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 풀어지는 형태를 놓고 스님은 하늘을 우러러 큰소리로 웃어대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사고는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정면만 똑바로 바라보았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허공에 스님의 코끝이 나타나더니 떠오르는 달처럼 맨들맨들한 머리도 나타났다. 스님은 어디로 사라진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대는 내 모습이 두렵지 않은가?”

“두려울 게 있어야지요.”

스님은 한차례 가가대소를 터뜨렸다.

“내 눈이 과히 틀리지 않았다면···,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해보게.”

스님이 품속에서 내어주 책은 신서(神書)라 전하지만 그의 아호를 따 지금껏 <격암유록(格菴遺錄)>이라 전하고 있다. 몇 년 전 지구의 멸망을 예언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나 당태종 때 이순풍과 원천강이 공동으로 만든 <추배도(推背圖)> 같은 책들도 남사고의 <격암유록>에는 미치지 못한다.

스님에게 서책을 받은 그는 이후 예언의 능력을 길러 서울의 지형을 살피고 나서,

“동쪽엔 낙봉(駱峯)이 있고 서쪽엔 안현(鞍峴)이 있어, 이것은 서로 다투는 형상이니 머지않아 동인과 서인의 싸움이 있을 것이다. 낙(駱) 자는 마(馬)와 각(各)으로 이루어졌으니 반드시 분열되어 으르렁거릴 것이며 안(鞍) 자는 혁(革)과 안(安)이니, 처음엔 변란을 겪겠지만 나중엔 안정된 기반을 쌓을 것이다.”

남사고는 사직동에 왕기가 서려 이곳에서 나라를 중흥할 임금이 나올 것이라 하였는데, 그의 말대로 선조 임금이 나와 임진왜란을 평정했다. 젊었을 적 향시엔 합격하면서도 회시(會試)엔 번번이 떨어진 이유를 사람들이 묻자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욕심이 눈이 멀었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