 같은 신축력을 보여주었다. 소문은 늘 소문과 충돌하기 마련이어서 주위 사람들이 바람을 넣었다.

“에도의 증상사를 찾아가 쾌선과 승부를 논하시게. 자네 실력이면 틀림없이 승리를 장담할 수 있네.”

떠밀리다시피 증상사를 찾아가 바둑을 두었는데 세 판을 보기좋게 낙승(樂勝)하자, 근등은 청했다.

“이번엔 선(先)으로 두어보고 싶습니다.”

처음과는 달리 쾌선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직은 선생의 바둑이 나와 판을 짤 수 없습니다. 그만 돌아가십시오.”

쾌선이 판을 걷자 근등은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몇 해가 지나 경내에 은행잎이 지는 가을에 근등이 찾아와 간청했다.

“다시는 부탁하지 않겠으니 한 판만 허락해 주십시오.”

안 된다고 물리쳤지만 상대의 간청이 너무 절절해 쾌선은 할 수 없이 선(先)으로 대국을 허락했다. 그런데 막상 두어 보니 예전의 바둑 수가 아니었다. 한 수 한 수엔 귀기(鬼氣)가 어려 있고 끊고 젖힘엔 초겨울 살얼음판 위를 내딛는 매서움이 있었다.

쾌선은 악전고투 끝에 4집 반의 승리를 거뒀다.

“어찌 이다지 강해졌소?”

경이한 표정으로 묻는 쾌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근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르침을 주어 고맙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경내에 타종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시각은 자시쯤인 것 같았는데 근등이 밖으로 나가자 왠지 으스스한 바람이 불어와 쾌선은 오싹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화장실에 갔거니 생각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근등은 돌아오지 않았다.

‘허어, 일국(一局)을 패했기로 상심이 컸는가?’

쾌선은 씁쓸히 입맛을 다시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근등의 가솔 한사람이 증상사를 찾아와 예불을 올리자 쾌선이 물었다.

“누구의 예불입니까?”

“근등좌사맙니다. 엊저녁 자시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렇듯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

쾌선은 너무 놀라 비틀거렸다. 자신과 바둑을 둔 시각에 죽었다면, 아무래도 귀신과 대국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는 근등의 명복을 빌며 깊이 애도했다.

얘기를 마치자 일우는 시선을 반상으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