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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의 초반 구상: 깎고, 누르고, 넓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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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의 초반 구상: 깎고, 누르고, 넓히고
2018-11-15     프린트스크랩

(이 글도 2017년 1월 경에 써두었던 것으로, 사정이 있어 잊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노트북엔 남겨져 있었다. 삭감 관련해서 그래도 약간은 읽을 만하지 않을까, 그런 맘으로 여기 올려본다. 2018년엔 더욱 강한 AI가 여럿 있다는데, 대국을 한 판도 본 적이 없다. 다만 2017년 1월의 알파고만 봤을 뿐이다. 그래도 공부에는 별 문제가 아니 될 것이다.)


인공지능 바둑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2016년 여름, 알파고(AlphaGo)와 중국의 프로기사가 곧 대결하리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인공지능 바둑이 일상에 등장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11월엔 일본의 인공지능 딥젠고(Deepzengo)가 조치훈 9단과 세 판을 두어 1승2패를 했고, 인공지능과 프로기사가 함께 하는 최초의 세계대회가 2017년 3월 열린다고 발표됐다. 한편 중국의 인공지능 ‘싱텐’도 수준 높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빠른 변화다.

1월 초 또 다른 뉴스가 관심을 끌었다. 『중앙일보』정아람 기자가 쓰기를, 연말 연초 며칠 사이에 인터넷에서 알파고가 프로기사를 상대로 ‘60대0’의 성적을 거두었다고 했다.

알파고에 대한 최근의 평가를 잠깐 훑어 봤다. 구리 9단이 긍정했다. “이젠 인공지능과 함께 바둑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한다.” 커제 9단의 결의도 있었다. “나는 아직 절초를 숨기고 있다.” 물론 해보는 말이다. 바둑은 무협지가 아니며 그런 절초는 없다. 숨기고 자시고 할 게 없는 것이 바둑이다.

빠른 변화에 관전자도 어지럽다.
대체 앞으로 뭐가 어찌 되는 걸까?

그래, 바둑을 먼저 보자. 60국 중 타이젬에서 알파고가 둔 30국을 찾아 봤다. 실제 본 것은 28국. 보고 나니까, 알파고의 수준과 실력에 대해서 구체적인 감이 잡혔다. 저간의 사정도 대략 이해되었다.

이제 그것을 애기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반상 내외의 이해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필자의 좁고 틀린 이해에는 질정을 바라면서 써 보겠다.

초점은 알파고의 수준 파악을 위해 수법을 분석하는 것에 있다.


1. 알파고의 초반, 넓은 간격 선호와 누르는 수법, 삭감

알파고는 잘 둔다. 예리하고 결단력 있고 안목 넓고…

알파고는 최근 애호하는 수법이 몇 가지 있고 모두 신선한 맛을 준다.
행마는 간격 넓은 것을 선호하며, 누르는(鎭) 수법을 활용하는데 재미 들렸다. 초반의 때이른 삭감도 좋아한다.

이번 28국 알파고의 초반에는 특이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포석의 이른 시기에 시도하는 응수타진용 삭감, 상대를 내리 누르는 수법, 간격 넓은 굳힘, 중앙 지향의 행마 등이 그것이다. 또, 그 정도다.


먼저 다루어야 할 수법을 요약해둔다. 표1.

표1. 알파고 초반, 대표적인 수법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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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수타진 겸 삭감       28국 중 6국
압박하는 수법          28국 중 11국
간격 넓은 굳힘         28국 중 10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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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바둑에서 나타난 이들 신선한 착상은 모두가 다 과거 일본에서 탐구되었던 것들이다. 일관된 지향점을 가진 것들이다.


하나씩 들어간다. 먼저 ‘응수타진 겸 삭감’을 표2로 요약했다.

표2. 알파고의 응수타진 겸 삭감, 상대와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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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88  대국에서 흑7
bandari 대국에서 백10
수지    대국에서 백10
FengYu 대국에서 백30
수지    대국에서 백30
전국구  대국에서 흑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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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수타진 겸 삭감.’ 이 표현이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질정 바란다.

대국 몇 개를 보도록 하자.

▼ (4도) 삭감과 응수타진 백 알파고 흑 bandari

4도.
삭감은 상대의 집을 제한하는 수법이다.
모양과 연계될 때엔, 상대를 제한하는 동시에 자신의 집 모양은 크게 넓히는 수단이 된다.

백1 백3 그리고 백7 백9. 고래부터 유명한 수법이다. 신포석 시대에는 두어졌지만, 그리고 1970~80년대 다케미야가 애용했지만, 실리 중시 풍조에서, 그리고 두터움이 강조되는 시대적 유행 때문에 요즘은 만나기 힘들다.

수순이 중요한데, 백3이나 백9를 먼저 둔 다음에 백1을 둔다던가 백7을 두면 흑은 흑2와 흑8을 두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6도를 참조하라.

▼ (5도) 삭감과 모양 백 kiss88 흑 알파고


▼ (5-1도) 삭감과 모양 백 kiss88 흑 알파고

5도.
이렇게 빨리 백에게 응수를 묻는 경우는 최근엔 거의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둘 수 있는 수다. 흑의 구도가 웅장하게 세모를 지향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그 지향점은 5-1도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 (6도) 5도의 수순을 바꾼다면 백 kiss88 흑 알파고


▼ (6-1도) 5도의 수순을 바꾼다면 백 kiss88 흑 알파고


6도.
5도 흑7을 두지 않고 여기처럼 상변을 먼저 두었다고 하자. 그 다음에 여기 응수타진 겸 삭감 수법을 쓴다면? 백은 반발한다. 백8이 멋지다. 이후는 6-1도의 숫자 순으로 진행해서 흑의 큰 모양 구도가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제 왜 5도에서 흑이 먼저 흑7을 던져두었는지, 왜 그 흑7을 응수타진 겸 삭감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7도) 개연성을 제한하는 응수타진 백 알파고 흑 수지


7도.
난해한 수순이다. 백1 흑2 교환은 지금이 적시다. 우변 싸움 진행 중에 백1 두면 흑은 A 협공할 개연성이 언제나 있다. 그렇지만 우변 싸움에 과연 상변 백의 응수타진이 도움이 될까? 그것은 수읽기와 감각적 재능에 달린 문제다. 백5 흑6 교환은 집으로는 백이 손해다.

