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기상천외한 복수(媒婆)

육파(六婆)의 셋째는 ‘매파(媒婆)다. 남녀의 혼사를 잇게 하는 끈을 가졌다는 뜻이 있지만, 좋은 의미와는 달리 ’혼사‘라는 틀을 위해 온갖 못된 짓을 일삼는 ’뚜쟁이‘ 여인’을 말한다. 과연 이 세상의 매파가 그런 짓만 저지르는 것일까. 매(媒)는 중매하거나 중신한다는 뜻을 갖지만, 탐(貪)내거나 어둡다(昧)는 속뜻도 지니고 있다.

첫째 날 - 말(馬)을 찾아라!

대한제국의 사건 사고를 종합적으로 검토 · 보완하여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경위원에서 느닷없는 공고를 붙였다. 사건을 관할하는 주요 내용은, 살인 사건으로 죽은 자를 검안해 시장을 만들고 범인을 추적하여 잡아내는 것인데 갑작스레 ‘말을 찾아라!’는 공고는 참으로 해괴한 일이었다.
은밀히 떠도는 얘기는 경무사로 발령난 ‘가네마루’가 간밤을 지내고 나서 방을 붙이라는 명을 내렸다는 것인데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자초지종을 몰라 이런 저런 말들이 구구절절 떠다녔다.

“나이가 서른이 됐다는데 용력을 따지면 그런 대로 힘깨나 쓰는 놈 아닌가. 조선에 와서 죄인들을 잡아들이는 경무사가 되었으니 말빨이 서는 걸 보려 지랄 떠는 것 같구만. 근디 뭔 말을 잡으라는 거여?”

갑자기 붙은 방(榜)이라 모여든 사람들은 눈을 희번덕이며 사실을 알아내려 했으나 소속이 없어 유언비어만 풍성하게 떠다녔다. 세상이 이렇듯 잔잔한 궁금증에 빠져있을 때, 이곳 홍제천(弘濟川) 가까이 살고 있는 홍칠오(洪漆烏)도 그런 소식을 들었다. 대대로 이곳에 와 살게 된 것은 연유가 있었을 것이지만 그 역시 돌아가신 부친의 엄명을 받들어 천하를 떠돌며 ‘말(馬)’을 찾고 있었다. 그의 부친 홍상필은 죽기 전에 한이 어린 말을 했었다.

“우리 집안의 내력을 보자면 한때는 힘깨나 쓰고 방귀깨나 뀌며 살아온 호방(戶房;아전)이었다. 지난 병자호란 때 나라가 쑥밭이 되었을 때, 집안에 있는 말을 두고 가기가 뭣해 그걸 지키다가 그만···.”

누가 들으면 대단한 충성이나 의리를 앞세운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호조에서 버린 말을 키워왔는데 말이 새끼를 밴 것이다. 새끼 낳을 날이 머지않았는데 병자년 호란이 터져 청나라 병사가 내려온 탓에 집안은 순식간에 쑥밭이 돼 버렸다.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자 왕족과 비빈들은 강화도 들어갔다. 그러나 강화도가 청군에 함락되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게 된 왕은 성을 나와 청 태종에게 항복의 예를 올렸다. 그 당시 청군에게 수모 받을 걸 염려하던 사대부가의 부인들은 ‘청군에게 수모를 받게 되면 차라리 자살 하겠다’고 하였고, 이때 김유의 부인 이씨는 ‘그때 가봐야 알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참판 부인이 ‘사대부가의 부인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공박했다. 그러나 막상 청나라 병사들이 닥치자 김유의 부인 유씨를 나무랐던 이참판 부인은 스스로 절개를 굽혔으나 유씨 부인은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 청병에게 무참히 화를 당했다. 그러므로 이후 사람들은 이참판 부인을 가리켜 ‘말만 앞세운 정절’이라 꼬집었다.

전쟁이 끝나자 많은 여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얼마 후 심양에 끌려간 여인들이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조정에서는 오랑캐에게 더럽혀진  여인들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훗날 바람 핀 여인을 ‘화냥년’이라 부르는 환향녀(還鄕女)들이었다. 인조는 고심 끝에 명을 내렸다.

“홍제원 냇물(지금의 모래내)에 목욕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면 그 죄를 묻지 않겠다. 만약 어느 누구건 이 여인들에게 정조 문제를 거론한다면 과인은 엄단할 것이다!”

국력이 부족하여 수모를 당한 것을 여인의 책임으로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동서고금 정복의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전리품으로 여인들이 등장했다. 힘이 약한 조정으로서는 여인들을 구제하기 위해 내린 방책이니 그 완고하고 ‘격’을 내세운 조선의 유교사회도 어쩔 수 없이 떫은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이유로 ‘홍제원(弘濟院)’은 ‘널리 구제한다는 곳’으로 통한다. 이곳에서 흐르는 물, 즉 홍제천은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에서 발원해 흐르는 한강의 제1지류다. 길이는 14킬로미터의 하천으로 모래내 · 사천(沙川)이라고 한다.

세검정에서 흘러온 맑은 물이 홍제원 부근에서는 늘 모래 밑으로 스며들어 버리므로 모래내라 불렀는데, 조선 시대에는 동대문 밖의 보제원(普濟院), 광희문 밖의 전관원(箭串院), 그리고 이태원과 함께 도성 밖 4대원의 하나이다.

이렇게 보면 근처에 사는 홍칠오 집안은 명문 사대부가의 피를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중인 계급의 살림살이를 하다 병자호란을 만나 좋지 않은 일을 당해 이곳에 터를 내린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홍칠호의 부친(홍상필)은 죽기 전에 입버릇처럼 중얼거렸었다.

“우리 집안이 쑥밭이 된 것은 그 놈의 비루먹은 말 때문이었다. 그 말이 새끼를 낳지 않았으면 우리가 변두리에서 살며 풍가 놈의 눈치를 살필 이유가 있었겠느냐. 내 워낙 지난 일이 한스러워 점쟁이를 찾아가 하소연을 했더니 궐자가 하는 말이 그러더구만. ‘내 자식 때엔 한이 풀릴 거라구 말이야’. 해서 말이다만, 어떻게든 칠오 네 놈이 아비 한을 풀어다오.”

부친에겐 그러겠노라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그렇다고 신세를 펼 어떤 계기가 온 것은 아니었다. 배운 게 도적질이라는 말이 있듯, 아비 따라다니며 눈대중으로 익힌 풍수지리술이다 보니 마음자리에 조금이라도 허탄한 심정이 들면 산에 오르고 싶은 게 다소 위안이 되었다. 아침나절 아내는 그런 얘길 했었다.

“당신과 내가 만난 지 이제 1년이 넘었습니다만, 어찌 된 게 자식이 들어차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잖습니까. 당신 아버지 말씀처럼 옛날에는 말(馬)로 인해 집안이 시끄러웠다 하는데, 지금 왜놈 벼슬아치가 말을 찾는다고 방을 붙였으니 당신이 찾아낸다면 내가 자식을 가질 것 같소. 그러니 빈둥거리지 말고 이참에 길을 떠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