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 나도 작가
Home > 커뮤니티 > 육묘법문
육묘법문 끝내기에서 포석까지

작가의 말


 이 글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자와 협의하지 않은 무단전재는 금합니다.
고대사
2016-12-05 오전 6:28 조회 2525추천 2   프린트스크랩








우리는 고대사가 그다지 공인받고 있지 못한데
중국은 상대적으로 정보가 전해지고 있다.
대체로 널리 알려진 나라는 주나라이지만
주나라를 포함해서 하 은 주 삼대를 모두 고대국가로 공인받고 있으며
그 중에 주나라의 경우
문왕이나 강태공, 백이숙제 등은 이름조차 알려져 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문왕의 아들인 무왕 시대의 일이 둘 보인다.
강태공에 관한 일과 백이숙제에 대한 이야기인데

무왕 이전에 주왕이 악독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달기라는 여자에 빠져서 온갖 못된 짓을 일삼았다고 하는데
백이숙제의 경우 나라꼴이 그랬는데도, 주왕을 몰아내는 데엔 반대를 했다고 하고
반대로 맹자는 그럴 경우에는 몰아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맹자를 흔히 민본주의의 선구라고 보기도 한다.
그간에 내가 경험한 인간세상의 분위기로 보면
백이숙제같은 사람들은 좀 순진한 편이라서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힐 가능성이 있다.


못된 짓을 하는 자들을 그 한계를 모르는데
대개 그 원한을 갚아야 할 때엔 적당한 선에서 용서를 해버리곤 한다.
용서는 가장 중요한 미덕이지만
적절함을 획득하지 않으면 그 피해자들의 경우 그 원한을 지닌 채로 더 큰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인이 용서를 하는 것과 집단적인 경우는 좀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강태공의 경우 사정이 좀 달랐다고 한다.
강태공이 문왕 시절에 국정에 참여해서 무왕시절에 사실 상 섭정 비슷한 일을 했다는 것 같은데
거악을 한다고, 발본색원을 한다고 수년을 지속하자
국정의 안녕과 세상의 분위기에 겁을 먹은 무왕이
책임총리 역할을 맡은 태공망에게 속도조절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자 태공이 말하길
7년을 기한 삼아서 제2의 건국을 하고 있는데
3년 반 만에 논란이 생기는 것을 보니
1천년을 기약하고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5백년 밖에 못가겠구나 라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실제로 주나라가 5백년을 간 후에 춘추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인간들의 심성에는 착한 면이 있기 때문에
잔혹한 풍경 자체를 그다지 오래 견디지 못한다.
대개 속도조절론을 말하는 분위기는, 좀 과도하지 않은가 라는 패턴을 따르게 되는데
실제로 이미 축적된 구습의 내력은 한 세기를 넘어선다.
그래서 난 언제든 중임개헌을 하긴 해야 한다고 보게 되었다.
지금은 사태가 변화의 와중에 있으므로 일을 겹으로 하기에 곤란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근대사 이후에 누적된 온갖가지 문제들을 뿌리에서 재정비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고, 이런 일을 5년 단임 안에 해결하려 하면 대개
반발에 직면하기 쉬울 것이다.


오랜 만에 근대사를 보니
병인양요, 신미양요, 강화도조약, 대원군 섭정 등의 시기 이래로
계속 문제가 문제를 낳아 왔다.'
이런 긴 세월의 타래를 차분히 풀어나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과거를 풀어낼 뿐 아니라, 당대와 미래에 대한 대응도 병행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어떤 귀결을 낳을 지 모르겠다.
다만 다음 정부부터는 좀 더 안정적으로 꾸준히 모든 면을 풀아나가면서
강약이 잘 조절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순진해서도 안되고 과도해서도 안될 것이다.






┃꼬릿글 쓰기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