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이제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곳저곳 오주부의 손길이 스치는 곳에선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그것은 온 몸을 쩌릿쩌릿하게 하는 것으로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활화산처럼 폭발해버렸다. 그것은 순식간에 정념으로 변해 자신의 몸에 들어온 사내의 힘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강하게 조이며 몸부림쳤다.

날이 새도록 괭이처럼 이앓이를 하며 사분질을 하는 동안 어느덧 동창이 훤했다. 몸이 날아갈 듯 가뿐했다. 자신이 언제 아팠느냐 싶게 온몸의 혈맥이 거칠게 요동하다 제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그때 며느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아침상입니다. 늦게 일어나실 것 같아 찬거리만 준비해 두었습니다. 저는 서방님의 장원급제를 축수하는 불공을 드리려 갑니다. 내일 오후에나 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소리가 끊어졌다.

다섯째 날 - 깊은 밤 깊은 곳에서

하루 전. 밤이 깊어가고 있을 때, 담을 넘은 사내가 있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집에서 유월이가 부엌살림을 도맡았는데 갑자기 일을 그만 두고 고향집으로 돌아갔었다. 김씨는 뜻밖에 두둑한 용체를 건네며 나중에 시집을 가더라도 한 번 들려달라는 말을 던져주었다. 유월이가 떠나자 집안 살림은 며느리 몫이 되었다. 크고 작은 일이 적지 않았지만 며느리는 묵묵히 일해 주었다.

“내가 며느리에게 좋지 않은 생각을 갖는 건 벌 받을 일이지. 손자 하나라도 쑥 낳아주면 좋으련만.”

김씨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부고가 전해졌다. 가짜 주사위로 사기도박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는 전말이었지만, 주검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서둘러 며느리에겐 알려야 하는 데도 지금껏 입도 뻥긋 않은 것은 머릿속에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더군다나 비명에 죽은 아들이 쥘부채를 유품으로 며느리에게 남겼다는 말을 듣는 순간 미움이 다시 솟구쳤다. 쌀 한 톨 먹는 것까지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만큼 애증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며느리가 서방의 장원급제를 발원코자 불공을 드리러 갔다는 말에 오주부가 넌지시 운을 뗐다.

“이런 말을 해야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만, 며칠 전 며느리 방에 사내놈이 들어가는 걸 보았습니다. 내가 방문 앞에 다가가 무슨 일인가 엿들으니 글쎄 정인(情人)을 만난 듯 방사가 이뤄지지 뭡니까. 너무 놀라운 일이라 내심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마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나도 그런 기미를 눈치챘네만, 그 못된 것이 그런 일을 저지를지는 생각 밖의 일이네. 그런데도 못난 놈이 제 여편네라고 죽어가면서까지 유품이라는 걸 남겼으니 참으로 한심하고 어리석은 놈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