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파(六婆)의 두 번째는 건파(虔婆)다. <철경록>의 저자는 좌전(左傳)을 원용해 ‘빼앗거나’ ‘죽이는 데’ 앞장 선 여인을 가리켰다. 그 부류를 따라가면 종류는 많겠지만 ‘강취(强取)하는 여자’로 규정했다.

첫째 날 - 어느 도박사의 죽음

성북구 돈암동에서 정릉천을 지나 의정부로 이어지는 고개가 ‘미아리(彌阿里) 고개’ 또는 ‘되너미(敦岩峴) 고개’라 부른다.

‘미아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일제시대 이 부근 일대가 조선인들의 전용적인 공동묘지 구역이었으므로 사람이 죽으면 상여가 넘어가게 되어 있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으로 그런 명칭이 붙었다. 미아 7동의 불당골에 그전부터 미아사라는 절이 있었으므로 절 이름에서 비롯됐다는 말도 있다.

그런가하면 되너미고개는, 옛 지도에 호유현(胡踰峴) 또는 적유현(狄踰峴)으로 표기되는 명칭에서 보듯 오랑캐나 되놈이 넘어온 고개라는 뜻을 나타낸다. 좀 더 접근해가면 이곳은 병자호란 때 되놈(胡人)이 넘어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서울로 진입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이곳 고개 어디에 일고여덟 사람이 모여 장례(葬禮)를 행하고 있었다. 한양 땅에서 가장 손재간이 좋다는 도박사 조창구(趙暢究)의 주검이었다. 경위원이나 관아의 순검들이 없어 분위기가 다소 헐렁한 느낌이 있었지만 죽은 자의 아비 조만호(趙萬鎬)는 자식의 가는 길이 못내 서러운 탓에 두어 장 쯤 떨어진 위치에서 먼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짓고 있었다.

아마 닷새 전이었던가. 그날은 한가위가 하루 지난 터라 그런대로 마음자리가 넉넉한 편이었다. 평소라면 한 달에 한 번, 집구석이라고 뾰족하게 머리를 디밀던 아들에게 꼬부라진 못 같은 말로 심기를 긁었었다.

“그래, 네놈 하는 짓이 도대체 무어냐? 남들은 가기 어렵다는 일본 땅으로 있는 것 없는 것 팔아 유학이라는 걸 보내줬더니 고작 조국에 돌아와 하는 짓거리가 도박판을 전전하는 것이냐? 에라잉, 천하에 못된 놈 같으니! 네놈에게 돈을 보내려 뼛골이 빠지도록 일하다 비명횡사한 네 에미를 생각한다면 이럴 수가 없지. 아암, 그렇고말고!”

날선 송곳으로 구겨진 마음자리를 찔러대는 데도 아들 녀석(조창구)은 얼굴 하나 구기지 않은 채 넉살을 떨었다.

“아부지, 오늘 같은 날은 성깔 좀 부리지 마시요잉. 으째서 자식 하나 있는 것 못 잡아 먹어 안달입니까.”

“아이구 이놈이 이젠 전라도 사투리까지 쓰는구만. 하기야 제 에미 죽는다고 편질 보냈어도 콧방귀 튕기면서 모른 체했으니께 지금 와 그런 말 한다고 먹힐 놈이 아니지. 그래, 이번엔 무슨 일로 집구석을 찾아왔냐?”

“지금 와 말씀드립니다만, 저라고 해서 불효하는 게 마음 편했겠습니까. 어쩌다보니 일이 그렇게 꼬였지요. 아버님이 굳이 지난 일을 아시고 싶다면 말씀드리지요.
제가 그곳에서 공부를 할 때 우연히 하나꼬(花子)라는 여자를 사귀었어요. 어느 날 그 여자가 제게 고백했어요. 자신이 일하는 곳이 허가를 받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법이란 거예요.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저라고 마음 편하겠어요. 그래서 위로를 해주었는데, 그 아가씨 하는 말이 ‘내가 자기 가게로 와서 본 후 자신이 일해도 되는지를 말해 달라는 거였어요.’ 시간을 내어 찾아갔는데 그 날 일이 벌어졌지 뭡니까?”

다른 게 아니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마술사 같은 기술자들의 ‘타짜(속이는 기술)’ 솜씨에 넋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해서, 일본에 있는 동안 공부는 아예 때려치우고 도박사들을 따라다니며 기술을 익히는 데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세 해가 지났을 때 사장이라는 자가 말했다.

“자네가 요즘 나이든 조선 노인을 만난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그 분은 지술(地術;풍수지리학)을 배우러 일본에 왔다가 친구 꼬임에 떨어져 하우스(화투방)를 전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듯 나이가 든 걸 모르듯이 세월이 금방 간다지 뭡니까.”

“그래서? 자신의 신세를 닮지 말고 정신 차리고 조선으로 돌아가라 그 말인가?”

“아닙니다. 무엇이든 사내가 일을 잡으면 최선을 다 하라는 당부였습니다. 그분에게 내 나이 또래의 아들이 하나 있는데 거둬 달라는 청이었거든요.”

얘기는 여기에서 끝났다. 이후 조창구는 하는 일에 열심을 보여 잠시도 한눈을 파는 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열 달 전, 일행들을 데리고 조선으로 건너왔다. 집에 들르는 것은 한 달이나 두 달에 한번씩으로 올 때마다 아버지가 쓸 돈을 넉넉하게 내놓았다.

이번 추석 때만 해도 부친에게 넉넉히 용체를 주면서 지나치듯 던진 한마디 말이 귀에 못이 박힌 듯 선명하게 떠올랐다.

“제가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 부모님에게 한을 남길 것 같습니다. 요즘엔 하루 다르게 몸이 좋질 않아 이 사람(하나꼬)에게 당부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 사람이 채근해 아버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당하면 사람들이 찾아와 애도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님께서 그들을 따뜻이 맞이하여 좋은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십시오. 그런 다음 나와 이 사람이 드린 종이에 표시된 장소에 무덤을 마련하여 나를 묻으십시오.”

“묻어? 너를? 그럼, 네가 죽는단 말이냐?”

조창구는 놀란 부친을 달랠 여유가 없다는 듯 다른 말을 떨구었다.

“저를 묻으신 후 일주일간은 그곳에서 떠나시면 안 됩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내가 묻힌 장소에서 일주일간은 계셔야 합니다. 결코 떠나지 마세요. 나중에 제 뜻을 아시게 될 겁니다. 아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