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원은 육씨를 불러 전후 사정을 캐물었다. 당연히 육씨는 펄쩍 뛰었다. 소승사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았고 지금껏 기름장사를 하는 중에 남에게 단돈 한 푼 빌려본 적이 없다고 억울해 하였다.

그래서 이번엔 그의 아내 마씨를 불러 심문했다. 마씨는 짐짓 겁에 질린 얼굴로 우물거리며 서슬이 시퍼런 정문원의 호통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여는 듯 털어놓았다.

“사실 이 얘기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린 것을 본 적이 없고 중간에 사람을 시켜 빌려왔는지 어쨌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얼마 전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아요. 나이 어린 녀석이 자꾸만 귀찮게 돈을 달라고 하니 죽여 버리든지 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그 말을 들었을 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돈을 갖다 준 사람이 소승사의 부친이고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또한 그의 아들까지 세상을 떠난 마당이니 더 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사람이 죽었으니 좀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무래도 가장 좋은 방법은 죄인이 직접 자백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육씨를 잡아들여 닦달했다.

“모든 정황이 드러났으니 어서 자복하라!”

그러나 육씨는 모르는 일이라고 울부짖었다. 도무지 자백할 기미가 보이지 않은 가운데 순검들이 죄인의 방을 뒤져 피묻은 칼을 찾아냈다. 다시 육씨를 닦달했다. 같은 말만 되풀이하던 육씨는 마침내 모든 걸 자백했다.

뒤늦게 이 사건에 합류한 장율하는 처음부타 개운치 않은 냄새를 맡고 있었다. 모든 정황증세가 육씨에게 불리하고 보니 그대로 판결문을 쓰고 사건 자체를 경무사에게 보고했다. 이런 와중에 정신을 차린 육씨는 가까운 사람을 시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무렵, 마씨와 태현은 모든 일이 자신들의 뜻대로 되어진 것을 기뻐하며 낮이나 밤이나 어울렸다. 이렇듯 두 사람이 색도락에 취해 있을 때, 장율하는 순검들을 파견하여 인근 주민들의 여론을 들어보았다.

보고에 의하면 기름장수 육씨는 워낙 살림꾼이기 때문에 돈을 한 푼도 헛되이 쓰는 법이 없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곧잘 도와주기까지 하였다는 것이다. 도관에 있다는 소승사라는 난쟁이는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다고 육씨의 주변인물이 말해 주었다.

그런가하면 쌀 3백 가마니에 해당하는 금액을 맡았다는 것부터 이상했다. 그런 돈을 빌렸다면 당연히 집안의 누군가는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 이 일을 아는 이가 없자 모종의 흑막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수사해온 순검으로서의 육감이었다. 장율하는 은밀히 순검들을 처소로 불러들였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마씨와 태현이란 자가 의심스럽다. 너희들은 두 사람이 어찌 지내는지 감시하라.”

순검들은 밤쥐처럼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채 태현과 마씨의 행동을 주시했다.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색도락을 즐기던 두 사람의 꼬리가 잡힌 것은 일주일이 채 못되어서였다.

그날은 꽤 깊은 밤이었다. 달도 없는 어두운 밤에 마씨는 집을 나섰다. 주위를 따르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믿고 인근에 이사를 온 태현 도관을 찾아갔다. 마씨를 맞이한 태현은 이날 색다른 요리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는 <채녀경(采女經)>이란 방중서(房中書)에 나오는 ‘사충화술(蛇冲和術)’라는 비기에 심취해 있었다.

“그렇잖아도 자네가 오길 기다렸네. 자네가 오면 한 번 써보려는 것은 <채녀경>에 나오는 것으로 두 마리 뱀이 서로 희롱하다가 나중에 화합에 이른다는 비술이네. 이것은 한(漢)나라 영제(靈帝)의 후손으로 일본에 귀화한 야스요리(康賴)라는 성의학자가 전한 것으로 일본 황실에 은밀히 전해진 것이라네.”

태현 도관이 그렇듯 이름을 붙여 말했지만, 그것은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는 <의심방(醫心方)>의 ‘방내편(房內篇)’에 나오는 비기였다.

사내가 자신의 욕구(慾俱)를 이용해 음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비단헝겊을 사용하여 보기에도 낯 뜨거운 짓을 행하는 게 시작이었다. 그러나 음행이라는 것은 불길과 같은 것이어서 한 번 뜨거운 열기에 취하다 보면 그것이 꺼지기 전엔 그치지 않는다.

순검들이 방안에 들어올 때까지 두 사람의 행위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일단 남녀를 경위원에 구인해 온 후 일갈을 날렸다.

“네 이놈! 너는 도관을 세워 세상에 도력을 전한다는 놈이 어떻게 계집의 치맛자락을 올리고 색도락에 취해 있느냐! 너희들이 난쟁이 소씨를 죽이고 그것을 기름장수 육씨에게 뒤집어 씌웠으렸다?”

처음엔 펄쩍 뛰던 그들도 허리가 부러지도록 내려치는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자백하기에 이르렀다.

“글쎄, 나는 가만있는데 저 계집이 우리 도관에 찾아와 일을 벌렸다니까요!”

마씨는 누구에게 호소를 하는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저 놈이 아니었다면 내가 죄를 짓지 않았어요. 길 가던 나를 불러들여 저 놈이 겁간했다니까요!”  <8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