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선 결과 여하>

좌측에 흑 3점이 잡혀있는 상황에서 흑선으로 어찌 처리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남사고가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스님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소승은 아랫마을에 다녀올 일이 있습니다. 늦더라도 기다리지 마십시오.”

스님이 아랫길로 사라지자 남사고는 잠시 주위를 돌아보고 암자에 들어가 좌정했다. 반 뼘 남짓한 햇기운이 병풍을 두른 듯한 악산(嶽山) 뒤로 숨은 후 솔숲을 흔드는 승냥이 울음만이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밤이 꽤 깊어진 것 같았는데 암자의 문이 거칠게 흔들리며 다급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좀 열어 주세요!”

“누구십니까?”

“길 잃은 여인입니다.”

남사고가 문을 여니 난초처럼 그윽한 내음이 날아들었다. 시골 아낙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귀티가 물씬 풍기는 여인으로 범접할 수 없는 미미한 기상이 어려 있었다.

“이곳은 부처님을 모시는 사찰은 아니지만 세상의 속진을 털어버리려 고행하는 두타(頭陀)들이 잠시 머물러 쉬어가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항상 깨끗해야 하는데 어찌 아녀자를 받아들일 수 있겠소. 나의 말이 야박하다고 할지 모르나 늦기 전에 다른 곳을 찾아보십시오.”

“아닙니다. 지금은 날이 어두워진 데다 길도 사나우니 여인네가 걷기엔 어려움이 많습니다. 길을 떠난다는 건 산짐승의 먹이가 될 게 뻔한 노릇이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할 수 없군요. 그럼 들어오십시오.”

남사고는 여인이 들어서는 기척을 등 뒤로 느끼며 스님이 놓고 간 기보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보아야 급수가 약한 자신이 풀 수 없는 것이어서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짚어가는데 문득 여인이 미소를 띈 채 입을 열었다.

“아, 묘수풀이 기보로군요. 어떻습니까. 선비님은 수담(手談)을 즐기시는 쪽입니까? 그렇게 어려워 보이는 모양은 아닌 듯 싶습니다.”

여인은 가까이 다가와 검지손가락 끝으로 한 곳을 짚으며 빙그레 미소를 깨물었다. 어디에선가 미미한 향내가 풍겨 오르고 남사고의 눈앞에 수많은 나비 떼가 어지럽게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퍼르륵 거리는 날갯짓 소리에 마음속에 일렁이는 욕기(慾氣)가 연약한 꽃잎이 되어 미풍에 가볍게 흔들리는 것 같은데 여인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가까워졌다.

“선비님,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