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호 노인의 말은 계속되었다.

“내가 자식의 무덤 앞에서 일주일간을 지내고 있을 땝니다. 근처를 지나가던 노승(老僧) 한 분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빈 무덤 앞에서 무슨 이유로 울고 있느냐고요. 해서 연유를 물었더니···.”

‘빈 무덤’이라는 말에 장율하는 마치 벌침을 맞은 듯 깜짝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재빨리 풍수학의 교본 <장경(葬經)>을 꺼내들었다. 그곳 어디에서 본 적이 있는 ‘도시혈(盜屍穴)’ 부분을 펼치자 시체가 사라지는 과학적인 해설이 쓰여 있었다.

<시체가 사라지는 혈자리가 도시혈이다. 사람들은 이런 자리를 만나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든가 ‘마술사’ 같은 혈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은 과학적인 분석에 의해 자연현상임이 밝혀졌다. 어떤 땅의 가장 아랫부분에 경사 암반이 있고, 그 위에 연약한 지반이 있으며, 풍화작용에 의해 연약한 지반보다 굳어진 경우가 생겼을 때 이곳에 묘를 쓰면 도시혈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 지반을 풍수학에서는 토양포행(Soil Creep)이라 하는 데 암반 위의 흙이 밑으로 흘러내리는 현상이었다. 이때 지표는 나무뿌리나 풍화작용으로 단단해져 그대로 있는 반면 중간층 흙만 사면이동(斜面移動) 한다. 그렇다보니 이런 지표층에 주검을 묻으면 시체가 밑으로 빠져 사면이동을 하기에 감쪽같이 없어져 버린다.

그런 이유로 풍수학에서 시체가 도망가는 혈자리라 불렀다. 노승은 한동안 조만호 노인을 바라보다 안되겠다는 생각인 지 뒷말을 떨구었다.

“이곳에 아드님을 묻은 건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검을 묻고 일주일이 지났다면 아마 주검은 저 아래쪽으로 흘러갔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스님?”

“도시혈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혈은 누구나 쉽게 알아보지 못하는데 며느님께서 이곳을 장지로 택했다면 다른 생각이 있었겠지요. 자, 이곳에서 활을 쏘았다면 노인이 보기에 과녁은 어디겠습니까? 아무래도 저 아래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겠지요? 바로 거깁니다. 아드님 주검은 그곳에 있습니다.”

노승을 따라 내려가 보니 오래된 초가엔 근래 사람이 출입한 흔적이 엿보였다. 주위를 살피던 노승이 한 곳을 골라 곡괭이를 찍었더니 놀랍게도 조만호 노인이 묻었던 관이 나타났다.

“열어보시지요.”

관 뚜껑을 벗겨내자 거기엔 배가 절단된 아들의 주검이 놓여 있었다. 아직도 핏자국이 선명한 수의 위엔 며느리가 남긴 편지가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마사오(正男) 씨의 전당포에서 일을 하면서 보석에 독이 묻은 것을 알았습니다만, 저는 그걸 당신에게 말할 힘이 없었어요. 저는 당신의 친구에게 이미 몸과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당신 뱃속에 든 보석을 꺼내 우린 일본으로 갑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 믿지만, 당신은 저를 원망 마세요. 당신의 억울한 한은 씻어 드릴께요.

모든 일을 계획한 당신의 친구는 누군가 이 글을 볼 때엔 당신처럼 죽은 자의 모습으로 남겠지요. 그게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나의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뱃속에 든 아이는 어찌 됐든 당신의 자식으로 키우겠습니다.>

조만호 노인이 내민 서찰을 읽으며 장율하는 무거운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니까 하나꼬(花子)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계획했었다. 동행한 사내를 이용하고 이젠 그까지 죽이려고 한다. 그의 자식을 가졌으면서 죽이려는 이유가 뭘까? 장율하의 무거운 신음이 흐른 그 시각.

관부연락선이 뱃고동을 길게 고동을 울릴 때, 선창가 목로여관엔 여행준비를 하는 하나꼬가 입술에 연지를 바르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그녀는 침상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당신에게 마취제를 사용했다고 나무라진 않겠지요. 당신이 나를 이용해 보석을 훔치게 하고, 그것도 부족해 당신의 친구인 내 남편을 죽였어요.

며칠 전 남편의 몸에서 보석을 꺼내고 술 마시고 잠들었을 때, 당신은 꿈속에서 중얼거리더라구요. 당신에겐 게이꼬(京子)라는 여자가 있더군요. 일본까지 나를 데려가는 건 보석을 운반하기 위함이라고 했죠? 그래서 보석을 씻은 후 나에게 삼키게 한 거군요. 당신의 모든 계획은 완벽했지만 당신의 꿈속을 찾아가 비밀을 알아냈으니 나는 마술사가 아닌가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침상엔 흥건히 피가 고여 있었다. 몇 번이나 몸을 뒤척였지만 사내는 몸이 마비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손목의 잘린 동맥에서 쉼 없이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철컥 자물쇠가 채워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아스라이 들렸다.

“이봐요, 주인아저씨. 내가 나갔다가 내일 아침 들를 거예요. 우리 아저씬 술을 많이 마셨으니 내일 아침에 일어날 거든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깨우면 안돼요. 아시겠죠? 내가 돌아와 맛있는 것 대접해 드릴께요.”

“그럼요, 그러고 말굽쇼. 어서 다녀오십시오. 날파리 한 마리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단속을 단단히 해두겠습니다.”

관부연락선 쪽으로 향하는 그녀의 걸음이 유난히 힘차게 여관 주인의 눈에 들어왔다.

<10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