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동안 홍칠오는 여러 방법으로 풍가 마누라 심씨를 유혹했었다. 남편이 바람피우는 걸 좋아하니 부아 김에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줄 알았는데 그녀는 정숙한 여인처럼 흔들림 없이 처신하여 남편이 자신에게 준 금붙이를 건네며 극구 사과했다.

“나도 바람결에 들은 바가 있어요. 내 남편이 정이 많아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내 생각엔 당신의 자식을 내가 낳지 못해 그러는 것 같으니 자식이 태어나면 본래의 착한 자리로 돌아올 거예요.”

이렇다보니 홍칠오는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한양에 돌아와 목로주점에서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는데 근방에 있던 이름 있는 매파 송씨가 반색하며 다가왔다.

“아이구 홍씨 오랜만이우. 요즘엔 좋은 자리 하나 찾았수? 천하에 다시없는 자릴 찾아야 팔자가 훤히 필 것 아니우?”

매파 송씨는 상대의 잔이 비기를 기다려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그렇잖아도 홍씨를 만나 하소연 하려던 참이우.”

“하소연이라니오?”

“그 못된 놈 풍가 때문이우.”

“?···.”

“그놈이 시집에서 쫓겨온 내 딸아이에게 못된 짓을 했지 뭐유. 자식을 하나 낳아주면 한 살림 떼어준다고 약속을 했는데, 자식을 갖지 못하자 두 해 동안 데리고 놀다 차버렸지 뭔가. 딸년이 찾아와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더니 며칠 집을 나갔네. 내가 자다가도 풍가 생각만 하면 간이 떨려 이가 다 갈린다니까.”

“잊어버리세요, 아주머니.”

“아니야. 잊을 일이면 진즉에 잊었겠지. 내 들으니 그 작자의 마누라 심씨가 아이를 가졌다고 한약방에서 보약을 지어간다는 말을 들었네. 듣자하니 산후 달이 5월이라던데, 그게 사실인가?”

“그럴 겁니다. 우리 마누라가 4월이니···.”

송씨가 눈을 빛내며 다가 앉았다.

“이봐요, 홍씨. 홍씨야 마음 착하게 세상을 살아왔으니 있는 복, 없는 복을 받을 것이네. 그렇다 해도 밖에 흘러다니는 소문은 감출 수 없는 것 아닌가.”

“?···.”

“홍씨를 곤란하게 하려고 입을 여는 게 아닐세. 그러니 오해는 말아. 홍씨 부인도 풍가 놈 때문에 어쩐다는 소문이 시장 바닥에 쫘악 깔렸어. 비록 말은 안 해도 홍씨도 깊은 한은 있을 거야.”

“그야 그렇지만···. 앙갚음 할 방도가 없질 않습니까?”

“아니야, 있어. 있고 말고.”

송씨는 더욱 다가앉더니 홍씨의 귓전에 입을 가져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둘째 날 - 시작이 끝이다

세월이 빠르다는 것은 산후달이 가까워지면서였다. 그 동안 매파 할미는 자신의 자존심을 구겨가며 풍가의 집을 출입한 덕에 아이를 낳을 때 산파역을 맡게 되었다. 심씨는 워낙 나이가 들어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산후통이 여간 심한 게 아니었다. 그러는 데도 곁에 앉아 힘을 불어넣어주는 산파 할미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는가 하면 그 집의 골방에 있는 홍가의 마누라 역시 배를 질끈 묶은 채 자꾸만 세상 구경하려는 자식을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용을 쓰고 있었다. 어떻게든 큰 방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야 배를 묶은 끈을 풀 수 있었다. 낮 시간이 초조하게 지나가고 자정이 넘어가자 마침내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응애, 응애!”

산파는 환히 웃으며 시야가 가물가물한 신씨에게 말했다.

“마님, 어쩌면 이렇게 홍복이십니까. 어쩌면 이토록 떡 두꺼비같은 아들을 낳았습니까. 영락없이 주인 나으리를 닮아 두 눈이 초롱초롱 합니다.”

산모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깊은 잠에 떨어져 버렸다.  날이 샐 무렵, 풍가네 집을 나서는 사내가 있었다. 품에 꼬옥 어린애를 안고 있다가 산파 할미가 나오자 잽싸게 다가갔다.

“자, 어서 떠나게. 자네 마누라가 그래도 복은 있는 모양이야. 그토록 복대를 두르고 있더니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야 말이네만 시집에서 쫓겨 온 내 딸년은 진즉에 목숨을 끊었네. 이렇듯 자네 부부가 내 뜻을 받아들여 마음에 쌓인 한을 풀 수 있게 해주니 기쁘기 한이 없네.

자, 어서 떠나게. 날이 새면 풍가가 이상히 여길 터이지만 자네 집이 싫어 떠난 것으로 알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네. 그리고 자네들 품에 안긴 풍가 놈 딸년은 조금 키우다 유곽에 팔아버리게. 제 아비의 업보를 대신 받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산파 할미는 돌아섰다. <철경록>의 저자는 그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세상의 온갖 즐거움과 쓴 맛은 이들(매파)과 관계 있다고. 그러기에 접근을 피하라는 경고였다. <1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