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결혼한 신부는 연일 독수공방이다. 요즘 들어 문치수는 짜증을 이마에 달고 지냈다. 그는 괜한 일에 신경질이었다. 아침에 출근해 소파에 앉아 웅성웅성 농담 따먹기를 하는 판매직원들에게 곱지 않은 핀잔을 던진 것도 그 하나였다.

“도대체 뭐하는 거요. 한 달 내내 사무실만 시계추 마냥 오락가락 하는 거요? 차암, 못 말리겠구먼. 회사가 어려워지면 돌파굴 찾아야죠. 이렇게 소파에 앉아 객쩍은 소리 늘어놓으면 떡이 나옵니까, 돈이 나옵니까?”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 그들은 회사 건너편에 있는 다방이나 당구장에 모여 문치수의 경영 방침을 비틀고 나섰다.

“정말 저 친구 변태 아냐? 지금이 어느 땐데 야리꾸리한 걸 팔라는 거야. 이런 건 드러내놓고 팔순 없잖아. 호텔화장실이나 구린내 나는 곳을 찾아가 똥파리가 앉았다 간 자리에 스티커를 붙여야 효과가 나거든. 그런 곳이 아니면 광고부착물이 어쨌다하여 벌금 물잖아. 니기미, 지난달에도 광고물 부착으로 벌금만 된통 물었지 뭐.”

한편으론 문치수를 측은하게 생각한 쪽도 있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동대문 구청 가까인가 면목동인가에 문치수의 부친은 상당한 평수의 미나리 밭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도시개발 사업이 불어 미나리 밭의 지목(地目)이 변경되자 땅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단돈 몇 십 만원도 없는 집구석에 7억이란 돈이 들어오자 생활 패턴이 바뀌더니 씀씀이가 커지자 7억원의 돈은 1년 만에 5억 2천만원으로 줄어버렸다. 그의 부친은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가족회의라는 걸 열었다.

“하루 다르게 돈이 닳아져 버리니 뭔 방법을 마련해야 쓰겄다. 남아있는 돈을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만 따북따북 따먹고 살아도 여생은 걱정 없을 것 같다만.”

가족이래야 고작 세 식구다. 외아들인 문치수는 어려운 가정형편이었지만 큰 탈 없이 전문대학을 나와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직장 생활이라기에는 뭣하고 정확히는 연말에 필요한 달력이나 연하장을 방문판매하는 세일즈맨이었다. 뭉칫돈이 굴러 온 지금으로선 무엇을 해도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아들의 성화를 견디다 못해 꼬불쳐놓은 돈을 털어내던 부친은 소주를 병 나팔 불며 탄식했다.

“내가 죽을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어 돈을 꽉 쥐고 안 내놓것냐. 모두가 니 돈이제. 다만, 니 에미나 내가 한평생 을메나 고상했냐. 그러니께 죽을 때까지만이라도 넉넉하게 돈을 지니고 싶은 생각이다. 우리가 죽으면 모든 게 다 니것이제. 그라니께 우리에게 얼마간은 남겨 둬야해.”

부친은 치수에게 4억을 주었다. 더 이상은 죽는 한이 있어도 내놓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무엇이 좋을까?’

돈을 쥐자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사업 구상을 하다 ‘이것이다!’ 하고 뛰어든 게 플라스틱 사업이었다. 사기 접시는 깨어지기 쉽고, 스테인리스는 무게가 만만치 않다. 이 두 가지를 보완해주는 그릇을 만든다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서를 뽑았다.

플라스틱 제품은 일시적으로 수요가 급증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기 전 너도 나도 플라스틱 사업에 뛰어들어 가수요 현상이 일어나자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도산해 버렸다.

또다시 몇 개월 간의 룸펜 생활이 시작됐다.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다가 일본에서 온 친구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 친구는 구미(歐美) 지역을 비롯하여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성기구’ 판매를 권했다.

“옛날은 몰라도 지금은 많이 변했어. 먹고 사는 건 졸업했잖아? 누가 그러더라. 먹는 것, 화장실에 가는 것, 섹스, 이 세 가지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영양소 같은 거라구. 더구나 섹스는 안 그런 척 내숭을 떨어도 관심사거든 안 그래?

사업은 일단 관심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게 중요해. 이를테면 주식회사를 만드는 거지. 많이 투자해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아. 어느 정도 운영만 되면 순풍에 돛단배거든.”

그렇게 하여 소액주주로 친구들을 끌어당겨 주식회사 미로를 설립했다. 일본에서 활동한다는 친구를 통해 구로다 그룹 부사장과 연결해 소액으로 물량을 확보했다.

문을 열자 관심 있는 분야여서 그런대로 수량이 빠져나갔다. 매출도 순조로웠고 대리점 개설에 대한 문의 전화도 쇄도했다. 순풍에 돛단 듯 사업이 확장되자 구로다 그룹의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이경실(李慶實)과 지난봄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혼인한 이후부터 매출이 하락세였다. 찬바람 불면 좋아지려니 했지만 여전히 매출은 바닥세였다. 당연히 문치수의 심기가 까슬라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묘한 문제가 발생했다. 외근 사원 다섯 명이 문치수의 귀 따가운 잔소리를 고수하고 소파에 죽치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대로라면 한두 시간도 있기 싫어하던 그들이 온종일 잡일을 거들면서 군소리 하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놈들이 더위 먹었나?’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며칠 지나자 원인이 규명됐다. 그것은 구로다 그룹에서 파견된 임시 홍보사원 장은미(張銀美) 때문이었다.

본사 홍보실에 있을 땐 입고 다니던 옷도 평범했으나 미로에 파견된 후 딴사람으로 변했다. 예전에 근무하던 곳에선 제복이 지급됐기 때문에 평범하게 보였지만 미로는 사복 근무였으므로 어떤 옷을 입어도 자유였다. 그녀는 가을이 오자 엷은 스웨터와 스커트로 출근했다. 스웨터나 미니스커트도 거의 스트레이트였기 때문에 노브라로 출근한 그녀의 상반신 윤곽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다보니 상담에 응할 때 손님들은 곤욕을 치렀다. 스웨터 아래 부풀어 오른 가슴의 돌기물이 요염하게 흔들릴 때엔 상담자의 낯빛이 붉어졌다. 부부가 함께 대리점 개설을 상담하러 왔을 때엔 역효과를 초래했다.

“흥, 아예 벗고 있지 그래. 이 회사는 물건의 질로 광고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서비스하는 여잘 데려다 놨나 봐.”

그리고는 끼잉 콧바람 날리며 돌아가 버린다. 보다 못해 기존 여사원들이 들고 나섰다.

“사장님, 이렇게 돼선 도무지 일이 안되요. 도대체 회사에 근무를 하러 나온 건지 패션쇼를 하러 온 건지 알 수 없잖아요. 도무지 낯뜨거워 근물 할 수 있어야죠.”

“알았어, 시정하도록 하지.”

장은미를 호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