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을 여는 건 두 가지 이윱니다. 하나는 집안에 상서롭지 않은 일이 있어 휴수(休囚 ; 3년에서 30년 사이에 무덤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는지를 확인해 보는 작업) 기간에 여는 것이고, 다른 하난 폐묘 때문이죠.”

그렇게 보면 53년 만에 이완용의 무덤을 연 것은 폐묘에 해당한다.
천하에 둘도 없는 명당. 신선이 내려와 춤을 추는 형상의 묏자리. 집안 대대로 정승 판서를 배출한다는 명당자리에 누운 이완용. 과연 무덤 안에 어떤 비밀이 있었을까? 오만가지 궁금증을 가슴에 담은 산역꾼(인부)들이 무덤을 열었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거야. 천하제일의 명당에 누운 이완용의 관이 가시 돋친 아카시아 뿌리에 친친 감겨 있는 거야. 죄인을 포승줄로 묶듯 관 전체가 아카시아 뿌리에 감긴 거지. 사람의 힘으로 벌을 내리지 못하자 하늘이 대신해 징벌했다는 말이 나올 법하잖아.”

이런 경우가 풍수 용어로 목렴(木廉)이다. 휴수 기간에 무덤을 열었을 때 뼈가 새까말 경우는 불에 탔다하여 화(火)렴이고, 벌레가 득시글댈 때는 충(蟲)렴이다. 물이 차면 수(水)렴이며, 바람을 맞으면 풍(風)렴이다.

명당이라면 당연히 후손에게 발복이 일어나야 하나 지은 죄가 워낙 깊다보니 하늘도 용서하지 않았다고 마무리를 짓자 탁원제가 물었다.

“부장님, 그렇다면 그 자린 명당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이완용의 주검에 염이 든 거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 했어. 아무래도 미심쩍어 지난달 7일 이리에 출장갔을 때 직접 관 뚜껑을 보고 왔어. 가로가 1.5자, 세로가 6자, 두께가 6센티인 관 뚜껑엔 빨간 글씨로 ‘조선총독부 중추원부의장 정이위 대훈위 후작우봉이공지구(朝鮮總督府 中樞院副議長 正二位 大勳位 候爵牛峯李公之柩)라고 써 있었어.
관 뚜껑이 흠 하나 없이 말짱한 것을 내가 확인했어. 이리 원광대학교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후손들이 불태웠다는 말이 있거든.”

“그래요?”

“조선 제일의 풍수사가 고른 터니 틀림없겠지만 하늘이 이완용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으니 나무가 주검을 감은 거야.”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서 유족들은 이완용의 유골을 화장시켜 가까운 장암천에 띄웠다는 것이다.

“탁기자, 가끔 섬뜩할 때가 있어. 땅은 평범한 것 같지만 풀길 없는 비밀을 담고 있어. 어떻게 해서 53년이나 지난 뒤에, 사람은 포승줄에 묶여 있는데 관은 멀쩡하지? 관까지 썩었다면 그 자린 명당이 아니라 하겠지. 또한 이완용의 주검을 친친 감은 천벌을, 사람들은 다른 쪽에서 이유를 찾겠지.
그런 점에서 인간과 땅, 그리고 하늘의 논리가 공존하는 것을 느낀단 말이야. 거길 다녀온 후 상상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 것도 사실이구.”

일우는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더니 두어 번 입맛을 다시다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야, 탁기자. 내가 바둑 잡지에 쓰인 조관수 선생의 글을 우연히 보았는데···, 심장마비로 쓰러진 그날, 선생은 묘수풀이에 열중해 있었다고 했거든.

반상에 문제도가 깔리고 풀이라는 방법으로 좌측에 백1이 놓인 형태였거든. 물론 이것은 실패도지. 아무리 나이가 여든 셋이지만, 선생이 그 같은 문제의 묘수풀이에 헛발질 할 분은 아니거든. 근데 백1로 좌측에 착점한 게 이상하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