이런 싸움의 경우 백보다는 흑이 좀 더 어렵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국적으로 보아 백은 집이 많다. 적당히 이득 보고 물러서면 충분하다. 때문에 백은 응수타진을 적절히 사용하면 유리한 싸움을 주도할 수 있다.

이 바둑은 백이 반집 이겼다. 참고로, 백이 백5 흑6 교환 등으로 손해를 자꾸 보면, 즉 응수타진이 지나치면 주도권은 오히려 흑에게 넘어갈 수 있다.  

4도 5도 7도의 응수타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34~36도를 연구하시라.


응수타진과 삭감에 대해서는 이 정도에서 잠정적으로 마무리 짓자.
알파고의 굳힘을 보겠다.

표3에서 보다시피 넓은 굳힘을 28국 중에서 10국이나 애용했다. 그것도 모두 흑을 잡았을 때다. 추론이 쉽다. 덤 부담이 큰 흑을 잡았을 때엔 효율 높은 수법을 쓰는 게 좋다. 그것이 알파고의 판단이다.

표3. 알파고의 굳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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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칸 높은 굳힘    (흑 잡을 때) 2국
눈목자(目字) 굳힘 (흑 잡을 때) 8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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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눈목자 굳힘과 같이 간격 넓은 굳힘을 백이 쓸 때도 있었는데, 덤이 없었던 때가 그 때다. 지난 백 년엔 오청원이 백일 때 눈목자 굳힘을 많이 썼다. 치수고치기 10번기에선 덤이 없었다. 덤이 없을 때엔 백이 효율 높은 수(즉 간격 넓은 수)를 선택해야 했고(대신에 엷다), 덤이 클 때엔 흑이 효율 높은 수를 선택해야 한다(역시 엷다).

앞서 5도가 바로 두칸 높은 굳힘이 나온 바둑의 하나다. 굳힘은 반상 안목을 다룰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주제다. 간격 넓은 굳힘을 하는 바둑은 포석에서나 행마에서 발 빠르게 두는 경향이 있다.

▼ (8도) 눈목자 굳힘 백 수지 흑 알파고


▼ (8-1도) 눈목자 굳힘 백 수지 흑 알파고


8도.
눈목자 굳힘의 경우도 그렇다. 속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상귀를 거듭해서 손 빼는 것을 유의하자.
 
눈목자 굳힘에 대해서는 뒤에 압박하는 수법 다룰 때 좀 더 보겠다.


알파고는 압박하는 수법도 많이 썼다. 최근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 신선한 착상으로 보인다. 압박하는 수법은 두 개로 나뉜다. 날일자와 눈목자(표4).

표4. 알파고의 압박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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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일자(日字) 수법  (백 잡을 때) 4국 (흑 잡을 때) 2국  
눈목자(目字) 수법  (흑 잡을 때) 5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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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기보를 보면 아시겠지만, 그 어느 것이나 강조점은 이렇다. 변과 중앙을 중시한다. 속도 빠른 처리를 중시한다. 두터움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수법이었는데, 이제 프로기사들 간에도 다시 연구가 많을 주제다.
반상의 본능, 소목과 외목의 상호침투성, 수나누기 이론, 마늘모 행마의 배경 등과 관련이 깊다. 중앙 지향의 수법을 연구할 때 놓칠 수 없는 주제다.

기보를 보면서 하나 하나 써보겠다. 하지만 엄격하게 분리해서 다루지 않고, 논의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겠다. 섞이면 섞이는 것을 택하겠다. 논의를 마치고 난 다음, 뭔가를 느꼈거나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건 설명에 성공한 것이다.

▼ (9도) 날일자 압박 백 Chop 흑 알파고


▼ (9-1도) 날일자 압박 백 Chop 흑 알파고


9도.
좌상귀 흑7이 날일자 압박 수법이다. 고금에 유명한 것으로, 발전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좌변 흑13은 침입이 아니다. 흑7 이하의 세력을 배경으로 하는 협공이다.  9-1도는 백의 대응.

▼ (10도) 날일자 압박 백 알파고 흑 3qiKing


▼ (10-1도) 날일자 압박 백 알파고 흑 3qiKing

10도.
초반 대단히 이르게도 결단한 장면이다. 백8의 가치와 의도는 잠시 후 수나누기 설명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흑11 이후 10-1도 백1이 한눈에 잡히면 실력자다. 원래 흑11 이후는 상변 백A 벌리는 것이 정석.

앞으로 관전할 때 참고하면 이해에 도움될 것이 있다. 알파고는 복잡한 정석을 선택하지 않는다. 발 빠른 수법을 선호한다. 여기서도 좌상귀 교환은 저 자체 완결된 것으로 보고 있다. 

▼ (11도) 눈목자 압박 백 HopeIdo 흑 알파고


▼  (11-1도) 눈목자 압박 백 HopeIdo 흑 알파고

11도.
눈목자 압박을 가한 대국이다. 좌하귀 흑1이 그것.
이 바둑과 같은 구도로 출발한 것이 28국 중 6국. 백2를 A 붙여 싸우는 수도 있으나 왜 그것을 두지 않는지는 다루지 않겠다.

11-1도 하변 백1 자리의 크기와 흑 세력의 힘을 음미해보시라. 11도 흑9 이후 백B, 11-1도 흑2로 진행된다면, 앞서 본 날일자 누르는 수법과 다를 바 없다. 넓게 본다면 9도 10도와 다를 바 없는 조건에 이 바둑 또한 벌써 들어가 있다. 흑1 둘 때다.


