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칠오가 경위원을 찾아들자 경무사 가네마루의 명을 받은 고참 순검 장율하가 일행들을 널따란 객청(客廳;손님맞이 방)으로 안내하여 방을 붙인 전말을 설명했다.

“경무사의 꿈에 선조가 나타나 그런 말을 했답니다. 지난 임진년 난리 때 그의 선조가 조선에 파견됐는데 말 한 마리를 잃어버렸답니다. 장소는 충청도 중원군 가금면 창동리로 당시의 시간을 지금으로 돌리면 시일이 상당히 흘렀으니 뭐라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만, 제 생각엔 아마 풍수적 명당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분이든 그 말에 대한 산도(山圖;풍수적 그림)를 가져오면 쌀 스무 가마를 상으로 드리겠습니다.”

다행히 홍칠오는 부친에게 풍수 공부를 받은 바 있으므로 그곳에서 걸러진 열일곱 명의 풍수사들과 충청도로 향했다. 이곳 충청도 중원군 가금면 창동리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목 마른 말’이 있다는 이른 바 갈마리(갈마 마을)였다. 오래 전부터 신안(神眼)이 열린 풍수사들이 찾아드는 산 높고 물 맑은 곳이다.

모두들 하늘과 땅의 변화를 제손금 들여다보는 재간으로 ‘목 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혈(穴)자리를 찾아야겠다는 속셈으로 인근 산자락을 헤맸으나 뜻을 이룬 사람은 없었다.

도대체 이곳은 어떤 사연이 있는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임진년 당시 왜란이 일어난 그 때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갈마 마을은 탄금대에서 2킬로 지점인 창골 마을에서 남쪽 합수나루가 있는 달천 쪽에 좌정해 있다.

임진년 왜란이 터지자 신립(申砬)은 팔도순변사로 임명됐다. 일약 육군참모총장이 된 것이다. 전세는 날이갈수록 불리했다. 마침내 4월 26일에 이르러 충청도 군현 병력 8천여 명을 이끌고 단월역(丹月驛)으로 나갔는데, 이때 종사관 김여울이 적을 유인하는 묘책을 내놓았다.

“아군과는 달리 적은 대군이므로 정면으로 맞서는 건 피해야 합니다. 이 근방의 험난한 지형지물을 이용해 협곡에 복병을 숨겼다가 안으로 유인한 후 일거에 활을 쏘아 적을 함몰시키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충주목사 이종장(李宗張)도 야전의 불리함을 역설했다. 세재(鳥嶺)의 험한 곳에 병사를 두어 많은 기치를 세우고 연기를 내어 일단 적들을 동요시킨 후 기병을 보내 기선을 제압하자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신립의 생각은 달랐다. 그 옛날 초한 전쟁 때의 한신(韓信)처럼 탄금대 가까이 배수진을 쳐야 한다고 우겼다.

“적이 영 밑에 있는데 우리가 그 위 진지를 확보하기 위해 교전한다면 위태로운 일이오. 병사 수효가 작으니 일단 그들을 사지로 집어넣어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게 아니오.”

이 무렵 소서행장(小西行長)은 1만8천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신립은 먼저 1천기(騎)의 병사를 보내 적을 소동시키자 약간의 소득이 있었다. 자신을 얻자 2차 3차 공격으로 결론을 내려 했으나 결과는 대참패였다.

악전고투를 치러낸 신립은 급기야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김여울과 충주목사 이종장도 전사했다. 주인 없는 창검과 붉게 물든 강물 위로 전마(戰馬)의 울음만이 밤의 적막을 찢어냈다. 전황을 들은 유성룡은 <징비록(懲毖錄)>을 기록할 때 깊은 탄식을 쏟아 냈다.

<···아아, 원통하다! 뒤에 들었지만 왜적이 상주에 들어왔으나 그래도 험한 곳을 지나기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문경현(聞慶縣) 남쪽 십여 리 되는 곳에 옛 성 고모성(姑母城)이 있다.  좌우도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양쪽 산골짝이 묶어놓은 듯하고 가운데 큰 냇물이 흐르고 길은 아래로 나 있다. 적병들은 이곳에 우리 군사들이 지키고 있음을 두려워하여 사람을 시켜 두 번 세 번 척후한 다음 그곳에 우리 병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노래 부르며 지나왔다고 한다.

그 뒤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왜적을 추격하여 새재를 지나면서 탄식하기를, ‘이와 같이 험한 요새가 있는 데도 지키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 신총병(신립)은 실로 모책이 없는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 하였다.

비록 신립이 날쌔게 움직여 한 때 이름을 떨쳤다 해도 전략을 마련하는 것은 그의 소장(所長;장점)이 아니었다고 한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장수가 군사를 쓸줄 모르면 그 나라를 적에게 주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를 뉘우친다 해도 소용없으나 그래도 뒷날의 경계는 되므로 적어두는 바이다···.>

소서행장과 격전이 끝난 뒤, 한 필의 말이 합수나루를 건너창동리 마을로 들어왔다. 지치고 목이 말랐던지 마을 어귀에 있던 옹당샘에서 목을 축이고 산으로 올라갔다.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말을 잡으려고 쫓아갔다. 그러나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그 말은 양지바른 언덕 위에 네 다리를 편 채 숨을 거둔 뒤였다.

사람들이 가까이 묻으려 괭이질을 했으나 땅은 한 치도 들어가지 않자 이번에는 산 밑 양지바른 곳을 파 말을 옮기려 했으나 꿈쩍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사람들은 그냥 두었다.

사흘째 되는 날,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자 소문이 돌았다. 마을에 들어온 말은 신립 장군의 애마라 했다. 그래서 동리 이름이 바뀌었다. ‘목 마른 말이 들어와 물을 마신 동리’. 그래서 갈마리(渴馬里)였다.

그때부터 소문이 무성하게 가지를 쳤다. 말이 쓰러져 누운 곳이 명당이니 강물에 몸을 던진 신립장군을 찾아 그 자리에 묻어줘야 한다는 소문이었다. 사람들이 진혈을 찾으려 했으나 이제껏 소득이 없었다.

대한제국의 경위원으로 발령난 경무사 가네마루가 현해탄을 건너오며 꾼 꿈이 바로 이것이었다. 임진년에 죽은 말이 죽은 자리를 찾아내라는 것이 그의 선조가 내놓은 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