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도남의재북이 있습니다.
북쪽에 뜻을 두고서도 남쪽만을 쑤시고 난리를 치는(?) 거 말입니다.
승부를 다투는 바둑에서 이 도남의재북이란 게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괴롭기 짝이 없고, 하는 입장에서는 여시같은 웃음을 날리며 이빨을 보이고 키득거리기는 아주 즐거운 겁니다.
사실 저는 그리 암된 사람이 아닌데, 여인네 앞에서는 좀 암된 편입니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못하는 거지요.
오히려 정반대로 그런 여인을 보면 핀잔을 주고 괴롭히는 개구쟁이 기질이 있어 진실을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고 그냥 끝나버리고 맙니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여인들 앞에서 좀 들이댈(?) 시기도 지났건만 이상하게도 이 기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창호사범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혹시 나처럼 들이대질 못하는 바람에 마음에 드는 여성을 놓치고 있지나 않는가하고 말입니다.
제 아내는 참 적극적이었습니다.
나의 도남의재북을 알았던 게지요.
해서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던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창호사범에게도 좀 들이대는 여성이 빨리 나타났으면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회사 거래처에 정말 멋들어진 여인이 한 분 있었습니다.
물론 과수댁이었지요.
그러다보니 제가 가재눈을 하고 이 여인을 어떻게 해 보려고 무척 노력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근데 문제가 많았습니다.
제 눈에 괜찮은 여인이 어찌 다른 사람 눈에 들지 않았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홀아비세계에는 경쟁이 없는 것으로 알고 계신데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총각세계와는 또 다른 동물의 세계(?)가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쉽게 결혼에 뜻을 두는 과수댁이 그리 많지 않기에 처녀들과는 많이 다른 게 보통입니다.
이렇게 확률이 희박한 홀아비세계에서 결혼에 골인하는 것은 월드컵에서 골 넣기 만큼 어려운 법입니다.
하지만 해 보는데 까지는 해봐야 되는 게 홀아비의 운명이기에 이 여인의 마음을 잡기 위해 엄청나게 공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OUT OF SIGHT, OUT OF MIND"의 반대말이 바로 자주 보면 정든다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 거래처에 부질나게 들락거리기 시작한 겁니다.
헌데, 이 여인을 만나면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겁니다.
할 말이야 있지만 그걸 어찌 제 입으로 들이대겠습니까.
그렇다고 이유 없이 왔다고는 할 수 없어 대충 얼버무려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담부터 이 여인이 내가 가면 엄청 싫어하는 겁니다.
참 의아했지요.
내 딴에는 도남의재북인데 바둑을 모르는 이 여인이 어찌 도남의재북을 알겠습니까만 그렇다고 싫어할 것까지야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동종업자중에 나 같은 홀아비가 한넘 있는데 가만히 보니 이넘도 이 거래처엘 부질나게 들락거리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과부 마음 과부가 알고 홀아비 마음 홀아비가 안다고 이넘의 음흉한 속셈을 내 어찌 모르며 그넘이 어찌 내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뭔가 전달이 잘 못 되었다는 초조한 마음에 할 수 없이 이번엔 큰 맘 먹고 장미꽃을 한다발 사서 안고 이 거래처를 찾아갔습니다.
속으로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러다가는 홀아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용기를 주었던 겁니다.
역시 이 여인은 엄청 기뻐했습니다.
커피를 내어 오고, 사과도 깎아서 놓아주고 정말 평소와는 다르게 포근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도남의재북 같은 것은 바둑 둘 때나 써 먹어야지 사랑에는 맞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며칠 지나서 또 이 거래처를 가려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여직원이 뭔가 주저주저하더니 저에게 말하는 겁니다.
여직원: “ 저.... 거래처 가시는 겁니까....”
굴초: “그래...왜?”
여직원: “어지간하면 다른 직원들 보내시지 그러세요. ”
굴초: “왜?”
여직원: “어제 거래처 여직원하고 전화를 하다가.....”
굴초: “ 하다가???”
여직원: “ ..........”
굴초: "괜찮아, 말해봐? “
여직원: “ 수금하러 와서 안 주니까, 장미꽃까지 들고 와서 난리라고 엄청 싫어하신다던데요.....”
굴초: “!@#$%^&*(”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거래처엘 가지 못하고 대포집에 가서 낮술을 먹고 취해 그만 개구리가 되었지요.
오오현경님이 그러시더군요.
“하나에서 한쌍이 되길 간절히 기원하는 기우들의 아픈 마음을 약 올리듯 즐기는 굴초님은 낭만 싸이코의 으뜸”이라구요.
기우 여러분 제가 뭘 잘못했나요, 정말 답좀 주이소.
원인을 알아야 내년에라도 장가 갈 수 있지 않겠남요....
동지섣달 긴긴 밤, 바둑이나 두며 지내는 것도 이제 좀이 쑤십니다.
재야에 계신 연애왕별님들, 지도기 한 수, 그저 기다려봅니다.
‘에취,,,, 아이고, 추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