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인지 현장으로 떠나는 감여(풍수사)들을 향한 가네마루의 당부가 절실했다.

“말이 죽은 자리를 찾아내려는 것은 나 혼자 명당을 움켜쥔 채 복을 누리려는 게 아니오. 나의 선조가 그리 청한 것은 내가 그곳을 찾아 대한제국 황제에게 상재하라는 것이오. 그러니 여러분들의 재간을 모아 그 자리를 찾아내 산도(풍수도)를 그려오시오.”

한양을 떠나온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소득이 없었다. 경위원에서 파견된 순검들은 상금 액수를 높였다. 말이 죽은 자리를 찾아내면 쉰 가마의 쌀을 포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곳곳에서 소문을 들은 풍수사들이 몰려들어 갈마리 일대는 사람들로 흥청거렸다.

한양의 홍제원에서 온 홍칠오 역시 두 달 가까이 헛걸음을 한 탓에 기진맥진해 있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자 부아 김에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달이 휘엉청 밝은 밤에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다.

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비벼떴다. 몽롱한 취기 속에 보이는 것은 검은빛 준마, 그 준마는 목을 늘어뜨린 채 물을 마시고 있었고 교교한 달빛은 말 갈기에 부서져 은빛 조각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홍칠오는 지필묵을 꺼내 급히 산도를 그려나갔다. 이윽고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엔 검은빛 준마는 홀연히 사라진 후였다. 그는 서둘러 마을을 떠났다. 한양으로 돌아와 경위원을 찾아가 가네마루에게 면담 신청을 했다.

“내가 그곳에서 말을 찾았습니다. 산도(山圖)를 그려왔어요. 자, 이 그림을 보십시오. 천하에 둘도 없는 명당입니다!”

자신이 그린 산도를 펼쳐든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참으로 신비롭고 어려운 길지를 그렸는데 중요한 혈자리 부분이 땀에 지워진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명마의 조화라 했다. 자신(명마)이 주인을 위해 잡아둔 자리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걸 허락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지나고 집에 도착하자 아내가 시큰둥하게 맞이하며 노오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요?”

“열어 보시우.”

안에 든 것은 쌀 한 가마니를 양곡상에서 가져올 수 있는 전표였다. 궁한 살림에 큰 수확이었는데 아내의 말이 푸접스럽게 떨어졌다.

“우리가 자기 집에 얹혀산다고 내 몸도 자기 것인 양 함부로 굽디다. 요즘 당신의 벌이가 신통찮아 나에게 은근한 흥정을 벌입디다. 자신의 성이 풍가(馮哥)니 어떤 점쟁이가 그런 점괘를 내놨다는 거예요. 천성적으로 자신은 물가에서 말을 타는 것이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냐 물었더니 말을 잘 길들이는 재주가 자신에게 있으니 그걸 배워 당신에게 가르쳐 주랍디다.

이 전표는 풍가가 한 달에 한 장씩 준다고 했으니 우리가 한 겨울에 식량걱정하고 아등바등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내가 바람났다고 당장에 쳐 죽이던가, 아니면 당신이 모른 체 하여 한 달에 몇 번 풍가가 원하는 날 치마를 벗어주고 전표를 받든지···.”

홍칠오는 기가 막혔으나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다만 부탁하기를,

“내가 워낙 못났으면 이런 일을 당하겠는가. 그놈이 하자는 대로 하되 자식이 생길 수 있는 날은 피하시게. 당신의 몸을 빌려주는 것은 그렇다 해도 그 몸에 자식까지 챙겨준다면 너무 슬픈 일 아니오.”

아내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차리자 힘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일단 홍칠오의 허락이 떨어지자 풍가는 시도 때도 없이 덤벼들었다. 그는 부식을 살 수 있는 전표도 몇 장 들고 와 자신의 흥에 맞춰 요본(凹本;엉덩이 흔들기)과 감창(甘唱;콧소리로 낑낑거리는 것)을 하면 주겠다 하여 제 계집처럼 훈련시키며 길들였다. 이런 날 흡족한 즐거움을 얻게 되면 명례동 보석상에 들려 귀금속 몇 가지를 들고 와 자신의 아내 심씨(沈氏)에게 선물 하곤 하였다.

어느 날 홍칠오가 전라도까지 일을 보러 가게 되었다. 전라도 광주가 고향인 심씨의 어머니가 몸이 좋질 않다는 이유로 급한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풍가는 가야할 처지인 데도 문간방에 사는 홍가를 불러 부탁했다.

“내가 요즘 몸이 좋질 않아 먼 길을 떠날 수 없네. 그러니 자네가 내 아내를 데리고 우리 처갓집에 좀 다녀오게. 요즘 아내 몸이 약간 무겁다 하니 아마 아이가 들어찬 모양이야. 그러니 조심해서 다녀오게. 그리하면 이참에 자네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을 마련해 주겠네.”

그렇게 하여 전라도 광주 땅까지 심씨와 동행하여 한 달 만에 되돌아오자 아내는 목소리 낮추어 탄식했다.

“아무리 먹고 사는 게 급하다 해도 이제 더는 못하겠어요. 풍가가 당신 없는 사이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지 책을 펼쳐놓고 별 요사스런 짓을 하지 않겠어요. 정말 내가 제 마누라나 되는 지 함부로 이 곳 저 곳을 만지는 것은 고사하고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을 때’는 이런 모양으로 있다가 마음이 동해 제 짝을 만나면 십자걸기를 한다고 나를 쓰러뜨리고 뒤쪽에서 찍어 누르잖아요.

당신에겐 말 하지 않았지만 내가 아이를 가졌거든요. 풍가 마누라 심씨가 임신한 지 석 달 됐다는 데 나는 넉 달째에요. 한 달이 더 됐어요. 그런 나를 함부로 대하니 정말 죽을 노릇이에요. 그러니 어쩌면 좋죠? 당신이 집에만 없으면 내 치마 속을 더듬으니···.”

홍칠오는 아내를 위로했다. 자신에게 생각이 있으니 어지간하면 참고 지내라 한 것이다.

“내가 자네에게 전염병이 옮겨 온 것 같으니 구석에 있는 방을 달라고 했네. 그러니 풍가는 전염병이 무서워 가까이 오지 않을 것이네. 자네가 앞으로 아이를 낳을 때 쯤이면 우리에게 좋은 수가 생길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