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본 이종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흥! 변변치 못한 년 같으니! 잠자리에 물건을 흘렸으면 간수나 잘할 것이지! 얼충이 같은 홍가 놈이 주워 여편네를 닦달한 도구로 사용한 것 같소이다. 그래,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순검 나으리?”

“자네가 풍설을 짓는 재간이 있다기에 꺼내놓은 것이네. 이번엔 내가 지은 풍설을 들어보시게. 이 수첩을 발견한 홍진영이 아내를 친정으로 쫓았지만 그래도 마음자리의 앙금이 풀리지 않아 취선루라는 유곽을 찾아가 장순호에게 욕설을 퍼 부었소.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안다고도 했고, 다른 얘기도 했을 터이나 워낙 술에 취해 할 말을 다 못한 것이네.”

“못한 말? 그게 뭡니까?”

“바로 당신을 조심하라는 당부였소.”

이종구는 순간적으로 놀란 표정이었으나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주위를 얼버무렸다.

“아하하하, 과연 훌륭한 풍설이오! 아주 좋습니다. 어디 뒷 얘길 더 들어봅시다!”

다시 얘기가 이어졌다.

“당신은 흥정을 걸었을 것이야. 장안의 정신 나간 작자들을 모아 모임을 만들고, 그들에게서 경비를 빼내 명문 사대부가의 과부나 처녀들을 납치해 보쌈이란 명목으로 하룻밤 노리개를 삼으라고 말이네.
물론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장순호가 음란서생 노릇을 하며 알아냈을 터이고, 이 점을 내세워 흥정을 걸었을 것이네. 그대는 아내가 죽은 후라 혼자 몸이니 자연스럽게 장은하를 만나겠다 하였고, 장순호는 전날의 일도 있어 못 이긴 척 허락해 주었네.”

이종구가 발끈했다. 그는 눈가에 칼날을 단 채 묻지도 않은 예전의 일을 끄집어냈다.

“그 영감이 나를 덕석몰이 할 때 모든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소. 안방마님이란 년은 나를 잡아먹지 못해 날뛰었고, 영감쟁이도 당장 요절을 내라고 발을 굴렀소. 함께 살을 섞은 계집은 제몸 다칠 새라 방문 걸어 잠근 채 꼼짝을 않고, 장가 놈은 묵묵부답 한마디 말도 없이 바라만 보았소!”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악에 바친 이종구의 목소리를 장은하는 건넌방에서 핏기가 가신 낯으로 듣고 있었다. 침통한 낯빛의 그녀 곁에는 다인이 앉아 있었다.

여섯째 날 - 허점을 찾아서

이종구는 자못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그것을 교묘하게 뒤틀며 별순검 취조에 응한 입술 한쪽엔 비웃음의 찌꺼기가 달라붙어 있었다. 그도 마지못해 입을 여는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궁금하다면 속 시원히 털어놓겠소이다. 처음이야 어쨌는지 나도 내 마음을 알 수 없지만, 덕석몰이를 당한 후 마음이 바뀌었어요. 어떻게든 그 집을 쑥밭으로 만들겠다고 골백번 다짐했으니까.
첫 번째 계획이 순조롭게 되어 장가 계집이 친정으로 쫓겨오자 하루는 그 계집을 찾아가 일을 꾸몄어요. 집안의 재산은 장가나 그 여편네 차지니 그것을 빼내 멀리 도망가 살자구요. 처음엔 당치않은 일이라고 펄쩍 뛰었으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 그 방법이 나을 거라 계집이 생각한 거죠.”

“그래서 방을 바꾸었구?”

“아, 아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라 사람 출입이 눈에 잘 띄지 않았기에 천만 다행이었어요. 사방이 캄캄하고 천둥이 으르렁대니 홀로 잠자리에 든 장가 놈의 계집으로선 얼마나 허전했겠어요. 서방이란 작자는 장안을 박쥐처럼 누비며 돼먹지 않은 염담을 나불거렸으나 제년은 그때마다 한숨 속에 밤을 지냈으니까요.
내가 발가벗은 몸으로 이불 속을 파고들 때까지 계집은 모르는 것 같았어요. 목덜미를 핥고 젖무덤을 잡았어도 한마디 말이 없더니 그년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방아를 찧기 시작하자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세요?’가 아니겠습니까?”

더 이상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었으나, 이종구의 염담이 연(鳶)처럼 기세를 타자 잠시 내버려두었다.

“계집이란 게 그래요. 처음엔 온갖 격식을 따지고 모양새를 만들다가도 막상 발가벗고 잠자리에 들면 요부가 따로 없어요. 생면부지의 사내라한들 제 몸에 들어오면 그것이 나가지 못하도록 여러 방법을 쓴다니까요.
장가 계집도 어지간히 색을 밝혔지만 그 계집은 한 수 더 떴어요. 오히려 내가 지쳐 나동그라질 정도였으니까요. 요본과 감창은 두 말할 나위가 없고 사내의 힘이 되살아나게 하는 방법까지 알지 뭡니까. 그러고 보면 장가가 집에 안 들어가는 것은 이유가 있었던 거죠. 아까운 계집이었지만 이젠 그 정도에서 끝을 내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아참, 수사에 도움이 될 사항들을 말씀드리죠. 며칠 전 장가에게 멀리 떠나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장가와 함께 사는 계집이 자꾸만 내 허릴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고 했어요. 물론 사람을 어찌 죽여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예전에 일어난 사건 하나를 풍설로 엮어 들려줬지요. 아마 그 얘길 듣고 마음을 결정한 듯 싶습니다.
내 얘긴 끝났으니 나가보아야겠습니다. 지금 얼충이 사내놈들이 내 얘길 듣겠다고 날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은 죽은 장가를 대신해 제가 얘길 하기로 했습니다.”

훌훌 자리를 털고 이종구가 나간 후, 장은하가 들어왔다. 그녀의 낯빛엔 핏기가 없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눈을 감은 채 골똘해졌다.
장율하의 말이 조심스러웠다.

“올케의 죽음은 한사람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스스로 목을 맸다면 모르거니와 상대를 실신시켜 목을 매단 것은 어지간한 사내라도 힘이 부칩니다. 그 점으로 보면 이종구란 사내가 도와주었을 것이고···.”

“아니에요.”

“아니라뇨?”

“그 사람은 그 시각, 다른 곳에 있었어요. 올케의 목을 매단 것은 용인댁과 그 집 서방이에요. 내가 용인댁을 불러 울면서 그 사람과 올케 사이를 말했더니 무척 화를 내며 도와주었어요. 물론 모든 일 처리는 용인댁의 서방이 했지만요.”

“이종구는 덕석몰이를 당한 후 한이 컸던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하려 했겠지요. 어쨌거나 이종구에게 건너간 재산을 찾아야 합니다. 그가 절취한 이집 재산을 내놓지 않는다면 당신의 올케를 죽인 살인자가 되는 것이고, 재산을 내놓는다면 용인댁을 움직여 살인을 자행한 예비 음모죄를 적용할 것입니다.”

장율하는 서랍에서 꺼낸 쥘부채에 달린 ‘선추’를 눈높이까지 들어올려 흔들었다. 그것은 죽은 자의 방에서 나온 해묵은 물건이었다.  (제15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