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수 최주서는 아들의 경박한 행동을 꼬집으며 탄식을 쏟아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처녀의 기색이 곱지 않은 건 당연했어요. 자신이 출제한 문제를 바둑 선생에게 물어서 풀라 한 것은 정겨운 일이었어요. 한데, 아들 녀석은 서두른다는 것이 처녀의 마음을 상하게 한 거지요.

아들이 출제한 문제를 풀고 나서 처녀가 말했어요. 자신이 한 말엔 농담이 없으니 반드시 지키겠지만, 문제를 풀지 못할 때엔 둘 사이에 있었던 얘긴 없는 것으로 하고 자신들에게 지불하지 못한 농선지(籠扇紙) 대금을 모두 지불하라는 것이었어요. 물론 아들 녀석은 그러겠노라 큰소릴 쳤지요. 처녀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 이런 문제를 반상에 깔아놓았어요.”

문제는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단숨에 풀기에는 힘겨워보였다. 천주서는 사사를 ‘오로관'에 보내 임씨 성을 쓰는 젊은이를 불러와 아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밤이 깊도록 돌을 들었다 놓으며 아들 녀석을 훈도한 덕택에 다음날 마주앉아 바둑을 두게 됐는데···,
보다시피 ‘가'의 곳을 직접 끊는 것은 무리이므로, 아들 녀석은 <정해도>의 백1로 끊었다.

처녀는 냉랭한 어조로 약속 이행을 촉구하였고, 만인들 앞에서 했던 것이라 결국 밀린 종이 대금을 줄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천씨 성을 쓰는 젊은이가 부친에게 한 통의 서찰을 보내왔다며 그것을 장율하 앞에 내놓았다.

<···사람의 일이란 결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마음에 드는 이를 만났는데도 그 뜻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을 깊이 탄식합니다. 그러나 ‘오로관'에 머문다는 그 젊은 놈에게 속아 나의 신세를 망쳤으니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몽둥이찜질을 한 것이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아버님 불효한 자식은 미련 없이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밥이 돼 속세에 지은 죄를 씻어볼까 합니다···.>

불행한 결말이었지만 그 젊은이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오로관'의 임문혁이가 미처 설명하지 못한 것은 <변화도>였을 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찾을 수 있는 수순이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