이제부터 압박 수법의 이해를 위해 옛 기보를 보면서 설명하겠다.
표4에서 보았듯이 눈목자와 날일자를 합하면 압박 수법을 쓴 대국이 28국 중에서 11국이나 된다. 날일자의 경우엔 흑백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날일자 누르는 수법은 일본 바둑에서 일찍부터 나타난다. 17세기였다. 16세기에도 있는지는 확인 못했다. 아니다, 있다. 1582년이다(20도 참조).

▼ (12도) 누르는 수법 1645년 백 本因坊 算悅 흑 安井算知

12도.
이 국면을, 수나누기 설명에서 본 것으로 기억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오늘의 이해에도 매우 중요하니 잠깐 수나누기 설명을 하자.

13도를 먼저 보자. 12도 바로 앞 장면을 다시 보는 것이다.

▼ (13도) 수나누기 –1

13도.
“흑2 협공이 좋은 수냐?” 그것이 중세의 큰 문제였다.
해결책이 17세기 도샤쿠에 의해 창안되었는데, 그것이야말로 일본 바둑 300년의 초석이었다. 그리고 19줄 반상 활용, 그 첫머리를 장식했다.

▼ (14도) 수나누기 –2

14도.
도샤쿠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수순이다.
도샤쿠 시대엔 흑도 이처럼 응수했다. 뭐, 집이 좋은데 뭐가 나쁘단 말야! 필자도 실력 약할 때엔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쳐 좋지 않다. 발전성이 없다. 당시엔 ‘치우친다’ ‘균형’ 그런 개념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았다.

수순 중 상변 백15를 주의하자. 왜 A 협공이 아니었던가. 그것은 백17 때문이다. 백17과 우상귀 백과의 간격 때문이다. 백17이 오니까 흑은 난처하다. 우상 B 침입하면 백C 흑D 백E로 공격 당하는 꼴. 들어갈 수 없다. 백17은 소위 선점(先占)의 이론을 따른 것이 되겠다. 그러니 백15 백17이야말로 반상이 19줄인 것을 적절히 활용하는 안목이다.

▼ (15도) 수나누기 –3

▼ (15-1도) 수나누기 –3

15도.
만약 13도 백1 흑2를 교환하지 않고 좌하귀 진행을 먼저 했다고 하자.
그런 후에 좌상귀 백1 걸치면 흑은 여기 15도처럼 진행하는 것이 좋다. 두터운 곳으로 상대를 밀어넣어야 유리하기 때문. 이후 백은 1에 두어도 2에 두어도 좋지 않다. 상대의 철벽에 가까이 가는 것이다. 답이 나왔다. 13도 흑2 협공은 13도의 구도 아래에서는 나쁘다.

▼ (16도) 알파고의 수나누기 활용 백 알파고 흑 lxlx 


▼ (16도-1) 알파고의 수나누기 활용 백 알파고 흑 lxlx 


16도.
알파고의 초반 하나 보자. 백1 둔 장면이다.
다들 놀랐다. 프로들도 놀랐을 것이다. 수법의 배경이야 알고 있지만 그래도 좌상귀처럼 두는 것은 기피하는 것.

▼ (17도) 만약 흑이 수나누기의 기본 문제처럼 진행한다면


17도.
답이다. 앞서 13~15도에서 본 것을 기억하면 답을 아실 것이다.
여기서 잠시 중요한 거 하나 체크하자. 슈사쿠 마늘모 문제다.
소목에서 마늘모 수법(16도 흑4)이 나온 배경은 이론적으로 볼 때 16도와 17도의 비교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슈사쿠의 마늘모라고 하는 것은 그 연원이 200년이나 앞선 17세기에 있었던 것이다. 잠깐 몇 줄만 더 하자.

▼ (18도) 수나누기의 곤혹에서 벗어나려면


18도.
흠, 13~17도를 참고하니 13도 흑2는 여기 18도 흑2 두어야 하겠구먼. 그 후 A와 B를 맞보면 되지 않나? 그렇다. 답이다.

▼ (19도) 슈사쿠의 마늘모

19도.
고금에 유명한 슈사쿠의 물레방아 포석이다. 슈사쿠 생전에 자부하기를, “반상 19줄이 변하지 않는 한 저 흑7은 영원히 호수(好手)가 되리라.” 이제 알 수 있다. 아이디어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일본 바둑 초창기엔 변을 오늘날보다 더 중시했다. 물론 귀는 언제나 변보다 중요했지만 귀와 변의 상대적 중요성은 시대에 따라 유동했다. 귀를 오늘날처럼 중시하게 된 것은 귀에서 마늘모(뒷날의 슈사쿠 마늘모)의 가치가 발견된 것에 많이 힘입는다.

역사를 좀 더 돌아보면 사정은 또 이렇다.
날일자 누르는 수법은 일본 바둑 초창기(16~17세기)에 이미 나왔다.
아래 20도와 21도를 참조하라. 두 바둑 모두 상대를 날일자로 눌러 납작하게 만드는 수법을 쓰고 있다.

▼ (20도) 1582년 혼뇨지 3패 바둑 백 혼인보 算砂 흑 利玄

20도.
유명한 혼뇨지(本能寺) 3패의 일화가 서린 바둑. 혼뇨지는 큰 절. 1582년 여기 20도의 바둑이 혼뇨지의 작은 암자에서 두어졌다. 승부는 빅이었다. 3패가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전국시대의 풍운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혼뇨지에 머물고 있었다. 깊은 밤에 이르러 처남의 배반으로 생을 마치니, 그 이후 “3패는 불길하다”는 말이 세상에 떠돌았다… 대략 그런 이야기다. 

