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이 마음을 정한 건 왕가의 핏줄을 받은 대왕이나 세종 전군이 아니었다. 의무적인 상대로서는 대왕의 후궁이기 때문에 그 책무를 다해야지만 개인적인 즐거움의 상대는 설원랑으로 정했다. 나라의 흐름을 볼 때 아직도 지소태후의 입김이 곳곳에 뿌릴 내렸지만 그것은 연약한 풀뿌리와 같은 생명력일 뿐이었다. 권력을 잡기 위한 거센 피바람은 오래 간다는 믿음은 없었다.

더구나 자신은 왕후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신국의 새주(璽主)다. 마음에 드는 사내 몇이라도 자신의 침전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것은 모권이 거센 신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거 보세요, 부제.”

“말씀하세요.”

“대왕께서 내게 새주(璽主)를 내렸지만 그것을 물리치고 이곳 보명궁에 칩거한 이율 아시오?”

“그렇습니다.”

“알아요?”

“소인이 보명궁을 찾아온 것은 풍류주의 허락을 받은 일입니다만, 소인 역시 전군마마가 왜 소인을 이곳에 가게 한 것인지 연유를 알 수 없어 궁금해 하던 참이었습니다.”
 

“궁금증이 풀렸습니까?”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뭔가요?”

“전군께서는 그 동안 경서(經書) 위주로 책을 보았고 풍류주가 된 후에도 <무경칠서(武經七書)>를 가까이 했습니다. 오로지 월성을 편안히 하겠다는 일념이었지요. 얼마 전 지소태후가 책자를 보내 왔는데 그걸 받아들고 무척 곤혹스러워 했습니다. 그런 탓에 소인도 책자 내용이 궁금해 풍류주께 물었었지요.”

“뭣이던가요?”

“좌도밀교의 실행서 <대일경(大日經)>이었습니다.”

미실의 입가에 깃든 미소를 곁눈질하며 설원랑은 뒷말을 조심스럽게 붙였다.

“풍류주께선 책 속의 내용이 자신관 전혀 맞지 않는다는 한숨이셨습니다.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성사(性史)>를 아는 자만이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전군께서는 소인을 이곳에 보내 궁주님을 도우라는 말씀이 계셨기에 보명궁을 찾아온 것입니다.”

“오호호호, 그러니까 세종 전군은 내가 <대일경> 내용을 안다고 했습니까?”

“예에. 그리고 이것을 주셨습니다.”

“뭔가요?”

“곡옥목걸이입니다.”

“이유는 말하지 않던가요?”

이유란 말에 설원랑의 낯이 붉어졌다. 목걸인 목걸이로서 쓰임이 있는 게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 듣지 않았다. 미실은 그것을 작은 문갑 안에 넣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저 목걸이는 전군과 부부생활을 할 때 긴요하게 사용한 것이었다. 요즘날엔 사내의 양경(陽頸)에 쇠구슬을 넣는 등 요상한 짓거릴 하지만 미실이 살았던 그때엔 성의학을 이용한 오행비법으로 ‘색(塞)’이란 걸 사용했다. 즉, 묶는다는 것이다.

사내의 기가 약하거나 조루 증상이 있을 때, 밀교에서는 사정(射精)을 억제시키는 방법을 쓴다. 그 하나가 ‘영사란(靈蛇卵)’이고 그 둘이 ‘색(塞)’이다.

영사란은 ‘신령스러운 뱀의 알’이란 뜻으로 고환을 의미하지만 나아가선 고환의 기능을 억제하는 묘법으로 목걸이를 사용한다. 사정하려는 순간 가느다란 금제목걸이를 사내의 양경에 감아 시정을 억제시킨다. 바로 그런 용도의 목걸이를 설원랑이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이젠 미실의 상대역으로 세종 전군은 물러나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왜 그것을 설원랑에게 줬을까? 그것은 댕견의 위협에서 미실을 구해준 전력이 있는 데다 당사자에게서 싫지 않은 분위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부제는 어찌할 셈이오?”

“시생을 이곳에 보낸 것은 풍류주께서 궁주님 가까이 기거하며 도우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런 탓에 시생은 궁주님의 의향을 따를까 합니다.”

“나를 호위하고 지켜주겠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하면, 이리 가까이 오세요. 문갑의 셋째 서랍을 열면 기름먹인 종이에 싸인 <대일경>이 있을 거예요. 그 책의 ‘성사(性史)’란 부분을 펴서 읽어보세요.”

설원랑은 주저없이 미실의 말을 따랐다. 책을 꺼내 지적한 페이지를 열었을 때 그의 눈은 놀람으로 치떴다. 거기엔 아주 특별한 내용이 있었다. 도가(道家)의 행법이나 밀교의 비술을 익히지 않은 이도 단단한 몸을 만들 수 있는 비방이었다. 그것은 허약한 사내의 심벌을 단단히 재생시키는 비방이었다.

  ▲대일경(大日經) ; 좌도밀교의 경전

▲영사란(靈蛇卵) ; 사내들의 조루를 치료하는 비방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본래는 ‘고환’을 의미한다.

▲색(塞) ; 성사(性史)에 나오는 비방의 하나

▲금팔찌도 근본적으론 사내의 조루를 막는데 이용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