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의 힘은 어둑새벽 되살아난다. 간밤에 요란한 성희(性戱)가 있었다 해도 어둑새벽이면 잠들었던 것처럼 깨어난다. 첫닭 우는 시각을 사람들은 닭이 우는 축시(丑時)라 했다. 그런데 왜 이 시각에 닭이 울까? 그 옛날 고조선 땅에서는 세 발 달린 까마귀 전설을 사랑했었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남근을 양물(陽物)이라 하고 양의 상징 태양에 비유했고 여근은 음이므로 달(月)로 표현한 것은 공식이었다.

그런데 고조선에선 사내의 상징을 왜 ‘발이 셋 달린 까마귀’ 삼족오(三足烏)로 나타냈을까? 까마귀는 해 뜨는 것과 함께 우짖는 새다. ‘삼족(三足)’이란 세 번째 다리인 남성의 상징이다. 그렇게 보면 닭 우는 시각이 사내의 상징이 깨어나는 시각이다. 신라에 전해진 <별주부전> 얘기 역시 그렇다. 그 얘길 한 폭의 춘화(春畵)로 보면 너무 쉽게 풀린다.

토끼라는 여러 사나이가 사내의 상징 자라를 앞세워 여인의 상징인 수중의 용궁을 방문하는데 힘이 약해진 용왕이 양기를 보충받기 위한 얘기가 <별주부전>을 쓴 작자 의도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사내의 힘은 어둑새벽에 살아 돋지만 간밤 연회로 인한 피로가 대왕에게 있을 것이라 보고 피의 밀교 의식은 한밤중으로 미뤄졌으나 대왕은 활기있게 깨어 있었다. 미실은 꿈틀대는 몇 가지 방술에 취해 젖어 있었다. 그것을 이용한 것일까. 새로운 방책을 내놓았다.

“마마, 쇤네가 종사를 위해 한 말씀드릴까 하나이다.”

“말하라.”

“오늘의 방중무(房中舞)는 태후마마가 만드신 것입니다만, 그 뿌리는 원화(源花)에 있나이다. 준정이 남모 공주를 유인해 살해한 것도 자신이 원화가 되려 꾸민 일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몰랐겠습니까.”

“계속하라.”

“위험한 만큼 원화가 되면 신라의 힘깨나 쓰는 사내들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나이다. 준정은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지소태후가 원화제도를 폐하고 화랑도를 육성해 그 우두머리를 풍월주라 한 것은 사내들을 자신의 수중에 두려는 계책이었나이다.”

“으음.”

“그리한 탓에 태후마마의 세(勢)는 지금까지 막힘없이 올 수 있었나이다. 물론 화랑의 육성은 나라를 강건하게 한다는 기치가 있었습니다만, 전장에 나간 화랑들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이란 명분 아래 싸운 것은 아니었나이다.”

“그건 옳은 말이다. 그대 생각을 말하라.”

“마마, 잠시 전에 말씀드렸듯 지소태후마마가 원화제도를 폐한 후 선화(仙花)를 화랑으로 뽑아 풍월(風月)이라 부르고 그 우두머리를 풍월주(風月主)라 불렀습니다. 마마께서 보위에 오른 원년 시월에 신라에선 민가의 소녀들 중 아름다운 자를 뽑아 원화(源花)로 삼았습니다만, 이것은 태후마마가 화랑도를 육성하기 위해 계책을 쓴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계책이라니?”

“남모와 준정이 원화가 될 때도 시빗거리는 많았습니다. 인재를 알아볼 수 없다는 명분 아래 태후마마는 많은 남녀들을 떼지어 놀게 해 그들의 행실을 살펴본 뒤 등용했습니다. 소년 중에 출중한 자를 풍월주로 뽑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녀를 원화라 했습니다만 무리가 3, 4백 명이 되자 서로 질투하고 시기해 좋지 못한 상황이 온 것입니다.”

남모공주가 죽임을 당하자 지소태후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도를 육성해 왔다. 궁안에 있던 소녀들은 자연스럽게 내명부에 귀속돼 나라에 공을 세운 중신들의 뒷방마님이 되거나 노리게 감으로 전락했다. 미실은 결론을 내렸다.

“쇤네가 알기론 원화 제도가 없어지면서 태후마마에게 막대한 힘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쓸만한 아이들을 가까이 두어 필요할 때마다 색계(色計)를 짜 상대를 잡아맸으니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왕권이 마마에게 옮겨갔으나 화랑을 움직이는 풍월주엔 세종 전군이 임명됐습니다. 그렇게 보면 태후마마의 세(勢)는 아직도 강건하다고 보여집니다.”

생각해보니 그러했다. 지소태후가 별다른 반발없이 모든 실권을 진흥왕에게 내준 것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됐는데 그게 밝혀진 것이다. 신라의 병권(兵權)은 병사들 못지않게 화랑도의 결집력이 몰라보도록 강성해 결코 병력의 움직임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미실의 진언이 이어졌다.

“마마, 왕권은 마마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정령(政令)이 한곳에서 나가며 유사시엔 마마를 위험에서 구할 수 있나이다.”

“허지만 어마마마가···.”

“정령을 회수한다는 게 아닙니다. 이제 마마의 시대가 됐으니 마마께서 바른 정치를 펴셔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시급한 게 원화(源花) 제도의 부활로 풍월주의 세가 커나가는 걸 막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원화제도의 부활은 6대 풍류주 세종 전군의 힘을 꺾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마마, 쇤네를 원화에 앉히시면 모든 것을 마마의 뜻대로 할 수 있나이다. 손 가까이엔 쇤네가 있고 내명부는 왕후마마께서 관장하시고 병사들의 움직임도 장기판의 졸(卒)처럼 들여다볼 수 있으니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이지요. 하오니 서둘러 영을 내리십시오!”

“생각해 보겠소.”

“시일이 흐를수록 마마껜 손해이옵니다. 때를 놓치면 마마께서 후회할 일이 생기옵니다. 모든 게 세종 전군에게 넘어가면 신라의 역사는 태후마마가 꿈꾸는 신국(神國)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삼족오(三足烏) ; 발이 셋 달린 까마귀. 고조선에서는 이것을 사내의 기상으로 나타냈다.

▲원화(源花) ; 민간의 처녀들 중 아름다운 자를 골라 원화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