▼ (21도) 1670년 천문학의 실험 백 道策 흑 (2世)安井算哲

21도.
1착을 천원(▲)에 둔 역사상 최초의 천원 실험 바둑이다. 둔 기사는 뒷날의 천문학자. 일본 최초의 역(歷) 정향록(貞享錄)을 만든 인물.
백1이 결단이다. 우변을 정리하고 보니 반상에 흑집이 메말랐다. 발전할 곳도 없다.

20도와 21도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눌러서 결정한다’는 것이다.

누가 하는가?
상수(上手)가 한다.
산샤(算砂)는 일본 바둑 300년의 기초를 놓은 초대 혼인보이자 메이진(名人). 토요토미 히데요시던가… 산샤를 명인이라고, 처음 그리 부른 사람이? 도쿠가와던가? 모르겠다. 도샤쿠야 오청원에 비견되는 기성(棋聖). 

상수 아닌 기사는 못 두는가? 그건 아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볼 때 저 누르는 수법은 명인들이 즐겨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누르는 수는 높이 평가받는 경계에 속한다.

‘누르는 수’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적어도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나 꼽을 수 있다.

1) “바둑에서는 밀거나 에워싸는 수를 둘 수 있어야 해. 그래야 빨리 늘어.” 맞는 말이다.
2) 밀어두는 쪽은 발전을 생각하고, 밀리는 쪽은 고정된 집에 멈추는 경향이 있다.
3) 누르고 에워싸는 것은 바둑의 본능이다.
4) 결단이 있어야 둘 수 있다. 상대에게 실리를 먼저 주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5) 영원한 호착인 마늘모의 뒤안이다. 즉 같은 비중으로 중요성을 평가할 수 있다.
6) 중앙지향적이다.
 
물론 ‘언제나 좋은 수’라는 얘기는 아니다. 바둑에서 좋은 수, 나쁜 수는 없다.
바둑에는 ‘두는 수’와 ‘두지 않는 수’만 있다.

여하튼 누르는 수는 옛날부터 두어왔는데, 그 평가는 좋았다. 그럼에도 눌러두는 마음은 갖기가 쉽지 않다. 평이 좋다고 해도 개인의 취향은 중요하다. 하지만 둘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발전성을 갖게 한다. 효율을 극한으로 추구하는 대(大)기사들은 밀어붙이는 수를 즐겨두는 경향이 있었다.

왜 알파고는 누르는 수법을 이번에 많이 사용했을까? 지난 수 십 년 프로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수법인데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앙지향적 안목에 알파고가 많이 매혹되었다고 할 수 있다. 누르고 밀어붙이는 수를 즐겨 둔 것은 – 28국 중 11국 – 여실한 증거다. 중앙의 가치를 현대의 다른 기사들보다 높이 평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 (22도) 중앙 지향의 운석 백 알파고 흑 bandari


▼ (22-1도) 중앙 지향의 운석 백 알파고 흑 bandari


22도.
4도의 다음 국면이다.
중앙을 중시하면 삭감과 큰 모양 구성은 함께 한다. 상대의 집이 아기자기 하다면 삭감할 필요가 없으며, 집 모양이 크다면 삭감할 필요가 있다. 서로가 집 모양 경쟁을 하고 있다면 삭감은 곧 모양의 확대가 된다.

마치 다케미야 9단이 두는 것만 같은 대국도 몇 국 있었다. 방금 22도는 그 하나다. 다케미야는 우주류, 노골적인 세력 작전으로 유명하다. 다케미야를 잠시 감상하자.

▼ (23도) 다케미야의 4선 - 1


▼ (23-1도) 다케미야의 4선 - 1

23도.
다케미야는 흑을 잡았을 때 흑3을 많이 두었다. 다음 23-1도 백1에 두면 흑은 2에 두겠다는 것이다. 백이 3에 두면? 음, 어디에 두어야 할까? 좌상귀 침입? 그것도 좋다. 그 경우 23도 흑3은 우변을 깊게 넓힌 공로가 있다.

▼ (24도) 다케미야의 4선 – 2

▼ (24-1도) 다케미야의 4선 – 2

24도.
역시 실전이다. 대범하다. 하지만 우리와 다른 바둑을 둔다고는 당시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알파고는 우리와 다른 바둑 둔다고들 한다. 대체 우리 바둑이란 것을 뭘로 아는 걸까?

▼ (25도) 모양을 크게 키우다 백 알파고 흑 FengYu


▼ (25-1도) 모양을 크게 키우다 백 알파고 흑 FengYu

25도.
마늘모 어깨 짚음을 이용해서 모양을 크게 키우는 것을 알파고가 즐기고 있다. 주목할 것은 하변 백4 백6. 그리고 좌변 백8이다. 백8은 삭감을 피하고자 할 때 드물지만 둘 수 있는 수법이다. 백8만 보더라도 적절한 시기에 한 수 마늘모 어깨짚는 수를 하나 던져놓는 것은 요긴한 수순이라고 하겠다.

2017년의 알파고. 28국을 통틀어서 알파고의 바둑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중앙지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르기. 응수타진 겸 삭감. 넓은 굳힘. 모두가 그렇다.

▼ (26도) 1625년 변 1착 백 道碩 흑 (一世) 安井算哲


▼ (26-1도) 1625년 변 1착 백 道碩 흑 (一世) 安井算哲

26도.
최초로 변에 흑1을 둔 바둑이다. 백은 바둑의 비조(鼻祖) 중 한 분인 도세키(道碩). 수나누기를 처음 창안한 분.

상변 백10은 삭감의 마늘모이자 싸움을 걸어가는 수법이다. 이처럼 마늘모 삭감은 응수타진 못지않게 싸움과도 밀접했다.

지난 해 3월 이세돌과의 대결에서 교묘하게 중앙과 상변을 얻어 승세를 확립한 제4국을 기억하실 것이다.

▼ (27도) 이세돌 알파고 제4국 -1

27도.
흑1 삭감은 아픈 자리. 응? 왜? 밀어올려서 나쁘지 않은데?

