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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후절 프로1급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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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 1급 > 1화
2009-05-07 오후 4:04 조회 3104추천 17   프린트스크랩
▲ 마당에서의 오수. 나만의 것. 하지만 높은 담장이 필요해.

                                           

                                                  1


 인간의 입장에서 신과 인간의 차이를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요람에 누운 갓난아기가 부모를 올려다보면서 부모와 자신의 키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우리가 신과 인간의 차이를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바둑을 두는 일이다.

 신을 찾기를 원한다거나 신을 알기를 원한다면 종교를 가지면 된다. 그러나 종교 안에선 신과 인간 사이에 놓인 무한대의 간극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이 신을 섬긴다할지라도 둘 사이에 놓인 차이점이 드러나는 일은 없다. 신과 인간의 사이엔 이해나 느낌을 바탕으로 한 교감이 아닌 맹종과 흠모의 형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둑이라는 행위는 단순한 재료를 가지고 무한대의 창조를 가능케 하는 활동이다. 바둑을 두면서는 누구도 같은 내용을 반복한 적이 없으며 인류가 바둑돌을 바둑판 위에 놓기 시작한 이래로 한 번도 같은 내용이 반복된 일은 없었다. 적어도 혼신의 힘을 다 해 끝까지 승부를 겨루어 한 판의 대국을 완성한 어느 두 사람의 공동작품이 탄생하였다면 그에 대한  복사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 비추어 바둑은 문학이며 학문이며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떠한 문학도 학문도 예술도 신을 소재로 다룰 수는 있을지언정 신의 영역에 대해서 체감을 하도록 하고 신과 인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끔 인도하지는 못한다. 다만 누군가 바둑을 두기 시작하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신과 인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바둑 안에서 신과 인간의 차이는 핸디 석 점에서 다섯 점 사이이다. 둘 사이의 승률이 5대 5로 박빙을 이룰 수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인간은 여섯 점을 깔고는 여간해서 신에게 지지 않을 수 있고 두 점을 깔고는 신에게 좀처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바둑을 둘 때 세 번 연속으로 지게 되는 쪽은 치수 즉 핸디를 조정한다. 대등한 대결이라면 랜덤으로 돌을 갈라 흑백을 결정한 뒤 바둑판에 먼저 돌을 놓을 수 있는 흑돌은 유리하기 때문에 백돌을 쥔 상대에게 6.5 점 안팎의 점수를 미리 인정해 주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대등하게 맞두었는데 연거푸 진다면 다음부터는 6.5 점의 점수를 미리 헌납하지 않고 대결을 하게 된다. 핸디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후의 대국에서 또다시 세 번 연속으로 지는 일이 벌어지면 핸디의 폭은 커진다. 이번엔 바둑판 위에 흑돌 두 점을 먼저 올려놓고 대결을 하게 되는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이 신에 대하여 감수하여야 할 굴욕은 흑 돌 석점과 다섯 점 사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지상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몇 개 정도는 획득한 실력자를 말한다. 그리고 이 챔피언은 가로 세로 열아홉 줄을 그려 놓은 면 위에 흑돌과 검은 돌을 번갈아 올려놓으며 누가 더 많이 영역을 차지하는가 하는 대결에 있어서 신을 상대로 하여서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인간으로서 정면승부를 하여서는 도저히 신을 이길 수 없다지만 석 점 핸디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신에게 제시하고 단 한 번이라도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현대 사회가 가장 포괄적으로 받아들인 그리스도교의 신을 모델로 삼아 생각해 볼 때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우주-지구에서 올려다보는 관점의-를 단 6일 만에 창조한 절대자이다. 그러한 신에게 인간이 물리와 정신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승부를 겨룰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어떤 시인이 신과 시작(詩作)을 겨룰 수 있으며 어떤 학자가 신과 학문을 겨루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예술가는 신과 예능을 겨루기는커녕 천국의 디자인과 천사들의 노래를 감상하는 순간 기절해 버릴 게 분명하다. 신에게 핸디를 안겨주고 겨룬다는 것. 골프나 당구와 같은 게임을 가정해 볼 때 점수로는 도저히 신의 핸디를 측정할 수가 없다. 신으로서는 휘둘렀다 하면 홀인원일 것이며 때렸다 하면 쿠션을 성공할 테니 대결을 상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지 않겠는가. 차라리 신에게 ‘빌어먹을 지구를 때려서 금성과 화성을 맞춘 뒤에 수성과 부딪히게 해서 태양에 집어넣는 걸 보여주면 당신이 이긴 걸로 합시다.’ 하는 제안이 더 현실성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근래에 인류와 지구의 기원을 외계 간섭설로 보는 종교적 시각이 늘고 있다. 즉 신의 존재 역시 무한한 게 아닌 우주 안에 유한한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글자 그대로 6일 만에 천지를 창조한 신의 모습을 그대로 가정한다 할지라도 신은 바둑판 위에서 여섯 점 이상의 핸디를 극복하고 인간을 이길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보통의 사람이라도 바둑 챔피언과 대결하여 넉 점의 핸디로 승부를 나눌 수 있는 아마 5단의 수준에 이른다면 넉넉하게 아홉 점을 깔면 신을 이기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바둑이란 그러한 것이다. 바로 신이 만들어 놓은 바둑의 원리이며 이러한 원리는 신 자신이 허용한 것이기 때문에 꼼수라도 쓰지 않는 이상 바둑만이 지닌 한계와 차이를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게끔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생각해 본다면 누구라도 바둑의 매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둑을 잘 둘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곧 신과 인간의 차이점을 체감해 볼 수 있는 길에 한 걸음 다가가는 일이기에 가치가 있다.



 이제부터 펼쳐지게 될 바둑과 바둑을 두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이상 신을 빗대어 설명하려는 시도는 필요치 않을 것 같다. 다만 신과 겨룰 수 있을 만큼의 재능을 지닌-그렇다고 해서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바둑은 최소한의 재료로 무한한 창작이 가능하고 지상에서 유일하게 신과 인간 사이에 놓인 차이의 간극을 체감할 수 있는 행위이자 게임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 안에서 신의 그림자를 발견하든 인간의 모습만을 확인하든 그것은 여러분의 몫이라 하겠다.

 그럼 반상 위에 바둑돌을 한 수 한 수 내려놓듯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펼쳐보고자 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 중 하나인 찬돌이 열한 살 때에 있었던 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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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즌 |  2009-05-07 오후 4:20:1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기대만땅 입니다~^^  
팔공선달 |  2009-05-07 오후 4:55:0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서오세요 ^^  
마하빤야 |  2009-05-07 오후 5:52:3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천기누설하시는것 아닌가요
반갑습니다.....  
youngpan |  2009-05-07 오후 9:21:5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반갑습니다..
신과 인간사이의 치수 6점이라고 누가 말했나 봅니다.
흥미 있는 이야기 입니다.  
허심풋보리 |  2009-05-07 오후 9:33:4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시작부터 아주 흥미 진진 합니다.
-사까다-가 그랬던가요?
신과 내기를 한다면 2점은 자신이 없고
3점은 해볼만 하겠노라고......==3==3==3  
영구형 임해봉이 한 얘기 같은데요...전 재산을 걸라면 3점, 목숨을 걸라면 4점이라고...
허심풋보리 네, 사까다의 말을 받아(듣고) 3중허리(2중허리) 해봉님도 그런말을 한것으로 기억됩니다만.....
당근돼지 |  2009-05-08 오전 2:40:1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서 오십시요.......나작에 입성하심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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