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야무진 결론을 낸 이공수는 자신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궁에 들어온 나인들을 골라 어느 누가 제왕의 잠자리 시중으로 적합한지 물건 중의 물건을 가려냈다.

이때 사용된 것이 <삼봉단결>이란 선도서였다. 여인을 골라내는 방법은 길이가 서른 자는 넉넉한 통로를 걸어오게 한다. 통로 바닥을 팠으므로 여인이 나막신을 신고 오면 그 소리가 미묘하게 들려 사내의 마음을 요동시켰다. 이러한 소리를 통해 상대방의 품격을 알아냈기에 그의 특기를 살려 ‘향랑공(響廊公)’이란 애칭으로 통했다.

사내의 물건이 없는 자신이 들어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여자. 그런 여자를 찾아 제왕의 잠자리 시중으로 올리는 게 그가 하는 일이었는데, 그런 그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어느 누군가가 제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아주 위험한 일을 감행했다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일종의 늑사(勒死)인 이공수의 사체는 누군가에게 강압적으로 목이 졸려 죽은 형태였다. 자액(自縊;목을 맴)으로 위장했어도 입과 눈은 열리고 손은 흩어졌다. 따라서 숨통 아래 혈맥은 통하지 아니하여 액흔이 얕고 흐려 피맺힌 자국이 없었다. 혀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시형도(屍形圖)를  그린 검안서(檢案書)의 주요 내용이었다.

둘째 날 - 은장의 노인의 주검이 떠오른 광나루

광나루 포구가 떠들썩한 한 것은 은장이 노인의 주검이 포구의 한쪽 접시물이 도는 곳에서 떠오르면서였다. 사람들이 한 눈에 은장이라고 알아본 것은 사는 데 구질한 사람이었지만 은장이로 솜씨를 부리는 데엔 근동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노인의 성씨가 최가(崔哥)라는 것만 알뿐이었지만 백팔 염주를 비롯하여 불국사 석가탑 등의 작품들은 무릎을 치며 감탄할 물건이었다. 가는 칼(細刀)로 조각해 은을 입힌 부처상은 그의 솜씨가 가히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감탄이 쏟아질 정도였다. 그렇듯 빼어난 재주를 지녔으면서도 구질하게 살아가는 것은 됨됨이가 세상의 속된 이익에 마음이 떠나있기 때문이었다.

근자에 광나루 선술집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 은장이 노인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막걸리 한 주전자를 인정으로 안겼다.

“별거 아니지만 오랜만에 만난 정리로 한 잔 하구려.”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은장이 노인은 자꾸만 헛웃음을 허허거렸다.

“사람이 살다보면 용궁에 갈 일이 있다더니 내가 운이 텄는가 보오. 머잖아 궁에 들어갈 것 같소. 고명한 항아님이 나의 재주를 흠모해 손가락에 낄 반지 하날 맡긴다 했는데 그게 어떤 모양인지 궁금해 하고 있다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는지 은장이 노인은 여간 즐거운 낯이었다. 궁에 들어가면 자신이 꿈꿔온 것들을 볼 수 있고, 평소 궁금해 하던 것을 알 수 있으리란 설레임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미약(媚藥)이었다. 궁 안에는 제왕의 사랑놀이가 일반 사대부가나 서민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최노인이 모를 리 없었다.

우연히 보았던 <수양제비사(隋煬帝秘史)>에는 제왕의 사랑놀이에 세 사람이 등장했다. 제왕이 여인의 몸 위에 올라가면 내시 둘이 앞에서 끌고 또 한 명은 뒤쪽으로 제왕의 몸을 당겼다. 그러니까 제왕은 애써 몸을 움직일 필요 없이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여인의 체취만 음미하면 거시기 없는 사내들이 열심히 위와 아래로 제왕의 몸을 움직여 준다.

이때 제왕의 사랑놀이의 정경을 세세하게 글로 쓰는 이가 섹스기록관 ‘여사(女史)’였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오래 전엔 내명부의 벼슬이름이었다.

은장이 노인이 궁금했던 것은 제왕의 사랑놀이였다. 궁 안에 삼천 명이나 되는 여인들을 사랑해 주려면 제왕은 나름대로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비책이 있어야 했다. 샘솟듯 솟아나는 끊임없는 정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평범한 미약을 사용하면 다음날 몸이 피곤해 방사는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제왕의 기력이 시들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동관의 내시들이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비방이 있다는 것을 은장이 노인은 들은 바 있었다.

“중원의 제왕들이 많은 여인과 상관하기 위해 사용한 비방은 오석산(五石散)이다. 이것은 다섯 가지 돌가루를 이용한 처방이지만 부작용으로 인해 삼분의 이가 요절했다. 그러나 장삼봉이 이끄는 삼봉파들이 궁에 들어와 세력의 가지를 친 것은 선도식 비술이 양생(養生)에 크게 조력했기 때문이었다.”

여인과 상관하더라도 자신의 몸엔 조금도 지장을 초래하지 않은 비법이 ‘선도식 비방’이었다. 이것은 유행하는 듯했으나 ‘접이불루(接而不漏;관계하되 사정은 않는다)’라는 점 때문에 즐거움이 시들해져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 버렸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은장이 노인은 그 자신 생각해 온 듯한 비방을 털어놓았다.

“중원에는 머리에 꽂은 금보요(金步搖)나 팔찌, 또는 반지를 통해 잠들어 있는 사내의 욕기를 깨운다는 말이 있다오. 몸에 두른 그것들은 움직일 때마다 미세한 가루가 떨어져 상대를 자극하므로 그런 방법을 쓰는 모양인데 이참에 내게 반지를 주문한 항아님은 그걸 어떤 용도로 쓸지 궁금하다오.”

은장이 노인은 스스럼없이 말하고 나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것이 이레 전의 일이었다.

초검관으로 나선 경기관찰사 유국진(劉局軫)은 사체를 경기 감영으로 옮기고 검안에 들어갔다. 나이가 쉰이 넘은 데다 평소 음식을 부실하게 먹었으니 체신이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 않았으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근육이 단단한 것으로 보아 오랫 동안 산에 오르거나 주행하는 습관이 있었던 게 분명해 보였다.

이내 초검관의 시형도(屍形圖)가 작성되었다. 의원과 항인이 다가서자 관찰사의 물음이 날아갔다.

“사체의 정황은 어떤가?”

“살빛은 문드러져 허옇게 되었고, 입은 벌리고 눈은 감았습니다. 머리가 아래쪽에 있고 복부가 팽창했습니다.”

“가만! 머리가 아래쪽에 있다?”

“예에, 사또! 다른 사람이 밀어서 목숨을 잃었다는 증겁니다. 스스로 강물에 투신할 경우 반드시 다리가 아래쪽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검의 임자는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다른 사람이 밀어 강물에 빠졌습니다. 더구나 복부가 팽창한 것은 살아 있을 때 물 같은 것을 마신 증거니 두드리면 소리가 납니다.”

“눈은 어떤가?”

“눈알이 빠져나왔습니다. 또한 입과 코 안에서 흰 물거품이 쏟아지고 가슴 쪽에 검은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죽음에 이르는 상흔으로 보입니다. 사체를 경위원으로 옮겨 파시(破視;해부) 하는 게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