▼ (28도) 이세돌 알파고 제4국 -2


▼ (28-1도) 이세돌 알파고 제4국 -2

28도.
흠, 알겠다. 삭감은 핑계, 아니 미끼였고, 초점은 상변과 중앙이었다. 27도 흑1을 맞았을 때 백도 별 다른 대처법은 없었다. 마늘모 어깨짚음은 바짝 어깨를 움켜잡는 강인한 수법이니 말이다. 흑이 아주 좋다. ‘신의 한 수’니 뭐니 해서 백이 이기긴 했는데, 알파고의 대처가 버그였다. 김진호 교수가 의문을 제기했듯이, 필자도 버그 장면을 봤을 땐 이랬다. “이거, 져주는구나!”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응수타진은 상수의 권력이다.
중앙 전투 역시 상수의 놀이다.

배경도 알고 있다.
삭감은 상대의 집을 변과 귀 정도에서 한정하겠다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집은 넓히자는 것으로, 하수에 대한 공개적인 경고다. 그리고 모호한 중앙에서 승부를 결정하자는 태도다. 중세 이후 명인들은 2~3점 접바둑에서 삭감의 수법을 그런 의도로 사용했다. 예전에 ‘접바둑의 하나 둘’에서 사례 몇 개 제시한 적 있다.

슈사이 명인과 오청원과의 1930년 3점 접바둑을 보도록 하자. 대국에 앞서 16살의 오청원이 돌 두 개를 반상에 놓았다. 그러자 슈사이 명인이 근엄하게 끊었다. “석 점.” 임하는 자세에서도 대국 내용에서도 오청원이 혼이 났다. 종반에 가서야 겨우 승기를 잡았다. 무려 석점이나 깔았는데 말이다.

1928년 북경에서 하시모토 5단이 오청원과 시험국(오청원 선착)을 두어 패한 다음  스승 세꼬에 7단에게 편지를 썼다. “소년은 이미 일본 바둑의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천재 오청원이 슈사이 명인에게 석점 놓고도 혼이 났다. 바둑이란 그런 것이다. 29도를 보면 왜 그런 차이가 때론 있을 수 있는지, 감(感)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 (29도) 1930년 백 슈사이 명인 흑 오청원

29도.
백1 백3에 주목하자. 더할 나위 없이 높은 안목이다. 먼저 백1은 좌변을 넓힘과 동시에 전체 국면을 조망한다. 격(格) 높다. 백3은 백1과 호흡하는 탁월한 안목. 우상귀를 제한한다. 우변 제한의 효과도 뚜렷하다. 심지어 하변까지 제약한다. 백 모양이 세모로 큰 산개(傘蓋) 펼치고 있음을 눈여겨보자. 바둑은 공간감이 중요한 놀이. 사물의 모습을 그리거나 의인화된 용어를 써도 좋다.

이쯤에서 주의할 것은 이것이다.

초반의 응수타진과 누르는 수법은 중앙 지향적이라 상대에게 실리를 먼저 주는 것. 누구나 알지만 또 쉽게 둘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잘만 하면 다른 수법에 비해 승률 높이는데 유리할 것이 분명하다. 앞서 근거를 5~6개 찾아보았듯이, 누르는 수법은 반상의 적극적이고도 긍정적인 경계와 속성이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력자는 자연스럽게 눈이 중앙으로 갈 밖에!


2. 응수타진과 삭감

신포석 혁명의 전야(前夜)에 오청원과 기타니는 단위가 높아졌다. 당시는 단위 따라 치수가 정해졌다. 그러므로 호선 상대가 없어졌기에 덤 없는 백 바둑을 둘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승부는 어렵다. 고심 끝에 나온 방법은 이랬다. 하수를 안개 속으로 유인하자. 길 없는 들판으로 말이다. 반상에서 그곳은 중앙이다. 신포석의 배경이다.

다들 안다. 말은 안 해도 다들 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모두가 안다.
따라서, 실력자가 4선 이상에 두면 “탁월한 착상,” 그리 말하는 게 보통이다.
이리저리 상대를 꾀면 “응수타진 한다”고 말한다.
하하. 반(半)은 농담이다.

오청원이 다카가와 9단을 앞에 두고 초반 일찍 삭감으로 싸움 걸기를 시도한 바둑 하나 보자. 배울 게 많다. 백으로 18수째에 싸움을 걸었다!

초반 이른 시기의 삭감이란 무엇인가.
응수타진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상수는 하수를 어떻게 접는가.
바둑의 본능에 얼마나 밀접한가.

그런 것을 말해준다.
알파고의 초반 태도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30도) 초반의 이른 삭감 백 吳淸源 흑 高川秀格

30도.
다들 깜짝 놀랐다.

▼ (31도) 실전 진행

31도.
실전이다. 흑3은 백A 흑B 백C 끊는 수단을 피한 것. 두터운 수다.
결과는? 백은 하변을 삭감하고 좌변에 손이 갔다. 백에게 좋은 결말이다. 하변 백은 D와 E
를 맞봐 염려 없다.

▼ (32도) 백이 수순을 바꾼다면

32도.
백이 수순을 바꿨다고 가정하자.
이제는 A가 아니라 흑8 밀어간다. 백은 공격 당하고 있으니 좌변으로 눈 돌릴 여유가 없다. 수순의 묘가 31도에 있음을 알겠다.

▼ (33도) 흑이 밀어간다면

33도.
흑이 이리 두면?
백이 나쁘지 않다. 백7 이후가 흑에게 고민이다. 숫자 순으로 두어가면 흑은 하변에 편중된다. 백은 좌변이 깊고도 넓어진다. 그렇다고 여기서 흑A를 두면? 사실 돌의 흐름으로 봐서는 흑A가 답이다.

“상대가 오른편에 두면 나는 왼편. 그것이 돌의 흐름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불만이다. 백이 가만히 8에 막는 수가 두텁다. 백B 흑C 백D 끊는 뒷맛이 다시 불씨로 남는다.


