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단강성은 관전기에서 이렇게 썼다.

<···바둑사를 장식하는 이날, 그 동안 지루하게 계속되던 장마가 그치고 푸른 하늘엔 엷은 솜털 구름이 떠 있었다. 홍엽관 정원은 빗물에 씻겨 나무들이 짙푸르며 선들바람에 갈대잎 스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다음날은 같은 장소에서 12수까지 진행되었다. 대국장소가 상근(箱根)의 대성관(對星館)으로 예정됐지만 계곡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시끄럽다 하여 궁하온천(宮下溫泉)의 나량옥(奈良屋)으로 옮겼다.

대국은 7월 11일부터 4~5일 간격으로 진행되었다. 20여 수가 진행되었을 때 수재명인의 건강이 악화되어, 의사는 심장이 현저하게 나빠졌음을 진단했다. 그런 탓에 수재 명인이 이 바둑을 빨리 끝내기 위해 초조해하자 목곡실(木谷實)이 대국 중지를 제안했다.

“선생님, 대국을 중지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열 번째 대국날인 8월 14일, 수재 명인은 의사의 권유에 따라 100수로 봉수했다. 담당의사가 소견서를 내놓았다.

“수재 명인의 몸은 몹시 쇠약해졌소. 의사로서는 체력소모가 심한 바둑을 계속 두라고 할 수 없습니다. 휴식을 취하시다가 스스로 바둑을 두고 싶은 생각이 일어난다면 건강이 어느 정도 좋아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덧 11월이 되었다. 장소를 이두(伊豆)의 난향원(暖香園)으로 옮겨 11월 8일 대국을 속개했다. 28일까지 12수가 진행되어 도합 121수에 이르렀다. 은퇴기의 승부를 가름하는 분기점은 131의 수를 놓은 12월 11일이었다. 목곡실 7단은 이 수를 보는 순간 청룡도를 들고 단기돌입하는 맹장처럼 수재 명인의 중앙을 유린했다.

4일 오후 2시 42분까지 237수가 진행되는 것으로 바둑은 끝났다. 반면 5집을 흑이 남기고 있었다. 덤이 4집반이라면 흑이 반집을 이기는 것이고, 5집반이라면 백이 반집을 이기는 것이 됐지만 굳이 계가는 하지 않았다. 소야전(小野田) 입회인이 바둑판 위의 돌을 거둬들일 때 목곡실 7단은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선생님, 오랫동안 감사합니다.”

1939년 6월. 제1기 본인방전의 예선이 시작되었다. 기전의 주최측인 일본기원과 매일신문(每日新聞)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본인방 수재(秀哉)와 그 문하생 일동이 본인방의 명적(名跡)을 일본기원에 제공하여, 그 명적을 앞으로 본인방 우승자에게 계승시켜 나간다.>

그러므로 본인방전의 처음 명칭은 <본인방명적쟁탈 전일본전문기사 선수권대회(本因坊名跡爭奪全日本專門棋士選手權大會)>라는 것이었다. 일본기원과 선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선수를 대표해 영목위차랑(鈴木爲次郞) 7단이 선서했다.

“우리는 여기에···, 새로운 기도(棋道)의 확립에 뜻을 두는 선수권대회를 개최함에 있어 오늘날 내외정세에 비쳐 상호 엄숙한 마음으로 방척(方尺)의 반상에서 정정당당한 싸움을 벌여 본인방 명인의 기여에 보답하고 나아가 국민정신 함양에 이바지할 것을 선서하는 바이다···.”

제1기 본인방전은 총호선으로 덤은 4집반이었다. 1차예선에는 제한시간이 각 10시간으로 이틀에 끝내는 방식이었다.

4단급에서는 6명이 참가한 후 진행되어 향정(向井) 4단이 우승, 2회전에 진출했다.

2차예선 즉, 5단급에서는 8명이 참가한 가운데 촌도(村島) 5단과 소원(篠原) 5단이 3회전에 진출했다.

3차예선인 6단급에서는 12명이 참가한 가운데 토너멘트 방식으로 4명을 뽑은 후 그 4명과 7단이 합세해 4차예선을 치르게 되었는데 방식이 좀 묘했다. 토너먼트라고 하나 계산은 영국의 경마방식인 ‘소수점우위법(小數點優位法)’으로 결과에 있어서는 2위 가등(加藤) 7단이 15점, 1위 관산(關山) 6단이 16점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당시의 바둑팬들은 기대를 걸었던 목곡실 7단이나 오청원 7단이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이상한 계산방식을 썼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관산과 가등의 6번기는 1941년 3월에서 6월 사이에 벌어져 3대3의 팽팽한 결과를 가져왔으나 토너먼트 성적 우위에 따라 관산6단이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인 1940년 1월 18일, 본인방의 탄생을 보지 못하고 수재명인은 6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이윽고 9월 10일, 제1기 본인방 취위식이 일본기원에서 거행되었다.

제1기 본인방 습명윤허서

관산이일(關山利日)

   
귀하의 전일본 전문기사 선수권대회에서 우수무필(優秀無匹)한 성적에 비추어 이에 제1기 본인방의 영위와 ‘이선(利仙)’이라는 칭호를 보내어 이로써 본원 최고의 영예를 표창함.

이렇게 하여 관산 6단은 ‘본인방이선(本因坊利仙)’이라 부르게 되고, 단위 구별 없이 기사로서 최고의 서열을 획득한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명예로운 ‘제1기 본인방 습명윤허서’가 오로관(烏鷺館)을 찾은 낯선 사내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것이다.

워낙 시일이 경과된 탓인지 종이는 너덜거렸지만, 뒷면엔 묘한 글이 쓰여 있었다.

<벼에는 탄수화물이 70~85%이고, 단백질이 6.5~8.0%이며 지방은 1.0~2.0%이므로 의심이 가면 반드시 확인해 보기 바람>이라는 문구가 있고, 그 아래쪽엔 바둑 도형이 엉성하게 그려진 채, ‘백선 결과여하?’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