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묘수풀이였는데 여석지는 그 뜻을 몰라 망설였으나  장량은 <문제도>만을 펼친 채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그 역시 황제의 제2부인 척희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에겐 신의라는 게 있다. 천하를 경륜하려던 나의 원대한 꿈도 한갓 아녀자와의 약속도 지키지 못한다면 내가 황실에 남아 무슨 일을 하겠는가. 산중에 칩거하여 바람이 무엇을 속삭이고 구름이 무엇을 나타내며 비가 내 맘을 경책하는 이유를 지금부터 알아보아야겠다.”

장량은 그 밤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한편 여석지는 묘수풀이 기보를 여치에게 정중히 올렸다.

“상군(相君 ; 국상. 장량)께서 이것을 주시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황후마마의 근심은 이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했습니다.”

“네가 풀 수 있겠느냐.”

“문제는 풀 수 있습니다만, 요는 이 기보가 무엇을 가리키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석지는 바둑판을 펼쳐 단숨에 묘수풀이 도형의 첫 번째 급소에 착점했다.

“황후마마, 누군가 깊은 산중에 숨어 있는 모습과 같사옵니다. 더구나 이 문제를 푸는 제일착의 자리가 속담에 이르는 ‘적의 급소가 나의 급소'라는 곳입니다. 해서 소인이 문제를 풀어본 결과, 백1의 치중으로 인해 여러 형태의 변화를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흑은 삶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