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눈은 붉게 타올랐다. 약간 몸을 숙여 사내의 점버와 티셔츠를 벗겨냈다. 런닝을 입지 않은 일우의 상반신이 드러나자 그녀는 빤히 바라보았다. 입술이 강한 자력이 되어 맞붙었다.

그녀의 한 손이 부지런히 사내의 허리 부분을 맴돌았다. 이윽고 목적물을 찾아냈는지 혁대의 콕이 풀리고 지퍼가 아래로 내려갔다. 서로의 손놀림은 상대방을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들어버렸다.

상희를 바라보았다. 몸의 중심부에 있는 배꼽이 알맞게 패어 있다. 가는 허리와 약간 펑퍼짐해 보이는 엉덩이의 곡선이 금방이라도 자신의 심벌을 돌진시키게 하는 충동감을 일으켰다.

일단 소파에 눕혔다. 한쪽이 막혀 약간 불편했지만 입술과 혀로 소우주(小宇宙) 여행을 시작했다. 입술에서 시작하여 목덜미를 지나 가슴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옆구리와 배꼽 주변을 맴돌았다.

위와 아래, 좌와 우로 이동하며 점점 넓적다리 안쪽으로 접근해갔다. 그제야 상희의 몸이 꿈틀거렸다. 일우의 뇌리 속에 남아있는 찌꺼기 같은 불안감이 속삭이는 것 같았다.

‘어차피 시작된 일이니 확실하게 해두는 게 좋아. 저 계집은 민사장이 침 발랐으니 확실하게 다룬다고 달라질 건 없어. 그런다고 민사장이 저 계집을 애지중지할 건 아니니까.’

사실이 그랬다. 한 달 분의 여유 봉급을 받고 크고 작은 일을 사장에게 보고하는 사이라면 한 번쯤 화끈하게 다뤄줄 필요가 있었다. 생각을 굳히자 몸놀림이 달라졌다. 그런데도 불안했다. 어쩌면 유상희는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기교를 원하는지 몰랐다. 그러나 이내 안도의 숨을 내쉰 것은 그녀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면서였다.

그녀는 허리를 뒤틀며 연신 콧소리를 흘려냈다. 약간 외곽으로 몸을 튼 그녀의 하반신에 체중을 실으며 중심부를 찾아들어갔다.

그는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소파의 어깨걸이 부분에 큰대자로 엎드리게 하여 뒤쪽에서 공격해 보았다. 또한 위에 올려놓고 밑에서 떠받들 듯 움직였다. 두 다리를 허공에 띄워 유방까지 당겨 전체를 압박해가는 방법도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유상희는 몇 번이나 정상을 오르내리며 몸을 떨어댔으나 끝내 일우의 심벌은 위축된 모습으로 무기력하게 퇴진해 버렸다.

창밖엔 비가 내렸다. 아침 일찍 출근해 라디오를 켜자 낯익은 곡이 쓸쓸히 깔린다. 싸이먼과 카펑클이 부른 ‘철새는 날아가고’였다. 곡을 듣고 있자니 철 지난 해수욕장에 서 있는 듯한 을씨년스러운 기분으로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직원들이 출근하려면 아직도 30분은 더 있어야 했다. 무심코 연 책상 서랍에 노란 서류 봉투가 눈에 띄었다. 아마 엊저녁에 유상희가 사무실에 들러 놓아둔 것이 분명했다.

봉투 안에 또 하나의 봉투가 있었다. 편지를 보낸 중학생 소년의 주소와 몇 장의 사진이었다. 10만원을 온라인으로 보낸 송금 영수증과 필름 원본이 비닐 첩에 한 장씩 나뉘어 꽂힌 채였다. 흥미로운 것은 사건의 모든 내막이 동봉해온 테이프 안에 들어있었다. 이번에 사고를 낸 문치수(文治秀) 사장의 모든 것이었다.

<주식회사 미로(美露)>. 대표이사겸 사장인 문치수는 서른 둘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사업에 열을 올렸다. 그것은 남녀 성문제 고민을 완전히 해방시켜주는 ‘성기구’ 판매였다.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에 의존한 성기구들은 그 종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사회단체에서는 음란 기구를 청소년 등에게 판다는 구실 아래 연일 성토하며 불매운동을 벌였으나, 수입 ‘성기구’를 둘러 싼 사회분위기가 어수선해졌는데도 일정량이 꾸준히 소비되어 회사 운영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아침나절 삐끗 얼굴만 내비쳤다가 오후에 전화 보고 하는 것으로 종치는 영업사원이 다섯, 사무실에서 대리점 상담에 응해주는 아가씨가 둘, 배달 사원이 하나, 있으나 마나한 경리여사원이 하나, 그리고 구로다 한국지사에서 파견 나온 여사원이 하나…. 사장을 제외한 주식회사 미로의 직원들이다.

날씨가 찐득한 여름이 오자 매출은 크게 감소되어 인건비며 경비지출이 큰 폭을 차지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일본 본사의 구로다 마사오(黑田正男) 부사장이 이미 판매한 성기구 대금을 연기시켜 주어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일 주일이 지나면서 주식회사 미로는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주간 잡지와 월간지에 광고를 내봐도 판매량에 변화가 없어 대책 마련이 절실했다. 회사가 돌아가지 않으면 분위기가 가라앉기 마련으로 하루가 지날 때마다 매출고 보다 그냥 없어지는 돈이 더 많았다. 사장은 날마다 술이 떡이 되어 소파에 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