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 우물에 빠져 죽은 방물장수

이날 밤 늦게 경위원에 신고가 들어왔다. 종로의 한성부 중부에 속하는 수동(壽洞)의 한갓진 우물에 여인의 주검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곳은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중간에 ‘소나무 송(松)’ 자가 슬그머니 끼어들어 이름이 바뀌었다. 중앙청 앞에서 안국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소나무가 울창해 붙여진 이름이 송현동(松峴洞)으로 이곳에 있는 수동과 송현동을 합해 수송동(壽松洞)으로 바뀌었다. 수진방(壽進坊)에 속한 마을이므로 이제껏 ‘수진동’ 또는 ‘수동’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이 자리는 조선왕조 개국 초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기고 궁을 짓던 개국 일등공신 정도전(鄭道傳)과 관계가 깊었다. 그는 서울의 각 땅 이름을 붙였는데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장수할 것이라고 ‘수진방(壽進坊)’이라 붙였다.

태조 이성계의 뜻에 따라 강비 소생의 왕자 방석을 왕으로 옹립하려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방원(태종)에게 피살된 후 정도전의 ‘수(壽)가 다 된 곳’이라는 뜻으로 수진방(壽盡坊)으로 풀이했다.

자자손손 복을 얻어 백세천세 영락을 누린다고 장담했던 터는 정도전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렸고 졸지에 화를 당한 그 자리엔 사복시(司僕寺)가 들어서 옛 삼봉길(三峰;정도전의 아호)의 여운을 나타내고 있었다.

명례방에서 바쁜 걸음을 오가던 방물장수 아낙이 무슨 이유로 그곳 수진방까지 가서 우물에 몸을 던져 죽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경위원에 낮 근무를 선 탁일환이 현장으로 달려가 순검들을 지휘하여 방물장수 아낙의 주검을 운반해 오고 있었다. 물론 현장에서 시장(屍帳)이 작성되었다. 방물장수가 죽은 걸 안 것은 인근에 사는 동네 아낙이었다. 우물에 빠진 경우 시장의 작성은 다음의 원칙에 따른다.

첫째, 어떻게 우물 안에 사람이 있었는지를 알았으며

둘째, 처음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어찌 알았으며, 만약 살았으면 구하려고는 했는지

셋째, 시체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시체가 있는 것을 알았는지

넷째, 집안의 우물이라면 사망한 사람이 언제부터 있었으며 또한 보이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이날 우물가에 나온 아낙은,

“차암, 우습네요. 당신들은 그것도 모릅니까. 사람이 우물 안에 있으면 위로 거품이 떠올라요. 물거품이 생기니까!”

맞는 말이었다. 현장에서 돌아온 탁일환을 맞이한 것은 정문원이었다. 다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장율하는 다모 다인과 출타해 그 사건은 정문원 앞에 떨어져 있었다.

사체를 검안하던 의생(醫生)이 여인의 손에서 뭔가를 찾아냈다. 그것은 자신의 옷고름이었다. 물에 젖었을 때는 몰랐는데 자세히 훑어보니 방물장수 역시 샘에 빠졌을 때 옷고름을 물어 뜯은 것으로 예상됐다. 그녀의 몸에선 인근에 사는 장동희가 이서한 쌀 열가마니의 값에 해당하는 어음이 있었다.

오후 3시가 넘어 정문원이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엔 널따란 툇마루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장동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홀로 마시는 술자리였지만 잔은 셋이었다. 두 개의 잔은 빈 채였고, 한 개의 잔에만 술이 차 있었다. 정문원이 건너에 앉는 것을 보며 그가 말했다.

“자, 한잔 드십시오 순검 나으리. 내가 죄를 지었으니 잡으러 왔겠지요. 그래,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방물장수 아낙의 몸에서 당신이 배서한 어음이 나왔습니다. 그 우물은 당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고, 어젯밤 당신과 그 아낙이 함께 있는 걸 본 사람이 있소이다.”

“그것만으로 나를 잡아가둘 수는 없겠지요.”

“물론 그렇소. 그런데 당신의 친구 이수병의 아내 병화(竝花)가 죽었을 때도 옷고름을 쥐고 있었고, 지난밤 우물에 빠진 방물장수도 옷고름을 물어뜯어 손에 쥔 채 절명했습니다. 나는 우연한 일이라 여겼는데 거기엔 나름대로 뜻이 있었소. 방물장수가 옷고름을 뜯은 것은 단지 당신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지만, 이수병의 아내는 비록 죽는 마당이었지만 남편에게 두 가지 기쁨을 전하고 있었소.

하나는 남편이 관상감의 임시직원에서 정식 직원이 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식을 가졌다는 의미였소. 그래서 갑사 옷고름에 있는 ‘희(囍)’자를 뜯어 손에 쥔 것이오. 방물장수 아낙은 이것을 보고 당신이 죽였다고 확신했을 것이오. 그렇다보니 깊은 밤 이곳까지 와서 협박 했을 것이고, 급기야 주인장께선 그 여인에게 쌀 열가미의 값에 해당하는 어음을 지불했소이다!”

장동희는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나서 상대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의 눈가에 찬바람이 내려앉았다.

“내가 방물장수 아낙에게 속아 병화라는 년의 머리 얹는 값으로 쌀 열가마니의 값을 준 것은 몇 달 전 일이오. 정해진 날 찾아갔더니 그 년은 내 친구 이수병이에게 쌀 서른 가마니의 값을 받고 병화를 넘겼지 뭡니까.

그렇다 해도 나에게 첫 번째 몸을 준다는 약조를 했으므로 혼례를 치른 후에도 찾아갔더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지 뭡니까. 그래서 목을 조른 후 대들보에 목을 매달았는데, 지난밤엔 방물장수 아낙이 찾아와 일이 그렇게 된 것은 자신의 실수였다지 않습니까. 자신이 열가마니에 해당하는 어음을 지니고 있는데 애매하게 병화가 죽었다는 협박이었어요. 자신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시집 갈 날이 머지않았으니 이참에 쌀 서른 가마만 도와주면 두 번 다시 찾아오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돈을 주겠다고 우물가로 데려가 거꾸로 집어넣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우레가 일어나 때맞춰 가는 비가 쏟아졌다. 장동희는 최근 명례동에서 유행하는 신쥬(心中;불륜남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곡)를 가만가만 읊조리며 한쪽에 놓인 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순식간엔 그의 입에선 핏덩이가 넘어오는 소리가 꾸르륵거리더니 그의 얼굴은 상 위에 놓인 안주 접시 위에 큰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9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