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가 여기쯤에 이르자 또르르 말아 감은 족자를 들고 온 젊은이는 서둘러 자신의 얘기에 매듭을 찍고 있었다.

“남사고는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좋은 곳을 골라 이장(移葬)하였지만 그곳도 마음에 들지 않아 이곳저곳의 산세를 살피다가 마침내 좋은 자리를 발견하고 주검을 묻고 봉분을 하려는데 흙을 돋우던 일군 한 사람이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다.

구천십장(九遷十葬) 남사고야

비룡상천(飛龍上天) 어디 두고

고사괘수(枯蛇掛樹) 웬 말이냐

남사고는 노랫소리에 깜짝 놀랐다. 노래를 파해하면, 아홉 번 옮기고 열 번째 장사 지내는 남사고야, 좋은 자리 어디 두고 뱀이 나무에 걸린 그런 자릴 찾았느냐는 뜻이어서 산세를 다시 한 번 살펴보니 과연 죽은 용의 자리였다. 급히 일꾼을 찾았으나 그는 어디론가 가버린 뒤였다.

‘허어! 좋은 자린 다 임자가 있는 법이지. 어찌 인간의 힘으로 비룡상천을 찾을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 관상감에서 천문을 보는 관직에 있었는데 동틀녘이면 밖으로 나가 임진년에 왜란이 일어날 것을 알고 신신당부를 했다. 어느날 관상감의 정3품 벼슬에 있던 이번신(李藩身)이 깜빡깜빡 흔들리는 태사성을 보고 한숨을 짓자 남사고가 덧붙였다.

“죽을 사람은 날세.”

서둘러 고향으로 가는 길에 중도에서 죽고 말았다. 일찍이 천문과 지리, 음양오행에 달통하고 상법에 능하던 그도 자신의 죽음에 대한 묘수풀이를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묘수풀이, 누가 어느 때 파해할 수 있을까. 젊은이는 나직이 시 한 귀를 토해놓았다.

티끌 속의 영욕을 사절하는 것은(塵中謝榮辱)

만물 밖의 변화를 차지함일레라(物外占凉溫)


이곳 오로관 ‘수담실(手談室)’은 바둑 두는 곳이라기보다 문자깨나 쓰는 서생들이, 단양에 사는 장기만 화백이 그린 신선도를 선물로 챙겨갈 궁리 끝에 찾아와 잔기침 칼칼하게 쏟으며 혓바람 일으키는 곳이다.
‘수담실’이란 명칭이 붙은 걸 보면 관전기를 쓰는 얘기꾼이 이곳에서 김가와 박가의 바둑 두는 것을 보며 후한 시대 기성 마융(馬融)의 위기부(圍棋賦)에서 관전기를 풀어놓았음직하다.

<···위기법(圍棋法)을 본다면 용병하는 3척(尺) 바둑판 위에 전투장을 만들어 사졸을 진쳐 모으는 것이다.
두 적수가 서로 마주서는데 겁내는 자는 공(功)이 없고 탐내는 자는 망한다.
마땅히 네 귀를 차지해야 하고 지키고 사용하는 것은 옆을 의지한다.
변을 따라 막아벌리되 드문드문 서로 바라보게 하면 덜렁한 말 눈이요, 줄지어 나는 기러기 행렬이다. 넓게 지나고 사이사이 두어 중앙에 거닐며 죽은 졸(卒)은 거둬버리고 서로 잇지 않아야 한다.
먹을 데 먹지 않으면 오히려 앙화를 받고 떠나고 어지러움이 교차하며 다시 서로 넘어간다.
지킴을 튼튼히 하지 않으면 소위가 당돌하고 깊이 들어가 영지(領地)를 탐내면 사졸만 죽어버린다.
미쳐 날뛰면서 서로 구원하면 앞뒤가 함께 없어지니 공을 계산하여 서로 제(除)하여 때를 보아 일찍 마친다.
네 변에 남아 살려면 수습을 빨리해야 하고 경영함이 궁색하더라도 거짓 꾀를 써선 안 된다. 깊이 생각하고 멀리 보아야 승리를 약속할 수 있다···.>

위의 글은 <혁지(奕旨)>보다 구체적이다. 먼저 네 귀와 포진하는 방법을 말하고 급하더라도 함부로 덤비는 걸 삼가라는 것이다. 뭣보다 중요한 것은 거짓 꾀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인데 이게 ‘졸기(拙技)’다.

다음은 송곡(松谷) 이서우(李瑞雨)의 <사호위기도(四皓圍棋圖)>라는 시다.

빈 산에 할 일 없어 한가로이 두는 바둑인데(空山無事漫圍棋)

어찌타 힘 기울여 바둑알을 더디 놓나(何苦勞心下子遲)

한나라 황실에서 초빙하는 그 일 있어(莫是漢儲書幣至)

마음속 한구석에 갈지 말지 하는 걸까(意中難決去留時)

사호는 한나라 말기에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장안성 남쪽에 위치한 상산(商山)에 은거한 당선명(唐宣明), 최광(崔廣), 주술(周術), 기리계(綺里季)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래는 ‘네 명의 백발노인’이라는 말이다. 위의 시에서 보는 것처럼 사호가 한나라 황실의 초청을 받아 갈지 말자 생각하던 때는 후계자 문제를 놓고 껄적지근한 기류에 빠져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