오늘 오청원의 바둑을 여럿 인용하고 있는데, 상대가 상대인지라 – 즉 알파고 – 필자도 바둑의 최고수이자 최고의 천재를 한 분 모실 밖에 길이 없었다.

상수의 응수타진. 상수의 삭감. 상수의 누르기.
당하기 전엔 모른다.
익히 들었다시피, 응수타진은 상수의 전유물. 그 아니 많이 당했나.

어렵다.
아마 어렵기로 말하면 다음 34~36도의 이해가 어렵다. 아니, 어렵다기 보다 프로들은 실리에 민감하기에 생래적으로 오청원의 응수타진을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알파고가 왔다. 오청원의 논리가 잠재된 삭감을 사용한다. 

▼ (34도) 오청원의 적극적인 응수타진 - 1

34도.
오청원이 젊은 시절부터 애용했을 뿐만 아니라 적극 추천하는 수법이다. 『21세기 포석』에서도 강조했다.
자, 여기서! 정지된 이 국면만 보자. 백의 전체 구도가 세모, 그것도 폭넓은 세모임을 주의하자. 흑은 우변에 치우친다. 그것이 백1의 첫 번째 효과다.

▼ (35도) 오청원의 응수타진 - 2

35도.
흑1 응수하면 흑의 실리가 돋보이는데? 몇 집 늘어났나? 4~5집이 큰가? 초점은 이제 우변이 된다. 백4 걸침에 흑이 5에 받으면 우상 6 이하로 변해도 백은 둘 만하다. 흑이 전반적으로 발전성이 크게 제한된 것을 중시하자. 흑이 5에 받을 때 백은 A 정도 받아도 좋겠다.

▼ (36도) 오청원의 응수타진 - 3

36도.
잘 알려진 대응 수법이 흑1~3. 이제는 백이 우변을 중시하지 않는다. 35도와 비교해 두 개의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는 백의 전국적 구도가 네모로 변했다. 두 번째는 백2가 흑1보다 머리 하나를 더 내밀고 있어 우변은 흑이 집을 내기가 힘들다. 우변은 제한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백4가 바른 방향. 백4를 A에 두면 발전성 없는 곳에 투자하는 꼴이라 “방향이 틀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눈목자 씌움으로 싸움을 걸어가는 알파고를 보자.

▼ (37도) 최근의 연구 장면도  백 알파고 흑 HopeIdo

37도.
흑1은 소위 대사백변(大斜百變)이라 불리는 유명한 수법이다. 19세기에 특히 연구가 많이 이뤄졌다. 하지만 오늘은 초점이 다르다. 이번 알파고 대국에서는 28국 중 모두 다섯 판이 여기 흑9까지 똑 같은 수순을 밟았다. 주변 조건도 똑 같다. 최근 연구 중인 문제인가 싶다.

앞서 본 날일자 누르는 수법과 흑1의 의도는 똑 같다. “눌러두면 유리하다. 결단하자!”

흑9 이후 백A 흑B는 백이 불리하다. 우하귀 흑 굳힘이 머리를 내밀고 있어 백A는 발전성이 없다. 흑이 애초에 노린 바다.

▼ (38도) 필연적인 진행

38도.
백1 밀어가는 수밖에 없다. 큰 곳이다. 여기서 흑이 A로 받아주면 그때엔 손을 빼 좌변을 백B로 지켜 백은 좋다. 이후 흑C 막아도 하변 폭이 한 줄 좁아진다. 그래서 흑2 협공이자 침입도 필연.

여기서 문제는 이렇다. 흑은 여기까지의 쌍방 응수를 흑이 유리한 갈림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39도 40도를 보면 알 수 있다.

▼ (39도) 결정하는 것에 초점이 있다. 활용이라 보는 것이다.

39도.
백1 흑2 교환은 기세이자 역시 거의 필연적인 갈림. 이 장면의 유불리는, 백A 끊는 수가 있느냐? 그것에 달려있다. 백B는 흑C 두텁게 이어 백이 좋지 않다. 좌변에 곤마만 하나 있는 꼴이 된다.

▼ (40도) 발빠른 전환


▼ (40-1도) 발빠른 전환

40도.
백1 끊는 수가 있느냐? 흑은 가볍게 버려서 충분하다. 흑6 이후 숫자 순으로 놓아보라. 하변 백이 정체된 인상이다. 발전성은 우하귀 흑의 굳힘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  

알 수 있다. 알파고는 변신에 능하다.
앞서 날일자 누르는 수법이 중앙 지향적이라고 평가했지만, 여기서는 또 눌러가면서 얻은 세력에서 과감히 손을 빼 요처를 발 빠르게 점거하는 변신을 선보였다. 능수능란하다.

이유가 없지 않다. 우리는 지향성을 갖고 있다. ‘지향성’은 심리철학에서 마음을 다룰 때 중시하는 개념이다. 순간 순간 변신하면 우린 인간이 될 수 없다. 가볍게 말해 신뢰마저 떨어뜨릴 수야 없다. 

그렇다면 왜 백은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이리 두었을까? 프로들이 모를 리 없다.
오기? 아니면, 백도 나쁘지 않다?

적어도 이 문제와 관련해 프로들의 초점은 한결 같았다. 대국이 실험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평소 연구에서 의문 나는 것을 실험해본 것이다.


글의 끝에 왔다.

이제까지 알파고의 초반 서너 개의 과제를 선정, 집중해서 살펴보았다. 이해를 위해 역사적으로 비교도 헸다. 뭔가 뚜렷하게 잡힌 것이 있었을까? 바람직한 결말은 이렇다. “똑 부러지게 말은 못해도 뭔가 감이 오는 것.” 


요약하겠다.

