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꾼들이야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지다 보면 성적(性的)인 문란성은 뒤집어 볼 수 없도록 더럽고 추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하나꼬와 조창구의 친구가 우선적인 의심 1호였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이곳 전당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데다 본래 머물던 동대문 인근의 여관방에서 떠났고 보니 조사대상은 하나꼬에 국한되었다.

탁일환이 현장에서 돌아왔을 때, 경위원에는 장거리 출장을 다녀온 고참 순검 장율하가 서류를 열심히 검토 중이었다. 기척을 느낀 탓인지 얼굴을 들었다.

“어이 탁순검, 작년에 수원에서 올라온 격쟁(擊錚)을 자네가 담당했었지. 무덤 속의 비밀 말이야. 시집간 누이가 죽은 무덤에서 독침(毒針)이 발견됐다는 격쟁이 있었잖아.”

당시의 시장(屍帳)을 찾아 고리를 벗겨냈다. 그것은 수원 관아에서 처리한 것으로 ‘격쟁’에 의해 경위원에선 두 사람이 파견되었다. 여인의 죽음에 항상 파견되는 다인과 고참 순검 장율하였다. 뒤늦게 참여한 탁일환은 주검이 묻힌 현장을 돌아보고 초검과 복검을 참조해 시장을 작성했었다.

<그 사건은, 격쟁을 올린 사내가 누이의 죽음에 의문이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경위원에서 파견된 순검들의 조사에 의하면 제두(배꼽)가 있는 위치에 검고 푸른빛이 나는 색소가 어려 있고, 또한 인근의 뼛조각들이 그런 모양으로 굳어 있었다. 항인(行人;안내자)을 통해 정황을 살폈더니 그는 무덤 속의 형상이 다섯 가지 염(廉;무덤 안에 이상이 생기는 것)에서 벗어난 것이라 했다.>

풍수학에 따르면 주검을 묻은 후, 그 자리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 ‘염’인데 여기엔 다섯 가지가 있었다.

동양 윤리상 뼈는 누렇게 삭는 것을 제일로 쳤다. 그런데 뼈가 삭는 것이 바람 든 듯 힘없이 버석거리는 것은 풍렴(風廉), 뼈 있는 곳에 물이 차는 것은 수렴(水廉), 뼈가 까맣게 변한 것은 화렴(火廉), 무덤 안에 나무가 침범한 것은 목렴(木廉), 벌레가 들끓는 것은 충렴(蟲廉)이다.

이렇게 되면 무덤에 이상이 있다 하여 다른 곳으로 봉분을 옮기는데, 그것을 ‘휴수(休囚)’라 했다. 이러한 징후를 알아보기 위해 무덤 여는 기간은 무덤을 쓴 지 3년에서 30년 사이다.

시장에 의하면, 당시 무덤 안엔 여인의 주검은 이미 삭아 뼛조각만 남은 상태였지만 제두(배꼽)에 검고 푸른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로 보아 그 사내는 누이가 독살 당했다고 격쟁을 올린 것이다.

사건은 다시 재조사가 시작되고 과거의 음모가 밝혀졌다. 여인은 미혼분(迷魂粉)에 취해 혼절한 상태에서 배꼽에 독을 묻힌 침을 맞아 절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사건 현장에 나왔던 내의원 출신 의원은 돌아가기 전 뜻 모를 얘기를 들려주었다.

“선과 악이라는 건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는 사람의 몸을 하찮게 여기나 여기엔 우주(宇宙)가 숨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좋은 일을 하면 좋은 힘이 쌓이고, 나쁜 일을 하면 악업이 쌓이지요. 이것들은 당사자가 죽은 뒤나 그 후손들에게 나타납니다. 그런 연유로 예로부터 선덕을 쌓으라는 말을 자주 하지요. 우

리 몸에 이런 저런 비밀이 있듯 무덤 안에도 비밀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밀의 하나가 ‘도둑놈 혈자리’라는 도시혈(盜屍穴)입니다.”

이른바 시체를 도둑맞는 혈자리다. 사람이 죽었을 때 그곳에 묻고 봉분을 세운다. 어느 누구도 손 댈 수 없을 정도로 회(灰;시멘트 작업)를 부었는데, 나중에 봉분을 헐어내니 감쪽같이 시체가 사라져 버린 경우다. 이런 자리는 장지의 모양이 궁혈(弓穴;활쏘는 모양)이나 부아악(負兒岳;아이를 업은 형상의 봉우리)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얘기는 의원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지만, 시장엔 적어놓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시장을 보면서 그것을 떠올린 것이다.

셋째 날 - 사마귀와 독사의 계략

이날 오후 늦게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빗발에 실린 냉기가 완연히 가을이 깊어졌음을 실감케 했다. 이번 사건의 정황을 처음부터 되짚어 보고 있을 때 장율하를 찾아온 노인이 있었다. 조만호였다. 그는 자식이 죽은 후 무척 수척해진 낯으로 장율하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내가 경위원으로 순검 나으리를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닙니다. 얼마 전 제 아들놈이 죽어 미아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묻었습니다. 며느리가 아들놈이 묻힌 장소에서 일주일간은 누가 시신을 보자고 해도 절대 허락해선 안 된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러겠노라 대답했지요.

그런데 며느리 말이, 그동안 자식을 갖지 못했는데 어찌 된 게 아들 녀석이 죽은 날 임신을 확인했다지 않습니까. 그 아이를 버릴 수도 있지만 아들과의 정리를 생각해 홀로 키워보겠노라 말하는 바람에 대견하다 여겼습니다만···, 생각해보니 그 아이는 내 손주가 아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집안엔 몹쓸 병이 나돌고 있었어요. 자식을 못갖는 병이지요. 그래서 제 아버님도 내가 갓난아이 때 양자를 들였고, 나 역시 아들 녀석을 양자로 들였답니다. 생각해보면 피가 다른 아이니 당연히 자식을 생산하리라 생각되지만, 어찌된 셈인지 자식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은밀히 알아본 바로는 그것이 저주라지 뭡니까. 우리 집안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풀리기 전까지 후손을 생산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며느리 말은 내 아들 녀석이 죽자 아이를 잉태했다니 이제야 집안에 흘러온 저주가 풀렸는가 싶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더라 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