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도선생은 여기까지 얘기하고 나서 마뜩찮다는 듯 입맛을 다시더니 쓸쓸히 덧붙였다.

“결국 그 화가는 지울 수 없는 치욕이라 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네. 아무리 약속했다지만 딸아이의 엉덩이를 탁본해 자신의 이름을 붙여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게지.

화가가 죽은 후 그 집 딸은 하루아침에 행방을 감춰버렸네. 들리는 소문엔 먼 곳으로 갔다고도 하고 죽었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비가 죽은 뒤 미쳐서 떠돌아다닌다는 말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믿을 바 없는 얘기네.

나중의 얘기네만 화가는 한때 궁안을 비롯하여 사대부가를 출입하면서 좋지 않은 일을 한 모양이야. 그러나 그것이 허물일 수는 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네. 어쨌건 불행한 일이지.”

육도 선생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사건 당시 일본 관리를 움직여 화가를 죽게 만든 자가 지금은 이름을 미우라(三浦)로 바꿔 힘께나 쓰는 자들의 사랑채를 기웃거리며 내기바둑으로 재물을 모아 떵떵거리고 산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선생에게 물었다.

“저기 선생님, 어떤 분이 찾아와 애걸복걸했다는 말은 뭡니까?”

“아참 그 얘길 매듭을 짓지 않았구만. 나를 찾아온 사내는 ‘현녀관’에서 묘수풀이를 한 젊은이인데 그곳에서 얼굴을 가린 여인이 흥미로운 부탁을 했다는 거야. 내기바둑 두는 미우라(三浦)라는 자가 있는데 그에게 편지를 보내 답장을 달라는 거야.

무슨 얘기냐 하면 젊은이에게 ‘본인방수책’의 기념우표를 건네며 하는 말이, 어떻게든 미우라를 내기바둑판으로 끌어들이면 쓸만한 물건을 줄 뿐더러 2백 세를 살 수 있는 비밀을 가르쳐 준다지 않은가. 해서, 그 젊은이는 내가 보는 앞에서 편지를 썼네.”

육도 선생이 말하는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다름 아니옵고 미우라 선생에게 이런 편지를 올린 것은 이곳 현녀관에서 내기바둑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내기바둑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묘수풀이를 해야 하는데 문제를 함께 보냅니다.
다만, 동봉한 ‘본인방수책 기념우표’에서 한 장을 떼어내 참가 신청서에 우표를 붙여 동봉해 주셔야 내기바둑 대회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그럼 소식을 기다리며 이만 줄입니다.>

육도선생의 얘기는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을 때 경위원에서 두 명의 별순검을 대동한 경무사 일행이 찾아왔다. 아침나절 발견된 미우라(三浦)의 주검이 발견되면서였다.

그는 날붙이(刃物)에 찔리거나 교살된 게 아니고 극독에 중독돼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채 발견되었다. 특히 그의 혀끝엔 검고 푸른 기운이 있는 독물이 묻어 있었는데 쓰러진 앞쪽의 반상엔 한 장의 기보가 놓여 있었다. 흑선으로 결과를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