1. 알파고가 둔 응수타진 겸 삭감의 연원을 살펴보았다.
삭감은 집을 제한하는 것이지만, 알파고의 경우 응수타진의 의도가 더욱 컸다. 응수타진의 아이디어는 오청원을 돌아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변신과 중앙지향적 속성이 강했다.

2. 내리 누르는 수법의 연원도 살폈다.
초반에 상대를 눌러가는 수법은, 중세 일본 바둑에서 특히 많이 실험했다. 당시엔 세력을 몰랐지만, 그럼에도 눌러서 반상을 결정해버리는 것에는 산샤 명인이나 도샤쿠 명인이나 다 동의하고 있었다.

눌러가는 수법은 결단력과 깊은 연관이 있는 듯싶다. 눌러 두면 더 이상의 변화가 없을 정도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프로기사들이 알파고의 바둑을 분석하면서 – 오로 뉴스 참조 – 장점 하나로 결단력을 꼽았다는데, 그것과 압박의 연관성은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주의해야 한다. 알파고의 결단력은 우리 눈에만 그리 비치는 것일 수 있다. 그럴 개연성 크다. 알파고는 뒷맛을 다루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엄청난 정보량을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뒷맛과 결단은 동전의 양면이다.

3. 알파고는 두칸 높은 굳힘과 눈목자 굳힘을 선호했다. 논리는 언뜻 보면 단순하다. 흑을 잡을 때엔 덤의 부담 때문에 효율 높은 굳힘을 선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변신에 능하고 중앙 지향적인 알파고는 발이 빠른 수법을 좋아한다. 간격 넓은 굳힘은 속도와 잘 어울린다.

4. 본래 실력자는 변화를 선호한다. 모호할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변신에 능했다. 알파고에게 인간이 갖는 관성 같은 함정은 없기 때문이다. 상황 대처에 민감할 것은 불문가지다.

이상이다.

중앙 지향, 내리누르는 것, 삭감, …
뭐, 말할 것도 없이 바둑의 본능에 잘 어울리는 수법들이다.


이제 문제 하나 다루면서 글의 매듭 짓겠다. 정교함과 미묘한 감각에 대해서다.

▼ (41도) 알파고의 미묘한 감각 백 알파고 흑 수지


▼ (41-1도) 알파고의 미묘한 감각 백 알파고 흑 수지

41도.
백2 삭감이야 생각할 수 있는데, 다음 백8까지의 수순(백4 이후는 41-1도)을 보면 참으로 알파고의 감각이 타성이나 관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인간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계산, 비교, 직관 같은 것을 계발해 왔다. 바둑에서도 쓰이는 도구다. 아쉽게도 그 하나하나는 다 나름의 맹점을 갖고 있다. 왼쪽으로 돌다가 오른쪽으로 핸들 꺾을 때 몸이 쏠리는 것이 예다. 알파고에게는 그것이 없다. 그것이 우리의 감탄을 자아낸다. 41도의 감각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그런 정교함과 미묘한 착상이 없다고는 말 못한다. 오청원의 바둑을 둘 보겠다. 착상의 미묘함과 의외성을 보겠다.

참고로, 오청원은 종교에도 전념한 인물. 일본에 건너온 초기엔 자세가 좋지 않아 핀잔도 많이 들었다. 그 후 명상을 통해 독맥이 발달했고 발생한 기가 척추를 밀어 올렸다. 허리가 꼿꼿해졌다. 몸이 발라졌다고, 신문의 평도 좋아졌다. 그는 착상의 반(半)을 뇌의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얻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가 뛰어났던 이유라 하겠다.

▼ (42도) 10번기 백 오청원 흑 藤澤庫之助

42도.
흑1은 상용수법. 백2 반발, 흑3 ‘나는 나대로’까지는 누구나 둘 수 있는 수순이다.
백4가 참으로 묘한 착점. 보통은 A나 B에 젖힌다. 그것이 인간. 인간의 관성. 흑 한 점을 에워싸는 것은 본능. 앞서 바둑의 본능 이야기했다. 에워싸고 누르는 것이 본능. A와 B는 그 본능에 잘 들어맞는다.

하지만 오청원의 발상은 참으로 미묘했다. 백4가 그것. 다음 백C 흑D가 언제나 백의 선수. 그러니 좌변, 좌상귀, 상변에 걸쳐 솟아오른 기운이 피어오르듯 넓다. 품격 높은 착상이다.


▼ (43도) 하시모토의 천원 대국 – 정교한 수법


▼ (43-1도) 하시모토의 천원 대국 – 정교한 수법

43도.
백9 이하는 숫자순으로 진행되었는데 백이 우세한 결말이다.
백9를 어떻게 보시는지? 백1 침입할 때부터 봤던 맥점이다. 정교하다 못해, ‘참하 못하지 않아’ 그래도 정교하다. 복잡한 수읽기가 내포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몸이 저리는 정교함이다.


돌아본다.

알파고를 보면서 우린 바둑을 새삼 본다.
아, 바둑이란 게 이런 것이었구나!

그것은 기꺼운 일이다. 바둑 아니어도 그렇다. 어느 분야에서도 궁금한 것을 확인한다면, 그건 행운이다. 대단히 드문 행운이다. 해방을 얻은 것이다.

영화 ‘혹성탈출.’ 찰톤 헤스톤이 해변가에 쓰러진 자유의 여신상을 목도했을 때 그는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을까. 그는 설움과 울분을 삼켰지만, 그 장면에서 적지 않은 관객은, 신(神)의 얼굴을 잠깐이나마 본 것 같은, 그런 순간 갖지 않았을까?

이제 알파고가 나와서 인간이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바둑은 영원히 진지하면서도 즐거운 놀이임에도 틀림없다.

본질로 보아 바둑이란 것은 3천 년 동안 다음과 같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반상의 은유적 언어와 형상의 질감을 통해 수법을 내 것마냥 다룰 수 있었고,
인식 차원에서는 반상에 몸을 대입시켜 이해의 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초반의 상징성과 종반의 기호를 적절히 다루어 반상을 놀이터로 만들었다.

몸과 인식, 언어와 형상, 상징과 기호.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삶의 순간순간에서 언제나 함께 하는 조건이 아니던가. 바둑에서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일부를 느끼고 또 보아왔던 것이다. 당연하다. 그러니 바둑은 진지한 놀이였던 것이다.


글의 끝이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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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77 |  2018-11-19 오후 5:45:4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인간의 수준에서는 아직도 모호한 영역이군요. 수법이 좀 더 발전하여 구체적인 수순들이 연구되고 드러났으면 좋겠네요. 시간없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ㅎㅎㅎㅎㅎㅎ
글 감사합니다.  
바둑정신 |  2018-11-26 오전 12:45:5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굿  
초자연 |  2018-12-13 오후 8:53: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인간이 바둑의 부여하는 관념과 형상인식 등은 우리가 바둑을 효율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데 도움을 주지만 바둑의 본질을 관찰할 수 없게 됩니다. 바둑의 본질은 연산입니다. 끝없
이 연산하고 연산해서 더 나은 수를 잠정적이거나 최종적으로 분석하는것입니다. 인간의
연산력은 보잘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한계에 직면합니다. 관념을 변화시
키거나 인식을 달리하고 수법 몇 개를 변화 시킨들 그것이 바둑의 본질은 아닙니다. 그것
이 무엇이든 인간이 생각하는 수준의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초자연 |  2018-12-13 오후 9:08:0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인공지능은 바둑의 본질에 적합하게 접근한 것 입니다. 바둑의 본질은 연산이고 그 연산의
양은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양이기에 더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합
니다. 그래서 바둑판의 상황에서 수를 분석하고 선택 할 때 탐색의 너비(수의 선택지역)를
제거하고 깊이를 줄이는 방식으로 시뮬레이션 합니다. 이를 mcts(몬테카를로트리서치)
라고 합니다. mcts의 핵심기술은 정책(policy)망과 가치(value)망 으로 나뉘는데 정책망
은 특정 착수 시점에서 가능한 모든 수 중 가장 승률이 높은 착수점을 예측하여 탐색의 너
비를 줄이는 것이고, 가치망은 현재 상황에서 승리확률을 계산하여 탐색의 깊이를 줄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토대로 스스로 대전, 기보 학습을 통해 학습능력을 강화시킵니다.  
초자연 |  2018-12-13 오후 9:23:0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인공지능에게는 우리가 바둑을 대할 때 쓰이는 관념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두터움,엷음,
날렵함,공격적이거나 수비적,날일자나 눈목자 밭전자와 같은 형상의 대한 태도도 포함해
서 말이죠. 그것들은 인간이 바둑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우리가 바둑에서 어떤 궁극
적인 목적 그것이 바둑의 본질, '가장 합리적인 수' 가 될 때에는 하나의 장애물로 작용됩
니다. 인간이 초반 화점에 삼삼을 들어가지 못하는 데에는 그러한 관념 깃든 태도가 있기
때문에 그 수법을 떠올리기 조차 힘든 어떤 강력한 관성이 있던 것 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 기존의 관념과 인식을 고치고 달리하여 새로운 인식으로 바둑을 대하게 될 때 우리는
좀 더 합리적이게 된 것 일까요? 우리가 바둑의 본질의 더 다다르게 된 것 일까요? 우리
는 이제 그러한 수법을 둡니다. 화점에 삼삼을 파는 식의 수법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실
질적으로 밝혀낸 것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삼삼을 파는 것과 날일자를 걸치는 것에 차이
를 인간은 절대로 밝혀 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둑의 본질. 즉 연산영역의 관해서 밝혀
낼 수 있는 사실은 '없다' 라는 것 입니다. 그것을 수치화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리의 방
식, 우리의 수준으로 해석되고 있을 뿐 입니다. 그것은 바둑의 본질은 아닙니다.  
초자연 |  2018-12-13 오후 9:34:5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 글에서는 그러한 관념 깃든 태도와 설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둑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로 바둑을 이해하고
(이는 합리적인 수에 대한 해석)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러니 고대의 바둑의 가
지는 의미는 바둑의 대한 우리의 태도를 설명하는데는 유용할지 몰라도 바둑을 분석하는
데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전부 한계의 직면해 있습니다.  
초자연 |  2018-12-13 오후 9:50:2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우리가 가지는 그 태도. 관념으로 규정짓는 태도. 그것에 있어서 끊
임없이 의심하고 타파해내야만 생각합니다. 우리가 두텁다고 하는 것, 혹은 엷다거나 발
빠르다고 하는 것 등이. 우리의 바둑 이해를 돕는 동시에 우리의 눈을 제한합니다. 그렇
기 때문에 그것들을 배제하고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조금 더 합리적인 시각을 가
질 수 있도록 말이죠. 우리가 특정 연산영역에서 합리적인 절차를 발견하고 패턴을 흭득하
더라도 그것이 그와 같이 동일한 상황(바둑의 수순이 같은)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조금씩
다르거나 유사한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전에 흭득되었던 패턴이 그대
로 적용되지 않으며 그것이 우리가 기존의 가치관과 인식을 활용하면서도 의심함으로써
새롭게 생각해봐야되는 이유라고 보는 것 입니다.  
초자연 |  2018-12-13 오후 9:55:4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인간은 바둑을 간접적으로 해석할 뿐 입니다. 그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잠정적인 것들이고 확실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능력에 맞게 조금 더 합리적인 이해를 가지고 바둑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의 대해 고민하는 노력은 의미 있는 일이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자연 |  2018-12-13 오후 10:41:2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세상'이라 이름 짓는 순간 그 세상은 실체가 아닌 것 입니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입니다. 어떤식으로든 판단되게 될 때 그것은 다른 것이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의 실체를 알 수 없는 것 입니다.
또한, 바둑의 실체를 알 수 없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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